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도 덮어도 진실은 ‘삐죽’
김 씨는 2월 1일 2시 30분경 분류 심사를 위해 남자 교도관 이 아무개 씨(56)와 면담을 하는 도중 성추행을 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분류심사란 가정환경, 입소 전 생활, 건강 및 정신 이상 유무 등에 따라 수용자를 분류, 각각 다른 교도소에 수용하는 절차를 말하지만 김 씨의 경우 가석방과 관련한 심사를 받던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구치소 측은 사건이 일어난 당일부터 3일까지 자체 조사에 착수했고 6일에는 법무부 등에 조사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열흘 뒤인 16일, 교도관 이 씨는 직위해제됐고 서울지방교정청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후 교도관 이 씨 측이 피해자 김 씨의 가족에게 합의금 2000만 원을 주고 조용히 합의하면서 일단락될 뻔했다. 그러나 19일 김 씨의 자살기도로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졌고 23일 법무부가 1차 해명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법무부는 이 발표에서 교도관 이 씨의 성추행 사실을 은폐하면서 “해당 분류심사 직원이 여성 재소자 김 씨를 분류심사하던 중 김 씨가 이혼을 하면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자 손을 잡고 위로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 직원을 직위해제시킨 것은 “구치소 측이 분류심사 직원의 직무를 벗어난 행위에 대해 엄정 조사를 실시한 까닭”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 이 사건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재소자 김 씨와 가족들이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고 이를 공개할 경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고 해명했다. 김 씨가 목을 매기 전 쓴 유서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라는 것이 당시 법무부의 해명이었다.
그러나 곧 교도관이 김 씨의 가족에게 2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합의금을 건넨 이유에 대해 의혹이 증폭됐고 재소자 김 씨가 사건 발생 후 심각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다 일주일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까지 밝혀지기에 이르렀다.
결국 지난 27일 법무부와 감독관청인 서울지방교정청은 여성 재소자 성추행 및 자살 기도 사건에 대한 2차 발표에서 성추행 가능성을 처음 밝혔다. 비난과 의혹이 집중 제기되자 법무부는 “구치소 측에서 정확한 사건 경위를 누락해 보고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사건 경위를 누락한 것이 맞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서울구치소 측 관계자는 “누락한 게 아니라 밀실에서 일대일로 이뤄진 면담이다 보니 서로의 주장이 엇갈려 차질이 있었다. 처음에는 교도관의 주장이 주로 보고됐다가 이번 조사에서 여성 재소자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구치소 측 관계자가 “당시 양측의 합의가 잘 이루어져 문제될 것이 없었다”고 밝힌 것은 여전히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사기에 충분했다. 즉 구치소 측 스스로가 이 사건을 은폐했음을 결과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소송 증거물로 제출한 김 씨의 편지에는 구치소와 법무부가 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음은 물론 김씨를 자살로 내몬 경위가 드러나 있다.
피해자 김 씨는 사건 이후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도관 이 씨가) 가석방으로 일찍 보내주게 되면 나가서 만나줄 수 있냐고 묻더라… 내 쪽으로 다가와서는 나를 안으면서 한 손으로는 왼쪽 가슴을, 한 손으로는 목을 끌어안다가 엉덩이로 손이 내려갔어…”라며 피해상황을 전하고 있다.
“만약에 이런 일이 밖으로 알려지면 어떻게 되냐고 했더니 여자 교도관 말씀이 나만 힘들어지고 ‘증인 있냐’고 하시더라. 너무 기가 막히지 않니?… 분류과 직원들이 사과를 하면서 절대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 김 씨는 피해 사실을 여성 교도관에게 알렸지만 자신이 가해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법무부가 “유서에는 성추행 내용이 전혀 없고 김 씨가 몇 년 전부터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가족들의 진술로 볼 때 이번 사건이 자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발표한 것과는 달리 김씨가 성추행을 당한 이후 ‘죽고 싶을 정도’로 충격에 휩싸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정말 힘이 들어. 나도 모르게 소변을 의자 위에서 보고 미치겠어. 아이들 곁으로 갈 일 얼마 안 남았는데 그게 가장 슬프다. 정말 숨쉬기가 힘들어 그런데 법무부 ○○○ 과장이라는 사람은 ‘가석방 소리에 귀가 솔깃하지 않았냐’고 묻고 주위 사람들도 내가 일찍 가석방으로 나가려고 이런다고 생각하나봐. 이러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다. 살려줘….”
비난 여론이 들끓자 뒤늦게 법무부가 자체 진상조사단을 파견한 가운데 현재 이 사건은 피해자 김 씨의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또 한 차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양하나 프리랜서 hana01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