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침입 흔적 없고 유언장 내용도 이상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수사기록만 보고 재판을 하면 판사는 바보가 되기 쉽다. 얼마 전 대법원장은 검사의 밀실에서 만들어진 쓰레기 같은 수사기록은 던져버리라는 혹독한 말을 했다. 일부의 진실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었다. 나는 일단 수사기록에 나타난 전반적인 상황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수사관들의 눈과 손을 통해 기록으로 나타난 이 사건 범죄의 현장이었다. 먼저 죽은 하 영감의 시신을 발견한 소작인들의 모습부터 진술조서의 형태로 나왔다.
52세의 김일식은 하 영감의 과수원 구석의 3000평을 빌려 배나무를 가꾸어 왔다. 계속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하 영감에게 잘 보여야 했다. 지난번 소작인이던 장영두도 쫓겨났다. 갑자기 밭 임대료를 1000만 원이나 올리면 나가라는 얘기였다. 소작인들이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져 있었다.
그는 지주 하 영감이 볼일이 있을 때 자청해서 운전기사가 됐다. 과수원 곳곳의 음지에 눈이 남아 있고 아직 찬바람이 불던 지난 3월 3일 오후 하 영감을 모시고 법원에 갔다왔다. 하 영감은 독한 면이 있었다. 전에 소작을 하던 김 씨가 전기료를 안 냈다고 찾아가서 트랙터 열쇠를 빼서 가져와 버렸다. 지금 같은 민주시대에 그 소작인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소작인 김 씨는 하 영감을 업무방해죄로 고소했다. 하 영감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 재판정에 모시고 갔다 온 것이다. 하 영감은 사위하고도 땅을 놓고 재판을 했었다. 사위 이름만 빌렸었는데 사위가 욕심을 냈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작은아들만 명절 때 더러 다녀가곤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하 영감하고 법원에 갔다 와서 이틀 후에 전화를 했는데 영감이 받지를 않았다. 잠시 어디 갔나보다 생각했다. 일주일 후인 3월 10일 하 영감 집 앞을 지날 때였다. 철대문에 자물쇠가 밖으로 잠겨 있었다. 영감이 멀리 출타 중인 것으로 생각하고 또 무심코 지나쳤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조용했다.
또 다른 소작인 차경식도 하 영감에게 무슨 일이 난 것 같았다. 하 영감은 매일 그가 배 농사 짓는 걸 뒤에서 지켜보면서 잔소리를 하곤 했다. 3월 6일 해거름 무렵이었다. 비료포대를 경운기에 잔뜩 싣고 하 영감 집 앞에 가서 내렸다. 소리가 나면 금세 나와 보는 하 영감이었다. 그런데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그가 영감 집 앞에서 인부들을 데리고 일을 하는데도 하 영감은 창문조차 열지 않았다.
‘이상하네, 영감이 집에 있으면 당장 나와 볼 텐데.’
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생각했다.
3월 11일 오후 2시경이었다. 차 씨가 포크레인을 빌려 도랑을 파다가 전에 묻어 놓은 관에서 물이 새는 걸 봤다. 그는 하 영감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알리지 않으면 나중에 된통 혼이 날 것 같았다. 계속 신호가 가는데도 영감은 받지를 않았다. 그는 또 다른 소작인인 김일식에게 전화를 걸어 그 얘기를 했다. 김일식도 며칠 전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 영감이 혼자 있다가 쓰러져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이었다. 두 사람은 하 영감 집으로 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하 영감의 집 앞으로 갔다. 철대문은 계속 잠겨 있었다. 하 영감은 항상 대문, 현관문, 거실 문을 꼭꼭 잠그고 살았다. 대문 쇠창살을 통해 들여다봐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들은 뒤쪽 울타리 사이에 터진 곳을 알고 있었다. 그 구멍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갔다. 거실 출입문은 잠겨 있었다. 김일식은 평소 하 영감이 열쇠를 현관 왼쪽 문틀 사이에 숨겨두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 안을 손으로 훑어보았다. 열쇠가 있었다.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렸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조금 열었다. 뭔가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창문이 닫혀 있던 집 안에서 악취가 흘러나왔다. 김일식은 문틈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고 안을 보았다. 마룻바닥에 하 영감이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죽어 있었다.
두 시간 후 출동한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손 경위가 현장을 면밀히 살폈다. 사건 현장은 과수원에 붙은 26평의 단층 양옥이었다. 주변에는 전형적인 시골집들이 산재해 있었다. 거실 문 앞의 영감 시체는 회색바지와 미색내복을 입고 있었다. 투명테이프로 뒤로 결박당한 채 머리에 검정색 비닐이 씌워져 있었다.
실내는 청소를 하지 않아 지저분했다. 거실 창문 쪽으로 화분 2점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중 오른쪽에 있는 것은 넘어졌다가 다시 세운 흔적이 역력했다. 범인들에게 저항한 흔적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TV장식장 아래 장판에 핏자국들이 있었고 그걸 닦은 수건이 보였다.
