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사 ‘곡소리’ 나는데 회장님 몸값은 ‘억소리’
박종수 금융투자협회 회장(원 안)이 외유성 출장 의혹과 고액 연봉 논란 등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은 금융투자협회 입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교황 방한을 앞두고 마중 준비로 전국이 들떠있던 지난 8월 14일, 한국금융투자협회(금투협) 여의도 사옥 1층에는 박종수 금투협 회장을 비난하는 벽보가 나붙었다. 금투협 노동조합이 작성해 게시한 이 벽보에는 박종수 회장이 외유성 출장을 다니느라 지난해 1년 동안에만 3억 원에 가까운 협회 예산을 썼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노조는 “지난해 5월 행사 참석차 부인과 동행했던 호주 시드니 출장의 경우 1등석 항공료 1400만 원, 숙박비와 현지 교통비, 행사비 등으로 4000만 원을 사용하는 등 5500만 원 가까운 예산이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해당 행사의 경우 동반한 부인은 등록비가 무료임에도 230만 원가량을 등록비로 올린 뒤 현지에서 돈을 돌려받았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박 회장은 호주 출장에서 돌아온 지 한 달여 뒤인 6월에는 선진 벤처산업을 견학한다는 목적으로 이스라엘 출장길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첨단 벤처기업의 산실로 꼽히는 만큼 증권협회 격인 금투협 회장으로서 투자유망 기업을 둘러본다는 차원의 방문 목적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출장 역시 부인이 동행했다는 점과 현지에서 진행된 엉뚱한 일정이 입방아에 올랐다. 박 회장 부부는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 성지순례와 베들레헴, 사해 투어, 크레타 유적지 방문 등 벤처산업과 무관한 일정에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회장의 출장은 이후에도 한 달이 멀다하고 이어졌다. 9월에는 룩셈부르크와 벨기에 브뤼셀을, 10월에는 미국 출장을 위해 비행기에 올랐고 이때마다 뒷말이 따랐다. 유럽 출장의 경우 1등석 항공권 등으로 8000만 원 가까운 비용을 썼다는 점이 구설을 불렀다. 미국에서는 뉴욕 금융시장 시찰이라는 방문 목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소재 와이너리 방문, 유람선 관광, 브로드웨이 뮤지컬 관람 등의 일정이 입방아에 올랐다.
박 회장의 해외출장 사랑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 6월에는 개최지인 브라질과 가까운 중남미를 다녀왔다. 노조에 따르면 박 회장은 이후에도 부인과 함께 러시아 출장 일정이 잡혀있었지만 중남미 출장이 문제가 되자 이를 취소했다.
박 회장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노조가 폭로한 경비는 회장 1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동행한 직원과 회원사 대표를 위한 비용도 포함된 금액이라는 것이다. 부인과의 동행도 국제행사의 관례에 따랐다는 입장이다. 박 회장 측은 “증권 관련 국제행사는 부인과 함께 참석하는 것이 관행이자 예의”라면서 “역대 회장들도 모두 부인을 동반했고, 행사에 참가하는 다른 나라 대표들도 예외 없이 부인과 함께 참가했다”고 설명했다. 부인의 경비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도 “금투협 규정에 부인과 함께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경우 여비를 지급하도록 돼있다”고 해명했다.
이런 와중에 오는 12월로 예정된 금투협 차기 회장 선거가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금투협은 한 해 예산만 600억 원에 달하고 160개가 넘는 회원사를 거느린 단체인 만큼 회장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늘 치열하다.
박종수 회장의 경우 연임에 도전하는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황건호 전 회장과 임주영 전 KDB대우증권 사장, 황성호 전 우리투자증권 사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이밖에 현직 대형 증권사 사장도 임기를 마친 후 선거에 뛰어들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선거캠프’까지 꾸렸고, 몇몇 후보들은 투표권을 가진 금투협 회원사들의 동향 파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나리오도 무성하다. 한 후보는 특정 인물에 밀려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질 경우 제3의 후보를 지지하며 지분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또 ‘누가 누구와 손을 잡았다’는 식의 합종연횡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마치 정치권의 선거전을 방불케 하는 모습에 증권가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회장 선거 때문에 회원사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금투협 본연의 임무가 뒷전으로 밀리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박종수 회장의 고액연봉 논란도 불거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이 금융위원회와 6개 협회들로부터 제출받아 지난 14일 발표한 ‘임직원 연봉 현황’에 따르면 박종수 회장의 지난해 연봉은 5억 3200만 원에 달했다. 기본급은 2억 8170만 원이지만 기본급에 버금가는 성과급을 받았다. 박 회장은 성과급을 기본급의 최대 100%까지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에도 박 회장의 연봉은 약 5억 4450만 원이었다. 여기에 매달 1200만 원씩, 연 1억 4400만 원의 업무추진비는 별도로 받았다. 최근 금융권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빈발하면서 최고경영자(CEO)들이 연봉을 대폭 삭감한 것과 비교된다.
금투협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선물사 등 국내 금융투자업계를 대변하는 민간협회다. 자체적인 수익 사업이 거의 없기 때문에 회원사들의 회비로 예산의 대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문제는 요즘 금투협 주력 회원사인 증권업계가 죽을 쑤고 있다는 점이다. 증권시장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증권사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비상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회원사들의 상황이 이런데도 업계를 대변하는 단체의 수장이 논란에 휩싸이자 업계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사실 여부를 떠나 증권업계가 사상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데다 세월호 참사 등으로 자숙하는 사회적 분위기임을 감안할 때 박 회장을 둘러싼 논란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씁쓸해 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