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치르면서도 남편 놓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아내가 사망한 남편 시신을 집안 거실에 7년간 보관해 둔 채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화면 캡처.
결국 지난해 12월 26일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굳게 닫힌 집 문을 열 수 있었다. 경찰이 둘러본 집은 잘 정돈된 일반 가정집이었다. 그런데 평범해 보이는 가정집 거실 한 가운데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한 남성의 시신이 이불 위에서 발견된 것이다. 발견된 남성의 시신은 한 눈에도 죽은 사람이 틀림없었지만 부패가 거의 없는 잘 관리된 미라 형태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내의 반응이었다. 아내는 경찰이 남편의 시신을 발견할 때까지도 남편이 살아있다고 믿고 있었다. 경찰조사 결과 아내는 이미 사망한 남편을 씻기기도 하고 옷도 갈아입힌 것으로 밝혀졌다. 남편이 살아있다고 믿는 것은 아내뿐만이 아니었다. 아내와 그의 자녀 3명은 외출을 할 때나 귀가할 때 숨진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고시 출신의 3급 고위공무원 남편과 약사인 아내의 단란했던 가정이 하루아침에 믿을 수 없는 뉴스에 오르내리게 된 사실은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앞길이 창창한 공무원이었다. 아내는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하겠다는 말을 주변지인들에게 할 정도로 금실도 좋았다.
그러나 남편이 2006년 간암말기 판정을 받고 직장을 휴직하면서 단란했던 가정에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2006년 말 남편의 병원기록을 마지막으로 이후 남편의 행적은 가까운 지인들도 모를 만큼 베일에 가려졌다. 아내는 투병 소식을 들은 남편의 동료와 선후배들이 집 앞으로 찾아와도 “안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돌려보냈다. 신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아내에게 신도들이 남편의 상태를 물어볼 때도 아내는 “오늘은 머리를 감겨줬다” “잘 요양하고 있다”고 대답해 누구도 이들의 기묘한 동거를 알아챌 수 없었다.
베일에 가려졌던 이들의 기묘한 동거는 제보를 받은 경찰이 출동하면서 7년 만에 막을 내렸다. 당시 이 사건은 온갖 추측과 루머가 난무했다. 아내가 남편의 시신을 미라로 보관한 이유가 ‘부활’을 믿는 아내의 그릇된 종교관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유독 기도를 열심히 했을 뿐 ‘부활’을 믿는 교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시신이 부패하지 않은 이유는 약사인 아내가 약품처리를 했기 때문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 남편의 시신에서 방부처리에 대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방배경찰서 관계자는 “일반적인 부패진행을 거친 시신과 많이 달라 처음에는 약품처리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국과수 결과도 마찬가지였다”며 “남편이 투병과 항암치료 등으로 상당히 말랐고 체내 수분이 거의 없어 건조가 빨랐을 수도 있고, 아내의 소독습관이 파리 같은 곤충의 접근을 차단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특별한 장치 없이 시신이 미라상태로 보관된 점과 아내를 비롯한 자녀들의 굳은 믿음 등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남긴 이 사건은 최근 ‘포천 고무통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일부 언론에서 유사한 사건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남편의 시신을 오랜 시간 집안에 보관한 점, 어린 자녀들이 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생활했던 점 등 앞의 사건을 연상할 수 있는 유사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천 고무통 살인사건’의 경우 아이가 열악한 환경에 방치돼 있었다면 약사 아내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아버지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하며 평소처럼 생활했다.
지난 5월 검찰은 약사 아내의 사체유기 혐의에 대해 ‘죄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별한 약품처리를 하지 않고도 부패하지 않을 만큼 남편의 시신을 깨끗이 보존해온 사실이 인정된다는 이유다. 이는 사체를 고의적으로 ‘유기’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는 포천 고무통 살인사건에서 아내가 남편의 시체를 ‘고무통’에 보관해 유기한 혐의와는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포천 사건의 경우 최근 실시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남편 살해 부분에 대해 진실 반응이 나오면서 ‘죽이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약사 아내가 수사당국의 조사 당시에도 단 한 번도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 진술도 참작됐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시신이 ‘사체’가 아닌 다시 깨어날 가능성이 있는 ‘생명’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검찰시민위원회의 의견도 검찰의 판단과 같았다. 검찰 시민위원회는 남편의 시신을 미라상태로 7년간 보관한 아내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에 검찰도 무혐의를 인정했다.
방배경찰서 한 관계자는 “조사 당시에도 아내는 남편의 심장소리와 맥박을 느꼈다고 진술해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다”며 “7년 만에 남편의 장례를 치르게 되면서도 남편을 놓지 못했다고 한다. 남편의 장례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