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 황세손에 양녀 있다”
▲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왼쪽)와 며느리 줄리아 여사. 연합뉴스 | ||
비화 [2] “50년대 중반 이구 전하가 미국인 여성 줄리아와 결혼하려 하자 이를 황태자비 등 대부분의 황실 인사들은 심하게 반대하셨다. 황세손이 서양 여성과 결혼하면 그 후사를 이을 황손이 혼혈아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친왕께서 결국 승낙하셨다. 전하는 자신이 스스로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략결혼을 한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며 아들에게는 ‘너의 뜻대로 결혼하라’며 끝내 허락을 했다고 한다.”
비화 [3] “이구 전하가 줄리아 여사와 이혼할 때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황태자비는 처음 그 결혼에도 반대했으나 이혼에도 역시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줄리아 여사도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일본의 한 무속인 여성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긴 이구 전하는 끝내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내가 대리인 격으로 중재에 나서 조용히 이혼수속을 밟아야 했다. 내 중재로 줄리아에게 위자료를 주는 조건으로 간신히 80년 12월 협의이혼에 동의할 수 있었다. 당시 이 문제가 세간에 오르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재판부에 특별히 부탁했고 다행히 재판부에서도 옛 황실의 위신을 생각해 조용히 처리해주었다.”
비화 [4] “돌아가신 이구 전하가 전혀 자식이 없이 타계하신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그렇진 않다. 이구 전하께는 이은숙이라고 하는 양녀가 한 명 있다. 이 여성은 현재 미국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의 호적상에도 그가 현재 유일하게 이구 전하의 존속 자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여성은 말이 양녀이지 거의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이구 전하의 장례식 때에도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비화 [5] “이구 전하가 자신의 뜻대로 줄리아와 이혼을 했으나 당시 황태자비께서는 일본 무속인 여성과의 결혼만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으셨다. 대리인이었던 나 역시도 그 부분을 분명히 말씀드렸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두 분이 일본에서 동거를 하고 계신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해 돌아가신 후 확인해 보니 일본에서 두 분은 이미 혼인신고를 하신 것으로 나왔다. 아마도 일본 여성이 이구 전하께 강력히 청을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화 [6] “67년경 한 상궁이 내게 찾아와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직후 어떻게 될지 몰라 황실에서는 쓰는 인장 27여 점을 어느 곳 땅 속에 묻어두었다’고 전해왔다. 그 상궁과 함께 실제 파보니 항아리 안에 인장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워낙 오랜 세월이 지나다보니 일부 파손된 것도 있었다. 아무튼 그 인장들을 당시 창덕궁 낙선재에 계시는 황태자비께 드렸다. 그런데 2년 후 그중의 절반가량을 분실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내가 종로경찰서에 은밀히 수사를 부탁했는데 비밀리에 진행된 수사여서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했다. 결국 남은 인장 등을 대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