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는 차별화 ‘차차기’는 동조화
여권의 몇몇 정치인들이 ‘김무성 1인극’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부터 정병국, 나경원, 유승민 의원, 최경환 부총리. 일요신문DB
지난 지방선거 때 경기지사 새누리당 경선에 나선 4선의 정병국 의원이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해 뒷말을 낳고 있다. 이슈를 가리지 않고 청와대, 정부와 각을 세우는 모습이어서 일각에선 “김무성 대표의 길을 터주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동지적 관계”,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고 했던 김 대표가 꽉 막힌 세월호 터널을 탈출할 수 있도록 정 의원이 행동대장으로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다. 여권 사정에 밝은 정치권 인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친박계 3선 이상급 재목들은 청와대가 전부 빼갔다. 서청원 최고위원도 친박의 큰형님으로선 태업 중이고, 현재 당내에 친박으로 꼽히는 인물은 고만고만하다. 김 대표로선 고속도로에 거치적거리는 차들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 2년차에 청와대와 각을 세우기가 어려운 김 대표로선 말을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할 형편인데 정 의원과 일부 소장쇄신파 의원들이 마치 김 대표의 의중을 대변하기로 작심이나 한 듯 연일 대청(靑) 쓴소리 모드다. 노림수가 있어 보이지 않은가.”
정병국 의원은 최근 박 대통령을 향해 “규제개혁 의지가 없다. 이런 식으로 규제개혁을 한다면 경제활성화가 안 된다”고 했다. 세월호법 처리에 대해선 “대통령이 유족을 만나야 한다”는 강경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정 의원은 “현재의 이런 문제들은 불신에서 시작됐다. 신뢰를 회복하는데 대통령께서 나서주셔야 된다”며 여당에서는 금기어인 ‘불신’이란 단어를 직접 사용했다. 정 의원은 한때 ‘남·원·정’으로 회자한 원조 소장파의 이미지를 되살리려는 모습이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본인의 이혼과 아들의 군 폭력 건으로 상처가 크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여의도 정가에서는 멀리 있어 돋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만끽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30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로 돌아와 3선이 된 나경원 의원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으로 추대됐고 당 최고위원회의 절차를 거쳐 임명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일각에선 수도권 판세가 좋지 않은 만큼 김 대표가 은근히 나 의원을 미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또 김 대표가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활용할 홍보대사(?)로 나 의원을 키울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동작을에 공천을 받은 것도 당내에서 나 의원을 키우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말도 있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나 의원에 대해 이런 평가를 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노회한 당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용도로 나 의원이 적격이라는 평가가 있다. 비주얼 탓에 탤런트 정치인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고, 상대적으로 콘텐츠 부족하다, 당내 선거는 다 끼어든다, 여성 의원들이 싫어한다 등등의 갖은 말들도 나오지만 판사 출신의 미모가 출중한 국회의원은 대권을 꿈꾸는 인사들로선 영입 영순위일 수 있다. 내년 원내대표로 김 대표가 나 의원을 밀고 언론에 함께 오르내리면 대중성 확보 효과가 클 것이란 분석도 적잖다.”
하지만 나 의원은 청와대가 기피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2011년 전당대회 때나 크고 작은 선거에서 지원유세에 나서며 본인을 ‘제2의 선거의 여왕’으로 칭했다. 당시 선거의 여왕으로 칭송받던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후문이다. 친박 내에선 나 의원 비토 분위기이고, 당내 적이 많다는 약점도 있다.
김 대표가 당 사무총장으로 영입하려고 공들였던 유승민 의원도 칩거를 끝내고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TK(대구·경북) 정치권에서부터 시작해 전방위로 교류를 시작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당 사무총장직은 고사했지만 김 대표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당 혁신위원장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김 대표가 ‘혁신 브레인’으로 유 의원을 내세울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나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으면서 리스트에서 빠졌다.
여권의 전략기획 관계자는 “김 대표와 유 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이전부터 형님 아우로 관계를 맺어왔고 크고 작은 싸움에서 손을 잡아왔다. 이번 혁신위원장은 차기 총선용 새누리당 개혁을 주도할 주인공이어서 김 대표가 인선에 가장 신경 쓰는 분야”라며 “유 의원도 김 대표가 다시 직을 제안한다면 거절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정치권 인사는 “정 의원, 나 의원은 주인을 물지 않는 애완용이라면 유 의원은 호랑이 새끼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적잖다”면서도 “김 대표가 유 의원을 초빙한다면 대탕평임은 물론이거니와 신공항 때문에 남이 된 PK(부산·경남)와 TK의 화해무드를 조성할 수도 있어 이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해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미 체급을 많이 끌어올렸다고 해석한다. 최 장관이 최근 밝히고 있는 각종 경제정책이 ‘근혜노믹스’가 아니라 ‘초이노믹스’ 내지는 ‘최경환 효과’로 회자되고 있는 까닭이다. 정치분야 소식을 파악하는 기관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서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은 최 부총리를 차기 주자로 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무성 대표가 최근 관훈클럽 토론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본인의 이름을 빼달라고 하면서 새누리당 분위기가 묘해지는 모습이다. 곧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해 지역쟁탈전 내지는 세력화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세월호 정국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그 시작이란 것이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