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곳곳에서 과격한 축구사랑
|
||
| ▲ 훌리건들을 막기 위해 경기장 바깥에 철조망을 설치해놓았다. | ||
다른 나라에 둘러싸인 벨기에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언제나 이웃나라의 영향을 받아 왔다. 훌리건도 마찬가지. 특히 잉글랜드 훌리건들을 그들의 훌륭한 ‘교범’으로 떠받들어 왔다고 한다. 설기현이 속했던 앤트워프나 스탠다드팀을 지지하는 훌리건들을 중심으로 국가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원정응원’을 하고 있다.
불가리아 훌리건에는 유난히 극우주의자가 많다. 특히 ‘레프스키 소피아’가 악명높다. 멤버들은 모두 20세 이상. ‘스킨헤드’(까까머리)에 백인우월주의자들이다. 흑인 아랍인 동양인 등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이들은 2차대전 당시의 유태인 학살을 믿지 않는다. 상당수는 칼이나 폭탄, 권총,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불가리아 훌리건들은 잘 조직되어 있다. 이들은 잉글랜드의 첼시, 이탈리아의 라치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등을 지지하는 훌리건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 팀 훌리건들 중 상당수가 스킨헤드이거나 신나치주의를 추종하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의 강력한 훌리건 그룹인 ‘BBB’(Bad Blue Boys)는 18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룹 이름은 숀 펜 주연의 영화
지난 1990년 5월13일 벨그라드 레드 스타 훌리건(세르비아 출신)들이 자그레브와의 경기를 앞두고 도시를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나 경기가 열리지 못한 적이 있었다. 이때부터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출신 훌리건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유고내전이 끝나면서 이들의 ‘내전’도 사그러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앙금이 깊어 훌리건 전쟁이 쉽게 막을 내릴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프랑스 훌리건들은 지난 몇 년동안 특히 이탈리아 훌리건들에 의해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이탈리아의 프로리그가 매우 활발하기 때문에 양국의 훌리건들도 잦은 교류를 한다고.
프랑스는 마르세이유나 칸느 등의 강팀을 지지하는 팬 클럽이 훌리건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비교적 잘 조직되어 있지만 주변 이탈리아 독일 잉글랜드의 훌리건 클럽들이 워낙 막강해 그리 힘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이 지난 98년 프랑스월드컵을 우승한 뒤 훌리건들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독일 훌리건 클럽들은 유럽에서 가장 잘 조직된 ‘팬 클럽’ 중 하나로 손꼽힌다. 국가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각기 다른 팀을 응원하는 클럽들이 전세버스로 같이 여행할 정도. 특히 지난 88년 로테르담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계기로 상당히 조직화된 결속력을 보여왔다. 이때부터 독일 훌리건들은 원정 국제경기가 벌어질 때마다 경계대상 1호로 오르내리고 있다.
독일 훌리건들의 ‘전과’는 90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독일과 유고 경기, 91년 브뤼셀에서 열린 독일과 벨기에 경기에서의 난동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 결과 수많은 훌리건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들은 외국에서 열리는 국가대표팀 간 경기 티켓을 구할 수 없도록 규제받고 있다. 이같은 규제로 지난 96년 독일 대 벨기에 친선경기 때는 독일 훌리건들이 벨기에에 기차로 도착하자마자 거의 모두가 경찰에 체포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의 나라 네덜란드. 이곳 훌리건들은 지난 97년 3월 이른바 ‘베버윙크 참사’를 겪은 뒤부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라운드 폭력사태로 사망 사고가 있었기 때문. 그 뒤로 네덜란드 국민들은 훌리건들만 보면 완전히 등을 돌린다. 그러나 요즘은 다시 훌리건들이 기를 펴고 있다고 한다. 이들도 독일 훌리건들처럼 단결력이 매우 강하다. 네덜란드 훌리건들이 가장 폭력을 많이 행사하는 경기는 라이벌 독일전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훌리건들은 유럽에서 가장 조직화가 잘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국가대표팀 원정경기에서 훌리건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세리에 A리그에서는 한 팀에 보통 3~4개씩의 훌리건 팬 클럽이 결성돼 있다. 이탈리아의 응원문화도 유럽국가 중 최고수준. 지난 4~5년 동안 이탈리아 팬 클럽은 잉글랜드 응원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깃발이나 응원가를 몇몇 잉글랜드 팬 클럽이 그대로 모방할 정도.
