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친구 구명하다 ‘실세’ 이학봉과 ‘조우’
군단장은 수시로 자리를 비웠다. 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한강다리와 주요 시내 초소의 경비를 맡고 있는 헌병 장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한 장교가 지나가면서 걱정했다.
“큰일 났네. 공수부대가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 막으면 우리는 진압군이 되고 통과시키면 우리도 반란군이 되고. 야단났네. 군단장님은 지금 어디 계신지도 모르고….”
수도군단사령부 내에서는 무거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때 차규헌 군단장은 전두환 사령관 등과 함께 30경비단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날 밤이었다. 친구들에게서 상황을 묻는 전화가 왔다.
“야! 한남동 쪽에서 막 총소리가 나고 근처 병원 응급실이 야단이 났다더라. 무슨 일이야? 한강다리도 통제되던데?”
바로 그날 밤 전두환 장군과 이학봉 중령 등 소위 신군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총격전을 벌이고 참모총장 정승화를 체포했다. 수도군단 예하 연대병력이 서울의 방송국을 점령하러 출동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나는 반란군 소속부대에 들어간 셈이었다. 나는 육군본부의 동기장교 윤 중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법무감실 앞 장교숙소에 묵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어?”
내가 물었다. 나는 군사쿠데타의 또 다른 외곽 현장 모습을 알고 싶었다.
“공수부대 아이들이 와서 보초병들에게서 총을 빼앗아 무장해제시켰어. 총 안 내놓으려 하는 사병들은 막 얻어터졌어. 누가 총 뺏기려고 하겠어? 나보고도 M16을 들이대고 ‘장교님 손드세요’ 하고 소리치는 거야. 내가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더니 ‘우리들도 몰라요’ 하더라고.”
“그래 얻어맞았어?”
“아니, 장교니까 때리지는 않더라고. 공수부대원들은 장군들을 찾더라. 육군본부의 장군님들이 별판을 단 자기 차 좌석에 꿩같이 대가리 박고 궁뎅이만 내놓고 있더라고 그래.”
전두환 소장과 몇 명의 영관장교가 주축이 된 군인들이 권력을 잡는 순간의 한 모습이었다. 세상이 변한 것 같았다. 흉측한 진압봉에 대검 끝이 번쩍이는 총을 어깨에 두른 공수부대원들을 태운 트럭이 서울 시내의 도로를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얼어붙게 했다. 저녁만 되면 상가들이 일찍 문을 닫아걸고 밤 8시면 통금이 실시됐다. 그리고 새해가 됐다. 얼어붙은 땅 밑에서 저항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혼식을 핑계로 재야인사들이 YWCA에 모여 시국성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어느 날 같은 고려대 출신 J의 형이 다급하게 나를 찾아왔다. 친구 J는 지하운동권의 핵심 같았다.
“동생이 YWCA사건으로 합수부에 끌려갔는데 살려주게.”
친구 J의 형은 사색이 된 채 나에게 매달렸다.
“집을 팔아서라도 돈은 댈게. 동생을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내야 해. 거기서 우선 맞아죽을까봐 걱정이 되네.”
친구 J와는 대학에 와서 서로 다른 길을 갔다. 그는 해박한 사회이론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후배들을 이끄는 것 같았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능력이 탁월했다. 임의출국이 금지됐던 그 시절 해외여행은 특권이었다. 그는 몇 달 독하게 공부하더니 전국 독일어경시대회에서 일등을 하고 그 보상으로 독일을 다녀왔다. 몇 달의 짧은 유학임에도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민주의 세례를 듬뿍 받고온 것 같았다. 그는 고려대 경제학과에 입학 후 많은 이념서적을 읽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언젠가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론과 과감한 행동력을 갖춘 그와 비교하면서 나는 초라한 느낌을 받았다. 도서관의 구석에서 유신헌법이나 달달 외우고 있는 게 나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든 친구 J를 살리고 싶었다. 나는 합수부에 파견 나가 일을 하는 노련한 준위 한 명을 찾아갔다. 아버지 나이뻘인 그는 자유당시절 김창용 특무대장 밑에서부터 잔뼈가 자라고 6·25전쟁, 5·16 군사쿠데타, 월남전 등 격변기를 거친 베테랑 수사요원이었다. 그 같은 사람들은 격변기의 행동대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도 그리고 잡혀온 수많은 정치인들도 그 같은 사람들의 주먹과 구두발에 얻어맞았다. 그가 내 말을 한참 듣더니 호의적인 표정이 되면서 신중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 1979년 12·12사태 당시. | ||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덧붙였다.
“얼마 전에 법조비리로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이 합수부에 끌려왔어요. 내가 옆에서 지켜보니까 정말 법조인들 새가슴이더라고요. 몽둥이 한 방에 없는 일까지도 줄줄 불어대는 거예요. 사표 내라면 사표 내고 참 약한 자들이죠. 친구가 합수부에 연행됐다고 했죠? 이런 때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세요? 그냥 막연히 부탁하면 안돼요. 먼저 수사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고문을 막아야 합니다. 매에는 장사가 없으니까. 다음으로 연행자를 처리하는 기준을 몰래 알아내서 그 기준 이하로 진술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심사를 할 때 자연스럽게 살아나올 수 있죠.”
