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식의 절규 “15년 동안 나는 ‘지옥’에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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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태식(왼쪽), 수지 김. | ||
“피고인들은 거짓말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난 그걸 들을 의무가 있겠죠.”
그 재판장은 25년간 판사생활을 하면서 범죄인들은 진짜보다는 거짓말을 본능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이다.
대부분의 살인범들은 자신도 살인의 기억조차 지우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안기부 장세동 부장의 기자회견이나 조서를 보면 윤태식이 안기부에 끌려온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자백을 하더라고 했다. 이상했다. 나는 살인죄를 숨기고 얻어맞거나 상해죄 정도로 처벌받는 범인들의 기쁨을 알고 있다. 살인 혐의만 피할 수 있다면 윤태식은 차라리 안기부에서의 고문을 감사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87년1월 9일 당시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한 후 수사국으로 가서 조사받던 상황을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있어요?”
내가 수첩에 기록할 준비를 하면서 윤태식에게 물었다.
“밤 8시경 김포공항에 도착했어요. 기자들이 이미 몰려와 있더라고요. 그 사람들 앞에서 연습한 그대로 줄줄 말했죠. 그런데 이상한 건 기자들의 질문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와야 하는데 질문이 없었어요. 단지 KBS 기자인지 <서울신문> 기자인지 확실히 모르겠는데 그 한 사람만 두 가지를 물었어요. 기자회견이 끝나고 안기부 승용차에 탔는데 거기 타고 있던 안기부 사람이 머리를 숙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네끼리 주변을 살피면서 ‘기자 차 따라오냐?’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렇게 남산의 안기부로 끌려갔죠.
처음에는 일층에 있었어요. 그러다가 지하실로 갔는데 군용 야전침대와 책상 하나 있는 조그만 방이었어요. 거기는 도대체 낮인지 밤인지 구분할 수가 없는 곳이었죠. 군용 점퍼를 입은 남자들이 와서 저를 조사했어요. 제 얘기를 처음부터 다시 듣더라고요. 싱가포르에서 쓴 진술서도 설명을 듣고요. 처음에는 아무 소리하지 않고 다 들어요. 그래서 전 다 끝나고 나가는 줄로 알았죠.”
거기까지는 당시 수사관들의 얘기와 일치했다.
“그런데 말이죠. 그 군용 점퍼를 입은 ‘김 간첩’이라고 부르는 안기부 사람이 조사실 밖 어디로 갔다 와서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저보고 갑자기 ‘야! 이 새끼 여기가 어딘데 와서 공갈쳐?’ 하면서는 야전침대 자루로 막 패기 시작했어요. 정신없이 얻어터졌죠. 그 사람이 나보고 ‘새끼야! 미 대사관 얘기는 왜 뺐어?’ 하면서 따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내가 싱가포르에서 같이 온 안기부 사람이 얘기하지 말랬다고 사실대로 말했죠. 맞기 시작한 때가 새벽 3시경인데 그럭저럭 이틀 지나서부터는 안 때리고 다시 잘해주더라고요.”
조사실의 세밀한 상황까지 위에 보고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기부에 끌려가자마자 정말 살인을 자백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부부싸움 도중에 수지가 죽었다는 말을 한 적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목 졸라 살해했다고 그런 적은 없어요.”
“그 다음은요?”
“좀 높은 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조사실로 내려왔는데 나보고 네 마누라가 진짜 간첩이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소가 뒷걸음질 치다 문고리 잡았다고 말했어요. 알아보니까 수지가 진짜 간첩이 맞다는 거죠. 나도 진짜 그런가 하고 깜짝 놀랐어요.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당시 수지가 일본에서 돈 400만 엔을 가져왔는데 그거 다 공작금이라는 거예요. 공작금이면 같이 쓴 너도 간첩으로 걸린다고 하기에 난 그 돈 모른다고 딱 잡아뗐죠.”
노련한 안기부 수사관들이 윤태식 자체를 세뇌시키려고 한 흔적 같았다. 조서보다 윤태식의 얘기가 훨씬 생생했다.
