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료 덕지덕지…‘전통은 없다’
숭례문 단청 복원 공사도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단청이 떨어지는 등 훼손이 발견됐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숭례문 부실 복원’의 파장은 멈추지 않았다. 숭례문 복원에 사용될 예정이었던 금강송 4주를 빼돌린 신응수 대목장(71)에 이어 숭례문 복원사업 단청 공사를 지휘했던 홍창원 단청장(58)이 지난 7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전통기법’과 ‘천연안료’ 사용을 강조했던 홍 단청장이 전통기법 재현에 실패하자 부실 화학안료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홍 단청장은 이 과정에서 3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았다.
숭례문 복원 작업 초기부터 홍 단청장은 그 명맥이 단절된 단청의 전통방식 재현에 자신감을 보여 왔다. 그러나 홍 단청장의 확신과는 상관없이 숭례문 단청 훼손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사실 숭례문 단청은 채색을 미뤄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다. 단청작업에 어떤 문제가 있기에 작업까지 늦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일까. 가장 큰 문제는 단청의 전통기법이 단절된 상황이었다는 것이었다.
주로 단청이 떨어져 나간 곳은 연꽃문양에 사용된 분홍색 부분이다. 하지만 녹색 바탕 위에 분홍색이 드러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숭례문 복원 작업에는 녹색 바탕 위에 조갯가루인 호분을 칠한 뒤 분홍색을 칠하는 방식이 적용됐다. 하지만 이 흰색 호분을 다루는 과정이 단청 훼손의 단초가 됐다.
조갯가루인 호분을 나무에 칠하려면 이를 나무에 잘 붙어 있게 하는 접착제 성분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동물 가죽 등을 끓여 만든 아교가 접착제로 사용됐다. 그러나 습기에 약하다는 단점 때문에 197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분석 이후 아교보다는 아크릴 수지를 사용하는 것이 점차 국내에서 보편화됐다. 이후 문화재수리 표준시방서에는 단청안료 배합표에 아교와 함께 아크릴 수지가 명기되기 시작했다. 천연 접착제인 아교는 그렇게 자취를 감췄고 국내에서는 1980년대부터 채색용 아교 생산이 중단됐다.
그러나 숭례문에서는 ‘전통 방식’이 강조되다 보니 무리하게 아교를 쓰는 단청 채색방식이 선택됐다. 전통방식에 따라 습기에 취약한 아교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문화재청은 2011년 아교와 아크릴 수지를 비교 연구까지 했다. 당시 아교를 사용할 경우 수분이 유입되면 결합력이 떨어지고 안료가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있는 것이 지적됐다. 하지만 ‘전통 복원’의 의미 때문에 아교 사용을 강행했다. 대신 접착력이 약한 국내산 아교 대신 일본산 아교를 사용하기로 했다. 전통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일본재료를 써야하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접착제로 사용된 아교뿐만이 아니었다. 당초 숭례문 단청에는 전통기술 보존을 위해 천연안료가 사용될 것이라고 발표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안료들은 색감이 좋다는 이유로 일본산이 수입됐다. 그러나 수입된 일본산 안료는 천연광물에 인공색소와 돌가루가 섞여있는 ‘수간분채’로 사실상 합성안료였다. 애초에 재료에서부터 전통 복원의 취지가 퇴색된 것이다.
전통이 단절된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전통방식으로 복원한 단청은 곧바로 문제점이 드러났다. 복원 완료 후 3일째부터 단청이 떨어져나가는 ‘박락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개월 후에는 단청 곳곳에서 훼손이 나타났다. 1층 누각을 비롯해 2층 누각 단청에서도 연꽃무늬 단청 칠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문화재청의 종합점검 결과 모두 81곳에서 단청의 훼손이 발견됐고, 아래층보다 위층 누각에 단청 훼손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재위원은 “산업용으로 사용하는 국내산 아교는 최상급이지만 채화용 아교는 생산수지가 맞지 않아 생산이 자연도태됐다. 그래서 보통 채화용 아교는 일본산을 사용하는데 갑자기 전통방식으로 아교를 도입하려니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화학접착제인 아크릴 에멀전은 단청작업에 사용되던 물질이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숭례문 단청 작업에서와 같이 아교와 아크릴 에멀전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전통방식을 고집해 아교를 사용하다 문제가 생기자 아크릴 에멀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신축성을 비롯해 장력도 차이가 있어 충돌이 발생한다. 1층에 비해 두 재료가 같이 사용된 2층 누각에 훼손이 집중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천연안료를 사용해 채색한다는 것도 사실과 달랐다. 은은하고 단정한 느낌을 주지만 발색력이 약한 천연안료 대신 인공색소가 포함된 수간분채가 사용된 것이다. 천연안료와 수간분채는 가격 면에서도 20배에서 많게는 100배까지 차이가 난다.
천연안료에 적합한 아교를 사실상 화학안료인 수간분채에 사용한 것도 문제가 됐다. 고증을 거치지 않고 무리하게 전통기법과 천연안료를 고집하려 했던 것이 오히려 단청 작업에 독이 된 것이다.
숭례문 단청 부실복구 문제가 불거지자 문화재청은 지난 7일 “단청은 고증과 시공 방식 채택에 최소 5년이 걸릴 것”이라는 숭례문 부실복구 대책을 계획을 언급했다. 문화재청은 “안료와 아교 등 성능실험을 고증해 합리적으로 단청을 복원할 방침”이라며 “국내외 전통·인공안료를 전체적으로 수집해 물성을 분석하고 시공할 수 있는 품질 평가 기준을 만들 계획이다. 단청 재료 및 방식채택은 최소 5년 정도 점검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문화재청은 “최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자문단을 구성하고, 이런 모든 과정을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시민 모니터링단을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숭례문 부실 복원은 단군 이래 최대의 치욕적 전통 훼손 사건이다. 전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일본재료를 갖다 붙이는 게 대한민국 문화재 복원의 현실이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