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상생의 길” 외환노조 “약속 깼다”
외환은행 노조가 8월 20일 명동 본점 앞에서 직원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기합병 분쇄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제공=외환은행 노동조합
하나금융지주가 마침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 작업을 공식 선언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과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지난 8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하나·외환은행 통합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지난 7월 3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이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 이후 채 50일이 안 돼 선언문 발표에 이른 것이다.
지난 50일간 김정태 회장은 물론 김종준 행장, 김한조 행장 등 하나금융 수뇌부는 조기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특히 김한조 행장의 행보는 남달랐다. 김 행장은 7월 7일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현재의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서는 조기 통합 논의 개시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불을 댕겼다. 이어 7월 17일에는 “조기 통합은 조직과 임직원 모두 상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인식하고 제 모든 것을 걸고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김 행장은 사내 인트라넷과 이메일을 활용해 외환은행 임직원들에게 여러 차례 조기 통합의 이유를 알렸으며 본점의 각 부서장들과 지역 영업본부 지점장들을 만나 설득 작업을 펼쳤다. 그 결과, 외환은행 본점 부서장·팀장 조직인 부점장협의회와 전국 영업본부 소속 지점장들이 조기 통합을 지지하는 의견을 공식 표명하기도 했다.
조기 통합 논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조기 통합에 반대하는 외환은행 노동조합(전국금융산업노조 한국외환은행지부·위원장 김근용)은 고립돼가는 듯한 모양새가 됐다. 또 대화와 설득에 적극 나서려는 경영진과 달리 외환은행 노조는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집단으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이에 대해 김보헌 외환은행 노조 전문위원은 “노조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두 행장이 만나 합병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겉으로는 대화하자면서 뒤에서는 직원 협박·회유작업을 펼치는 데 어떻게 대화 테이블에 나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합병하는 데 동의해달라는 것이며 합병 무산을 노조 책임으로 돌리기 위한 술책”이라고 말했다.
‘통합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한 이상 하나금융은 하나·외환은행의 합병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통합을 결의하고 통합추진위원회도 구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사천리로 진행해온 이 같은 사전작업과 달리 앞길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외환은행 노조와 합의가 가장 큰 숙제다. 두 은행의 합병 논의와 작업이 속도를 내면 낼수록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은 더 격해지고 있다.
지금으로선 노조 합의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외환은행 관계자는 “합의를 이끌어낼 때까지 노조를 계속 설득해나갈 것”이라면서 “끊임없이 접촉하다 보면 노조도 진정성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김보헌 위원은 “지난 한 달간 지점장들을 포함해 직원들을 압박하고 괴롭혀온 사측은 대화를 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다”면서 “고용안정이니 뭐니 하는 말이 나오는데 이런 사항들은 이미 2·17 합의서에 다 나온 것으로서 오히려 지난 합의서보다 못한 내용들”이라고 지적했다.
외환은행과 달리 하나금융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두 행장의 선언문 발표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한 뉘앙스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금융위에 (합병 승인) 신청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언문 발표는 ‘정식으로 한 번 해보자’는 차원에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외환은행 노조 설득에 대해서는 “외환은행과 함께해나갈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을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외환은행) 노조와 합의한 후에 금융위 신청이 있을 것”이라면서 “노조와 합의 없이는 합병 승인 신청도 없다”는 뜻을 전했다. 외환은행 측과 사뭇 다른 자세다. ‘두 행장의 선언문 발표에 의미를 두지 않으며 외환은행 노조 설득은 외환은행에 맡기는 것이냐’는 물음에 이 관계자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라며 모호한 답변을 했다.
하나금융 측의 말마따나 외환은행 노조와 합의 없이 조기 통합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설사 하나금융이 두 은행의 합병 승인을 신청한다 해도 노조와 합의가 없다면 금융위 인가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신제윤 위원장이 직접 “노조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유지만 노조 합의 없는 합병 신청을 인가한다면 2·17 노사정합의를 사측에 이어 정부도 깨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노사정 합의에서 노측만 철저히 배제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금융위가 노조 합의 없는 합병 승인 신청을 받아들인다면 전례를 남기게 된다. 다음에도 이와 같은 경우가 벌어지면 일단 큰 약속을 해놓은 후 상황에 따라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위 관계자는 “민감한 사안이니만큼 승인 요청이 정식으로 들어오면 내부 검토와 회의를 통해 결정할 문제지 이 자리에서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