“거기서 군복을 입고 네 달을 살았어요. 처음에 수사관들은 시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난리였어요. 그리고 그 다음은 저보고 신문에 난 대로 머릿속에 정확히 얘기가 들어박혀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야 내가 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아침 6시에 눈을 뜨면 수사관이랑 그런 토론을 시작했어요. 이런 상황이면 이렇게 말해야 하고 저런 상황이 벌어지면 저렇게 답변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 다음은 쓰게 하더라고요. 매일같이 밥 먹고 쓰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어요. 그때 안기부 지하실에서 제 머릿속에 불어넣어준 내용은 ‘북한공작원들이 와서 공작에 실패하니까 그 비밀을 차단하기 위해 수지를 죽였다. 남편인 윤태식을 납치하려고 했는데 윤태식이 도망가서 공작이 실패하니까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수지 김을 죽인 거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하라고 했어요. 수십 번 그런 사실들을 쓰고 또 썼어요.”
어쩌면 윤태식 그도 ‘피해자’였다. 바로 검찰에 송치됐더라면 과실치사로 몇 년 살고 석방됐을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정보조직의 공작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피해는 거기서 또 새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가 누군가를 떠올린 듯 눈동자가 허공에 멎더니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격한 말이 쏟아져 나왔다.
“저를 담당했던 안기부 수사관 중 김○○ 그 자식 악질인 건 말도 못해요. 석방되고도 십여 년간 끈질기게 저를 따라붙으면서 피를 빨아먹은 놈이에요. 제가 사업에 성공해서 에쿠스를 타고 다니면 그걸 달라고 했어요. 할 수 없이 줬죠. 주식도 달라고 그래요. 그것도 뺏겼어요. 나중에 그 치는 아예 안기부 그만두고는 임원 자리를 내놓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임원도 시켜 줬어요. 바로 그가 제가 수지를 살해했다고 시나리오를 만들어 상부에 보고하고 저를 괴롭혀 온 자입니다. 지하실에서 그자가 불러주는 그대로 진술서를 썼어요. 나중에는 내가 진짜 살인한 게 아닌지 혼동이 오더라고요. 그렇게 지하실에서 몇 달 있으면서 나중엔 제 머릿속에도 제가 진짜로 납북될 뻔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어요. 완전히 세뇌돼서 누가 물어보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 말들을 늘어놓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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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석방된 후에 역곡에 사는 누님 아파트에 묵었어요. 매일같이 안기부에 보고를 해야 했어요. 안기부에서는 그 지역을 벗어나지 말라고 지시했어요. 그러다가 감시가 조금 느슨해 진 것 같아 일주일에 한 번 서울에 갔습니다. 저도 먹고살아갈 방법을 강구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러다가 걸렸어요. 안기부 앞에 있는 아스토리아 호텔 객실에 끌려들어가 오지게 얻어터졌어요. 때리면서 나보고 앞으로는 뭐든지 심지어 여자하고 잔 것까지도 보고하라는 거였어요. 시간이 가면서 저도 악도 나고 배짱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따졌죠. 나도 사회인이고 성인인데 왜 여자 문제까지 터치하느냐고 했어요. 그랬더니 안기부 사람이 여자한테 빠져서 진실을 얘기할까봐 그런대요.
정말 그 사람들 감시가 괴로웠어요. 그래서 얼마 지나서 제가 일부러 문서를 위조하고 감옥에 들어갔어요. 의정부교도소에서 2년 6개월을 살았는데 차라리 그게 훨씬 편하더라고요. 만기출소해 보니까 감시가 상당히 느슨해졌어요. 그래도 어떻게 알았는지 저를 감시하던 안기부 수사관이 한 달에 한 번은 꼭 전화를 하더라고요. 한번은 친구 따라 외무부에 갔다가 장난삼아 한번 여권을 신청해 봤죠. 그랬더니 여권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중국 상해로 건너갔어요. 거의 십년 만에 외국으로 간 거죠. 상해가 부동산 붐이 일더라고요. 제가 아파트나 빌라를 건설해서 분양하면 돈이 되겠다 싶어 일을 벌였어요. 그러다가 안기부에서 나를 담당하는 인간한테 또 걸렸죠. 공항에 근무하는 안기부 요원이 내 여권을 빼앗더니 본부로 가라는 거예요. 가서 또 혼이 나고 중국에서 건설회사를 하는 거 포기했어요.”