한국과 16강 길목에서 마주치게 될 폴란드. 이곳에도 수십개의 훌리건 클럽이 있다. 특히 ‘LKS 로즈’팀의 훌리건들은 굉장히 악명 높다고 한다. ‘더 많은 피를 원한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무장한 이들은 경찰이나 상대팀 응원단과 싸우는 게 주요 활동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특히 유태인 팬클럽과 경찰과는 그야말로 ‘상극’. 폴란드 훌리건들도 이번 한?일월드컵을 ‘대목’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적 여건 때문에 얼마나 많이 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
러시아의 경우 축구장 폭력이 과거에 비해 매우 잦고 또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에 훌리건들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왜 그럴까. 문제는 돈이다. 러시아 훌리건들은 대표팀 원정경기가 있어도 여행경비가 없어 응원을 하러 가지 못하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
하지만 러시아 축구 팬클럽의 역사는 매우 길다. 지난 1972년 구 소련 시절 러시아 최강팀 모스크바 스파르타크의 팬 클럽이 최초로 만들어졌다. 지난 90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는 원정경기를 체코 프라하에서 가졌다. 이때 1백44명의 ‘열성팬’들이 사상 처음으로 응원을 갔다. 그때부터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훌리건들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악동’으로 유럽에서 악명을 날리고 있다. 특히 러시아 훌리건들은 구 소련 체제 아래 있다가 독립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등에 상당한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고. 그래서 이들 팀과의 경기에서 그들은 필요 이상의 ‘광적인’ 활약을 한다고 한다.
대체로 훌리건들은 극우주의자에 사회 불만 세력인 하층계급이 많은 것이 특징. 그런데 날이 갈수록 유럽의 축구리그가 커다란 비즈니스가 되면서 축구관련 사업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 입장권이나 응원도구 구입 등 축구팬들이 지불해야 할 비용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동자 계층 출신 훌리건들의 ‘기세’도 한풀 꺾이고 있는 추세다.
또한 프로축구 선수들의 국적이 다국화되어 가면서 인종차별주의자들인 훌리건들의 ‘순혈주의’도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혐오하는 인종들이 훌리건들이 지지하는 팀의 주력군이 되면서 ‘타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이제 훌리건들이 지지할 순수한 혈통의 팀은 없어지고 있다. 한 예로 폴란드 훌리건들도 올리사데베라는 흑인 스타의 귀화를 보면서 그들의 입지를 다시 생각해야 할 처지가 됐다.
|
||
| ▲ 죽음의 신 복장으로 잉글랜드 깃발을 들고 가는 한 훌리건. | ||
훌리건은 사망사고가 날 정도로 그 폭력양상이 심각하다. 하지만 이들의 성향이나 특징을 파악해 두면 폭력사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
먼저 이들은 개최국 국민들과는 마찰을 잘 빚지 않는다. 그들의 주 타깃은 상대팀 응원단이다. 적개심으로 무장한 이들은 상대에게 이기든 지든 간에 폭력을 휘둘러 그들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한다. 그러므로 폭력이 벌어지면 그 자리를 빨리 떠나 시비에 휩싸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상대 응원단에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덩달아 흥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훌리건뿐만 아니라 서구사람들의 공통적인 성향이다. 이들은 여행을 할 때 한국이나 일본인들처럼 조용히 ‘깃발’만 따라다니지 않는다.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이국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익숙하지 않는 한국사람들은 가끔 이런 ‘무례한’ 행동에 흥분해 시비를 벌이기도 한다. 월드컵을 개최하는 국민으로서 이들이 조금 소리내어 떠들더라도 너그럽게 보아줄 수 있는 아량과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훌리건들에게는….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