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욕 하지마” 난도질 후 게임 계속
잠시 후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유 씨가 자리를 뜨더니 PC방 출입문을 나섰다. 이 씨 일행은 신경 쓰지 않고 하던 게임을 이어갔다. PC방으로 다시 돌아온 유 씨의 품에는 날카로운 흉기가 숨겨져 있었다. 이 씨 일행이 거슬렸던 유 씨가 게임을 하다말고 집에 들러 가져온 과도였다.
PC방은 곧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다시 돌아온 유 씨가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3m가량 떨어져 있던 이 씨 일행을 미리 준비해둔 과도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씨는 유 씨의 갑작스런 공격에 목에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이 씨의 일행도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유 씨의 칼에 팔과 머리, 어깨 등을 찔렸다. PC방 바닥은 순식간에 이 씨 등이 흘린 피로 흥건해졌다.
유 씨는 자신이 휘두른 흉기에 이 씨 일행이 쓰러져 신음하는데도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유 씨는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자신을 노려보는 다른 손님의 뒤통수를 가격하며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곧이어 상황파악을 한 다른 손님이 경찰에 신고를 하자 유 씨는 들고 있던 칼을 집어 던지며 손님의 휴대전화를 뺏어 들었다. 유 씨는 경찰과 연결된 휴대전화를 향해 “내가 사람을 찔렀으니 여기로 와라”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경찰과 통화를 끝낸 유 씨는 자리로 돌아가 담배를 피우며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태연하게 하던 게임을 했다. 유 씨가 하던 게임은 롤 플레잉 게임인 ‘대항해시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 3시께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PC방에 있던 손님들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공포에 떨어야했다.
난데없는 유 씨의 칼부림에 상처를 입은 이 씨 등 3명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자리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는 유 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했다. 유 씨는 별다른 저항 없이 경찰의 체포에 응했다.
대구 수성경찰서 관계자는 “유 씨는 사건 전날부터 밤을 넘기며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며 “게임에 몰두하던 유 씨는 이 씨 일행이 모여 얘기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유 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게임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명 ‘PC방 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 씨는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도 별다른 교류가 없이 지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 씨는 ‘나를 비웃은 것 같았다’는 석연치 않은 범행동기와 3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히고도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게임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진술하지 못했다.
앞서의 경찰관계자는 “유 씨가 과거에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참고인 진술이 있지만 여러 가능성을 두고 수사 중이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행도 가능성 중에 하나일 뿐”이라며 “현재 이 씨 등 3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