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조작→밀항기도 ‘물거품’ 범인 ‘무기수’ 복역중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숨진 김 아무개 씨는 두 번의 결혼으로 성이 다른 두 아들, 배 아무개 군(당시 22세)과 이 아무개 군(당시 8세)을 키우고 있었다. 김 씨의 두 번째 남편은 잦은 해외출장으로 장기간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았다. 김 씨와 내연남 설 씨가 가까워진 시기도 남편의 해외출장이 잦아지던 시점이었다.
설 씨는 “증권회사에 10년 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투자에는 전문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김 씨의 환심을 샀다. 김 씨도 ‘누나’라고 부르며 자신을 따르는 설 씨에게 별다른 의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설 씨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설 씨는 ‘투자 전문가’가 아닌 사기·횡령 등의 혐의로 4년째 수배 중이었던 전과자였다. 실제 나이도 설 씨가 ‘누나’라고 부른 김 씨보다 3살이나 더 많았다.
설 씨가 검경의 수배를 받고 전국을 떠돌며 도피 생활을 하고 있는 인물임을 몰랐던 김 씨는 설 씨의 말만 믿고 선물 옵션 투자를 시작했다. 초반 설 씨는 김 씨에게 높은 수익률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 또한 설 씨의 각본이었다. 김 씨는 선물 옵션에 8000만 원을 투자한 것도 모자라 집 전세금까지 빼내 설 씨에게 돈을 맡겼다.
하지만 설 씨는 주식 투자로 김 씨의 돈을 비롯해 자신의 금전까지 손해를 본 상황이었다. 큰돈을 잃은 김 씨는 설 씨에게 독촉을 하기 시작했다. 곧 김 씨의 남편도 외국에서 돌아올 시점이었다. 결국 돈 문제로 불거진 갈등은 살인·방화라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설 씨는 김 씨와 김 씨의 두 아들을 살해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설 씨는 화재가 발생하기 이틀 전인 3월 24일, 먼저 김 씨와 8살 난 김 씨의 둘째 아들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설 씨는 김 씨의 첫째 아들이 어머니와 동생을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시나리오까지 준비해둔 상태였다.
설 씨는 화재 사건당일인 3월 26일 집을 찾아온 첫째 아들에게 ‘휘발유를 사오고, 은행에서 현금 120만 원을 인출해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사건현장을 전소시킨 후 도피 자금을 가지고 도주하려는 계획이었다.
설 씨는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온 첫째 아들을 미리 준비해둔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첫째 아들의 사망을 확인한 설 씨는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시신을 집안 곳곳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설 씨는 앞서 살해한 김 씨와 둘째 아들의 시신을 꺼내 침대에 눕히고, 첫째 아들의 시신은 거실에 눕혔다. 자살을 위장하기 위해 첫째 아들 시신 옆에는 범행에 사용된 흉기를 놔두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설 씨는 도시가스 밸브를 파손해 가스가 새어나오게 한 다음 도주할 시간을 벌기 위해 불이 붙게 하는 모종의 발화장치를 설치했다. 설 씨의 시나리오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설 씨는 화재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공개수사로 전환한 지 15일 만에 부산 해운대에서 제보가 들어왔다. 설 씨와 닮은 인물이 식사를 주문했다는 찜질방 주인의 제보였다. 순천경찰서 관계자는 “찜질방 주인이 인근 식당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배 인물과 닮았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어 제보를 해왔다”며 “당시 순천에서 부산으로 경찰 30명이 내려갔다. 설 씨가 낌새를 느끼고 도주하지 않도록 찜질방과 PC방 가게 주인들 휴대전화로 용의자의 사진을 전송해 협조를 부탁했다” 고 말했다.
결국 인근 찜질방에 은신해 있던 설 씨는 검거됐다. 하지만 설 씨는 경찰에 검거된 이후에도 자신은 화재당일 광양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대며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검거당시 설 씨는 이미 외국으로 밀항할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설 씨 검거가 어려워졌을 것”이라며 “설 씨는 말도 잘하고 영리한 사람이었다. 국과수에서 설 씨의 신발에서 김 씨 첫째 아들의 혈흔이 발견됐다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자신이 미리 준비한 알리바이를 대며 강변했다”고 덧붙였다.
설 씨는 재판과정에서도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고 한다. 설 씨는 김 씨의 첫째 아들에게서 술 냄새가 강하게 났다며 모든 범행사실을 사망한 김 씨 첫째 아들에게 뒤집어씌우려 하기도 했다. 앞서의 경찰관계자는 “설 씨는 부인했지만 명백한 물적 증거가 있어 혐의를 입증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화재현장 복구 작업을 도왔던 전남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조용한 동네에서 일어난 방화로 인해 연기를 마신 주민들은 응급실 신세를 졌다. 화재 규모가 커 복구 작업도 오래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범죄피해자 지원금은 피해를 입은 이웃주민들과 방화로 인해 망가진 건물을 복구하는 데 쓰였다”고 설명했다. 현재 설 씨는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