그런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돌아다니고 독자적인 사업까지 시도한 윤태식도 어지간히 생명력이 질긴 인간이었다. 그의 얘기가 계속됐다.
“할 수 없이 98년부터는 국내에서 지문인식기를 만드는 회사를 시작했는데 그게 대히트를 쳤죠. 그 덕분에 제가 부자가 됐어요. 그런데 그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변호사님은 제 가방 끈이 짧은 거 아시죠? 아무리 좋은 걸 개발하고 사업체를 찾아가도 영 알아주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프랑스나 미국에 인증해 달라고 보내고 거기서 통보가 오니까 그때야 국내에서 난리더라고요. 대한민국은 학연이나 지연 없으면 아무리 똑똑해도 뭐가 될 수가 없어요. 졸업장이나 학위증이 없는 제가 대신 지위 있는 사람들과 사귄 게 윤태식게이트 아닙니까?
나중에 제가 회사들을 인수해서 회장이 되니까 나를 감시하던 김○○라는 자 어땠는지 아세요? 수시로 와서 돈을 뜯어갔어요. 그때도 차만 제가 바꾸면 그걸 달라고 하죠. 회사 법인카드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서 돈을 물 쓰듯 하는 겁니다. 나중에는 아예 임원 자리를 내놓으라고 했어요. 내가 돈을 버는 건 다 그자한테 뺏길 것 같았어요. 그만 만나면 난 무릎을 꿇고 머슴 노릇을 하고 그자는 양반행세를 했어요. 도대체 내가 무슨 팔잡니까? 따지고 보면 안기부 자기네는 더 나쁜 거 아닙니까? 국가기관이 엉터리 기자회견을 해놓고 그걸 덮기 위해 저를 그렇게 못살게 굴고요. 진짜 살인을 덮어줬다면 그래도 말을 안 하겠어요. 살인을 하지도 않았는데 살인범 만들어 놓고는 15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는 햇빛을 보지 못하게 만든 거 아닙니까? 저는 정말 찌그러진 더러운 인생이죠.”
어찌 보면 일리가 있었다. 그가 잠시 쉬었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피하려고 하다가 더 꼼짝 못하는 인생이 됐습니다. 사실 저도 나쁜 놈이지만 제가 거짓말하는 거 뻔히 알면서 정치적으로 악용한 정부가 더 나쁜 거 아닙니까? 저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소시민이에요. 살인죄를 덮어준다는 바람에 15년 동안 저는 입 다물고 정말 힘들었어요. 마지막에 이렇게 되니 저로서는 얼마나 원통합니까? 거기다 저를 감시하던 김○○가 마지막에는 나와 살던 여자에게 공갈쳐서 5000만 원 뺏고 저를 검찰에도 나가지 못하게 했죠. 이 문제가 방송에서 불거지기 시작하니까 현직 안기부 간부들은 모든 문제를 전직들에게 미루더라고요. 서로서로 인수인계하면서 연결했으면서도 발뺌하는 거죠.
솔직히 말해서 저도 이제는 망가져 버렸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는 거예요. 구속되기 직전에도 김○○가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수사를 피하게 했어요. 나보고 본부에서 검찰총장하고 얘기가 다 됐다는 거예요. 김○○라는 자는 15년이란 세월이 지나니까 안기부 국장이 자기 동기생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오히려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하는 말이 ‘너 보훈처장 가더라도 윤태식 문제 끝내놓고 가라’고 호통을 치더라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 불어 버리겠다고 오히려 협박하더라고요. 터뜨려도 자기는 1~2년밖에는 징역 살지 않는다고 말이죠. 김○○는 항상 나보고 자기가 만든 조서하고 진술서만 검찰에 넣으면 난 사형당할 거라고 겁주곤 했어요. 그렇게 살아온 세월입니다. 이젠 차라리 마음이 편하죠. 제 진술서에 들어 있는 문익환 목사나 유성환 얘기를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다 그 사람들이 얘기해 줘서 진술서에 그대로 쓴 거죠.”
당시 담당 수사관도 나중에 그 부분은 인정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난 여러 변호사들을 선임했는데 그 양반들도 신뢰하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증인을 불러달라고 했는데도 안 되더라고요.”
그는 도망치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갔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