총기엔 화약냄새도 지문도 없었다
더구나 재판부 및 군 검찰의 세 차례 재판 진행이 모두 군 헌병대 수사 내용을 김 일병에게 단답식으로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으며 특히 재판부는 사건 수사 관계자 및 해당 GP소대장, 사망자 시신 감식 관계자 등을 사건 4개월이 지난 4차 공판에서야 증인으로 출석시켜 유가족들의 원성을 샀다. 심지어 이들 증인들이 법정에 서기 전 재판부가 유가족들을 모두 강제로 퇴장시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최근 군에서 제대한 지 보름 만에 위암으로 사망한 노충국씨 군내 진료 기록 파문까지 겹치면서 연천 총기 난사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의 불신은 전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피해 유가족들은 네 번째 공판에서도 시신 검안서, 현장 검증 기록, 생존 병사의 진술 등 다양한 객관적 증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앞선 세 번째 판결에서 침묵을 유지하던 김 일병의 변호인까지 사고 현장 재검증 등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사건 재조사와 수사 기록 공개에 대한 군 주변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사건 순서 미스터리◀
유가족들은 사건의 범인이 2인 이상이라는 전제하에 실제 현장 검증 내용, 각종 증거물과 생존 병사 및 주변 인물들의 진술 등을 군 당국의 수사 결과와 대조시키며 의혹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유가족들은 지난 2차 공판 직전 피해자 진술서를 통해 ▲사격은 연발이 아닌 단발 사격이며 ▲총기 난사의 순서는 내무반 수류탄 투척이 아닌 복도 소총 발사가 우선이고 ▲김 일병이 사용한 수류탄의 안전 고리가 공교롭게도 김 일병 군복 주머니와 관물대에서 발견됐다는 등의 의혹을 주장한 바 있다.
유가족들은 이번 4차 공판에서 지난 2차공판 때 제기한 의혹을 입증하는 부대원들의 구체적 진술 및 사례를 제시하는가 하면, 이와는 별도로 새로운 의혹을 추가한 피해자 진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우선 유가족들은 2차 공판에서 제시한 사건 순서가 뒤바뀐 부분에 대해 몇 가지 단서가 될 만한 정황을 언급했다.
사건 직후 국방부는 내무반 수류탄 투척→복도 총성→내무반 총성 순으로 사건이 진행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복도 총성→내무반 수류탄 투척 및 복도 총격→내무반 총성과 복도 총격 순서라는 주장이다. ▲복도 총성으로 인해 내무반이 먼저 점등된 상태에서 수류탄 폭발로 형광등이 깨지면서 소등됐으며 ▲복도 총성이 들려 대검을 꽂고 총을 들고 나가려는데 수류탄 폭발과 내무반 입구 사격이 있어 대응하지 못했고 ▲수류탄 폭발음과 내무반 총기 난사 시간이 거의 동시에 났다는 생존 사병 진술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수류탄이 떨어진 건너편 침상에서 관물대 방향으로 다리를 향하고 취침 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병사들이 파편창 등으로 숨지거나 부상당한 점도 사고 순서에 대한 사실 관계를 어느 정도 입증하는 부분이다.
즉 비산각 45도의 수류탄 폭발 지점 반대편에 위치한 병사들이 발바닥이나 발목 혹은 허벅지에 파편상이나 총상을 입은 것은 취침 상태에서 입은 것이 아니라 내무반 수류탄 폭발 전 복도 총성 소리를 듣고 대응 태세를 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수류탄 투척을 받고 곧이어 총격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무기 미스터리◀
김 일병이 체포되기 직전 소대장으로부터 무기 해제 등의 조치를 받는 과정에서 손에 화약 냄새가 나지 않았으며, 김 일병 탄창과 수류탄에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는 점도 상당히 의문스럽다는 게 유가족들의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네 번째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GP소대장 이아무개 중위는 “경황이 없어 김 일병의 탄창과 수류탄 확인을 못했다”고 진술, ‘과연 무기 검사 없이 김 일병을 범인으로 단정할 수 있었을까’라는 일각의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 연천 총기난사사건 피의자 김동민 일병(가운데)이 지난 6월24일 국회 국방위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받은 뒤 헌병과 수사관의 호위 속에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유가족들은 김 일병이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 정아무개 상병의 소총과 탄창, 그리고 증거로 압수한 수류탄 안전고리 및 손잡이에서 김 일병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변호인까지 가세◀
한편 세 차례 공판 과정에서 김 일병 범행 여부에 구체적인 입장을 유보하던 김 일병의 변호인측 도 네 번째 공판부터는 공범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를 두는 입장이다. 실제 네 번째 공판에서 변호인 이기욱 변호사 등은 김 일병의 범행을 입증하는 물증이 없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상황에서 증인 신문에 주력했다.
특히 이 변호사는 사건 직후 GP를 수습하고 김 일병을 검거했던 이아무개 소대장에게 상황실에서 내무반, 취사장 등까지의 실제 사격 거리와 공범 여부, 대응 사격 여부 등을 집중 추궁했다. 사격 경험이 없는 김 일병이 사건과 무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입증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고 시각 미스터리◀
이밖에도 유가족들은 사고 시각에도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범인 검거 시간이나 부상자들의 응급 후송 시간도 조작된 게 아니냐는 것으로 연결되는 셈. 조두하씨는 “군 관계자 및 주변 진술 등을 확인해보니 새벽 2시30분에 고속지령대에 적 총격 도발 보고가 들어갔으나 군은 2시39분으로 발표했다”면서 “옆 사단의 부대원들에게서는 2시10분에서 15분 사이에 적 침투 보고가 수시로 올라갔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공범 미스터리◀
총기 난사 사건이 재판부로 넘어온 이후 사건은 김 일병의 범행 수위와 동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벗어나 범인이 김 일병을 포함 2인, 혹은 김 일병이 아닌 또 다른 제 3인물들의 ‘조합’일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스토리까지 제기되는 등 쟁점이 확대된 상태다.
실제 지난 10월2일 <일요신문>이 보도한 대로 유가족들이 주장하는 의혹의 중심은 과연 시격 경험이 전무하다고 볼 수 있는 김 일병(사격 경험은 전입 후 단 두 번인 것으로 확인됨)이 2분 30초라는 짧은 시간에 내무반과 상황실, 체력 단련장, 취사장 등을 유유히 거치면서 수류탄과 총기를 난사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사건 후 직접 접촉한 생존 병사들 대부분은 내무반 수류탄 폭발음과 복도 및 내무반 총격음이 거의 동시 다발적으로 들렸다고 진술했다”면서 “내무반과 상황실, 그리고 복도 등으로 이뤄진 GP가 비록 적은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목격자가 한 사람도 없는 이번 사건은 총격과 총격 사이의 시간 차이 등을 감안할 때 분명 치밀한 계획 하에 전문 훈련을 받은 2인 이상 범인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고 확신하는 분위기다.
“단독 범행이 아닐 확률은 90%”라는 유가족 대표 조두하(숨진 조정웅 상병의 부친)씨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유가족들은 앞으로 재판과 별도로, 부상자 후송 지연 등의 책임을 들어 군 당국을 고소할 방침. 이밖에도 시신 확인 과정 등에서 유족들의 의사를 철저하게 배제한 부분에 대해 다각적인 법적 조치를 취하면서 사망 병사들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