요령을 배운 나는 곧바로 수도경비사령부 검찰부의 선배에게 달려갔다. 합수부에서 사건을 송치한다면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선배님, 친구 하나를 꼭 구해야겠는데요.”
내가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그 정도 운동권핵심이면 손 안 대는 게 나을 텐데.”
선배가 난색을 표명하면서 오히려 이렇게 말렸다.
“자네가 다칠 우려가 있어. 웬만하면 하지 마.”
당시 운동권이라면 파충류같이 취급하던 시절이었다. 난 속으로 주춤했다. 그러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나갔다.
“아닙니다. 다치더라도 이런 때 꼭 살려내고 싶습니다.”
이십대 중반인 당시 난 아직 치기어린 꿈속에 있었다. 레마르크가 쓴 <사랑할 때와 죽을 때>라는 소설에서 독일군인 주인공이 사살을 명령받은 한 러시아인을 구하는 장면에서 진한 감동을 받았었다. 그런 휴머니즘의 내면적인 사랑을 갈구했다. 나의 단호한 태도에 선배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합동수사부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군용전화기 핸들을 돌렸다.
“여보세요! 합동수사부죠. 나는 수경사 검찰부장입니다.”
억지로 힘을 넣은 어색한 목소리였다. 속으로는 겁먹고 겉으로는 위세를 부려보려는 태도였다. 그가 계속했다.
“명동 YWCA에서 재야인사들 모임 때 연행한 사람들 언제 송치할 겁니까? 아무리 계엄이라지만 이렇게 늦어도 됩니까?”
선배가 그렇게 명분을 달았다. 상대방이 의외로 공손한 눈치였다. 선배의 어조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거기 잡혀온 사람 중에 J라고 있죠. 무슨 급으로 분류되어 있소? 가급적이면 분류할 때 선처해 줬으면 해서 연락을 한 건데….”
선배가 본색을 드러냈다. 상대방이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뭐? 뭐라구요?”
자신감이 생기던 선배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뭐? 개인적인 청탁이나 하려고 전화했냐고? 도대체 당신 합수부의 누구요?”
상대방이 의외로 강하게 나오는 것 같았다. 선배도 만만치 않게 덤비고 있었다. 수사실무자가 건방을 떠는 것 같았다.
“네? 수사국장님이시라구요?”
뭔가 번지수가 틀린 것 같았다.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국장이라면 당시 권력의 핵심이 된 이학봉씨였다. 전두환 장군의 심복인 그는 산천초목이 벌벌 떠는 막강한 권력자로 부상했다.
선배의 얼굴이 검게 변하면서 울상이 되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전화를 잘못 걸었습니다. 저는 그저 실무를 담당하는 준위 정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국장님께서 직접 이렇게 전화를 받으실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가 청탁하려고 한 게 아닙니다. 아이고….”
선배는 허공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혔다. 역시 들은 대로 우리 법조인은 새가슴이었다. 선배는 송화기를 얼른 손바닥으로 막고 원망스런 눈빛을 내게 던지며 말했다.
“야! 정말 잘못 걸렸다. 부탁 취소하고 당장 사과하러 가자.”
다시 전화기 저쪽에서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선배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저, 이건 제가 부탁하는 게 아니라 후배가 찾아와서 간청해서 전화를 하게 된 겁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정말 잘못했습니다.”
선배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나를 보고 합수부 수사국장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야! 네가 부탁한 그 친구는 운동권의 A급 인물이래. 구명운동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다칠 수 있다고 수사국장님이 그러셔. 그래도 구명운동을 할 거냐고 물어. 웬만하면 그만두지? 나도 부탁 안한 걸로 하고 말이야.”
수사국장은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조건을 달면서 되묻고 있었다. ‘이쪽이 다칠 각오를 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인가?’ 묘한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난 다칠 게 별로 없었다. 선배는 고시에 합격하고 보장된 엘리트 과정을 밟으면서 출세할 사람이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그보다 나는 그 상황에서 후퇴해서 안하느니보다 더 비굴해지는 게 싫었다.
“다쳐도 좋습니다. 대신 친구를 살려달라고 전하세요.”
내가 결심하고 말했다. 권력을 가진 상대방이 약한 우리들의 반응을 보며 가지고 논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선배가 다시 송수화기에 대고 중개했다.
“다쳐도 좋답니다. 그래도 간곡히 부탁을 드린답니다.”
선배의 이마에서 땀이 번들거렸다. 이윽고 선배가 전화를 마치고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내뱉었다.
“전두환 위원장의 심복이고 권력의 실세인 이학봉이야.”
그날 저녁 친구는 바로 석방됐다. A급을 D급으로 재분류해서 바로 내보냈다는 것이다. 권력의 실세 이학봉이라는 이름이 나의 뇌리에 깊게 각인됐다. 언젠가 먼 훗날 인연이 되면 빚을 갚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송사리가 상어가 되겠다는 꿈과 흡사했다. 풀려나온 친구 J는 내 집에 얼마간 숨어 있다가 지리산으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15년 후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군사반란죄 재판에서 나는 이학봉씨를 보게 된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