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전 전패의 ‘차밍걸’, 경기용 승용마로 첫 데뷔
<차밍걸>이 지난 18일 경북 상주 국제승마장에서 류은식 선수와 함께 몸을 풀고 있다.
[일요신문] ‘101전 전패’이란 한국경마 최다연패기록을 세우고 지난해 9월 은퇴했던 경주마 ‘차밍걸’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 화제다.
19일 오후 경북 상주 국제 승마장에서 열리는 2014년 전국 국산마 승마대회 장애물경기에 경기용 승용마로 첫 데뷔전을 갖는 것이다.
‘차밍걸’이 데뷔전을 갖는 장애물 경기는 말과 기승자가 함께 총 10여개의 인공 장애물을 전문 코스 디자이너가 설계한 경로에 따라 넘는 경기다. 장애물 높이는 1m에 이른다.
‘차밍걸’은 2008년 데뷔해 6년간 총 101회 경주에 출전해 3위가 최고 성적이었던 이른바 ‘똥말’이었다.
하지만 무승 기록이 늘어날수록 경마팬들의 관심은 오히려 높아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1등이 못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것이 일반 서민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101회 출전은 한국 경주마 최다 출전 기록이기도 하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위대한 꼴찌마’였다.
세계신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하고도 정작 6차례의 올림픽에선 메달과의 인연을 맺지 못한 스피드스케이트의 이규혁은 차밍걸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매일매일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차밍걸, 그리고 우리 모두를 응원 합니다”라는 밝히기도 했다.
경마에서 성적은 곧 생명이다. 그래서 1등에게는 항상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지만 그 이하는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경마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확률은 대략 10% 내외에 불과하다.
모든 경주에서 1등은 한 마리뿐이고 나머지는 패전이 된다.
성적이 우수하면 씨수말 등 경주마 생산에 투입돼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지만, 반대는 마차를 끄는 신세로 전락한다.
성적 때문에 애물단지 취급을 받을 만도 한데 ‘차밍걸’은 은퇴 후에 더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경주마로 실패했다고 다른 것도 못하란 법은 없다며 차밍걸을 거둬들여 장애물을 뛰어넘는 경기용 승용마로 변신시킨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경주마 출신 ‘차밍걸’을 경기용 승용마로 변신시킨 류태정(48) 궁평목장 대표는 “처음 승마 사업을 시작했을 때 ‘차밍걸’처럼 매번 실패만 맛봤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경주마를 졸업한 차밍걸이 경주로가 아닌 승마대회에서 첫 우승을 맛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승마협회 신인상을 받은 바 있는 아들 류은식(19) 선수에게 훈련을 전담시켰다.
지난해 말부터 승마 경기 훈련을 시작한 ‘차밍걸’은 지금은 1m20cm 장애물도 훌쩍 뛰어넘는다.
류은식 선수는 “경주마는 폭발적으로 달리는 것이 목적이다. 이에 비해 장애물을 뛰어넘으려면 더 섬세해야 하고 사람과 교감도 잘해야 한다. 사용하는 근육도 완전히 다르다. 차밍걸은 경기용 말로 이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이번 대회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 완주다”라고 말했다.
KRA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최근 경마가 도박으로 매도당하고 있지만, ‘똥말’ 차밍걸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마가 스토리가 있는 스포츠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경마팬 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승용마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차밍걸을 위해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하용성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