3월 14일 오전 9시 35분. 서울 양천구 신월7동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 검시의 박민석이 스테인리스판 위에 올려진 죽은 하 영감을 살피고 있었다. 목에 강한 힘으로 졸린 자국이 있었다. 묶였던 팔목에 출혈이 있었다. 그건 사망하기 전에 즉 혈액순환이 될 때 결박됐다는 얘기였다. 안면부를 주먹으로 여러 번 맞은 것 같았다. 입술찰과상을 입었으나 출혈이 많지는 않았다. 다른 출혈부위는 없었다. 등, 허벅지, 팔에 굵기가 1.5㎝ 정도의 막대 종류로 폭행을 당한 흔적이 보였다. 얼굴에 씌운 비닐봉투는 사망 전후 언제 씌운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가슴을 연 후 위를 떼 내어 절개해 보았다. 수제비, 떡국을 먹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사인을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정했다.
경찰은 일단 면식범의 소행으로 추정했다. 외부에서 침투한 흔적이 없었다. 영감이 스스로 문을 열어준 것이다.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운 것도 그 근거였다.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은 일단 분쟁이 있었던 소작인들과 가족이었다. 130억대의 부자 영감은 상속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강력반에서는 먼저 죽은 영감의 통화내역을 파악됐다. 범행 당일 마지막 통화자는 장영두였다. 경찰서 강력팀에서는 일단 그들을 순차적으로 불러 참고인 진술부터 받기 시작했다.
3월 12일 일요일 장영두가 소환되어 조서를 받고 있었다. 장영두는 죽은 하 영감의 과수원 일부를 빌려 5년간 배 농사를 짓다가 지금은 다른 마을로 옮겨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하 영감이 죽은 걸 언제 알았어요?”
강력반의 고 형사가 물었다.
“오늘 저희 교회 교인들이 하 영감님이 칼에 맞아 죽었다고 해서 알게 됐습니다.”
“하 영감을 최근에 만난 적이 있어요?”
“3월 5일 오후 4시경 댁에서 뵀어요.”
“왜 만났죠?”
“영감님이 전기료 40만 원을 내지 않았다고 거기 남아 있던 제 컨테이너를 압류한다고 하시기에 댁으로 갔었습니다.”
“얼마 정도 그 집에 머물러 있었죠?”
“거실에서 20분 정도였습니다.”
“당시 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고 형사가 신경을 곤두세우며 물었다.
“평소에는 두세 시간씩 저를 붙잡고 말을 하셨는데 그 날은 별 말씀 없이 서둘러 얘기를 끝냈습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죠?”
고 형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하 영감님은 해가 지면 늘 문을 잠그는 사람인데 제가 대문을 나올 때 대문 밑에 열쇠가 꽂혀 있는 상태로 자물통이 떨어져 있어서 ‘할아버지 제가 문 잠그고 갈게요’ 하니까 ‘됐네, 이 사람아 놔두게’라고 말을 했어요. 전에 제가 그 과수원에서 일할 때는 먼저 대문을 잠그고 가라고 말씀했었죠.”
누군가 후에 다녀간 인물이 있다는 얘기였다. 영감이 기다릴 사람은 가족밖에 없었다. 그리고 죽은 것이다.
영감의 큰아들 하봉식은 오후 1시 20분경 동생 교식으로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평택경찰서로 갔다. 동생이 백병원에 있는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평소 거의 연락을 끊고 살던 사이였다.
3월 12일 오후 5시경 경찰서 형사과 박수정 형사가 영감의 큰아들 하봉식에게 묻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셨죠?”
형사가 물었다.
“사이가 좋지 않아서 별로 찾아가 뵙지 않았습니다. 1987년경 아버지가 사업하시던 걸 제가 맡아서 했는데 처음에 잘되다가 점차 사업이 기울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지분 전부를 빼 가시는 바람에 제가 부도가 났습니다. 아버지와 재산문제로 그때 말다툼을 많이 했죠. 아버지 성격이 원만하지 않아서 한 번 보기 싫으면 화가 풀려야 조금 말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큰아들인 하봉식 씨 앞으로 아버지가 재산을 준 게 있어요?”
“전혀 없습니다.”
“동생에게는 줬나요?”
“모릅니다.”
“현재 빚이 있나요?”
“1987년 당시 부도가 나면서 원금 6억의 빚이 지금은 30억 원이 됐습니다.”
“아버님이 그 부채에 대해 도와주지 않았어요?”
“전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요청한 적은 있나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버지 성격을 잘 압니다. 도와주지도 않고 말을 해 봤자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아 내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유언장을 쓴 걸 알죠?”
형사는 하 영감의 문갑서랍에서 발견된 유언장을 내보였다. 범인은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유언장 내용도 이상했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