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거부하면 몽둥이 찜질·성추행”
▲ 함승희(왼쪽), 심재륜 변호사 | ||
연예계 전반에 걸친 폭력조직들의 ‘개입’ 문제는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나이트클럽이나 유흥업소 등에 기반을 둔 폭력조직들이 폭력 등을 동원해 연예인들의 출연이나 수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관행처럼 굳어져 온 일이었다.
80~90년대처럼 폭력조직들이 연예인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사례는 줄어들었다고 하나 아직도 과거의 관행들이 상당 부분 답습되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폭력조직이 연예계에 깊숙이 개입한 충격적인 정황들이 처음 수면 위로 공개된 것은 지난 90년 당시 노태우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을 계기로 검찰 내에 조직된 민생특수부에 의해서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 1부장이었던 심재륜 변호사를 중심으로 조직된 서울지검 민생특별수사부는 양은이파, 서방파, OB파 등 전국 주요 8개 폭력조직을 ‘분쇄’하는 과정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폭력조직의 연예계 개입 실체를 밝혀냈다.
당시 수사 검사였던 심 변호사와 함승희 변호사를 만나 당시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던 ‘연예인 폭행 사건’ 등 ‘연예가 기생 조폭’들에 대한 수사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권상우 씨 사건으로 서방파 전 두목인 김태촌 씨가 다시 언론에 부각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언론이 두 변호사를 자주 방문하는 것 같다.
함(승희) 변호사 : 오랜만에 기자들이 찾는 것 같다(심재륜 변호사는 모 방송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 함 변호사를 연결시켜 줬다고 귀띔했다. 심 변호사는 얼마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 89년 제주 KAL호텔 카지노 사건 수사 당시 함 변호사가 제주에 파견돼 김태촌 씨 행세를 하며 실태 조사를 벌였던 일화를 기자에게 밝힌 바 있다).
사실 김태촌 씨에 대해서는 조승식 검사(현 인천지검장)가 잘 안다. ‘범죄와의 전쟁’ 이후 두목급 조폭 수사는 조승식 검사와 나누어서 맡았는데 나는 일명 ‘용팔이 사건’(87년 통일 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던 이 아무개 씨를 전담했고 조 검사가 김태촌 씨를 맡아 검거까지 했다.
―당시 폭력조직의 연예계 ‘기생’ 실태 포착 계기는.
함 변호사 : 89년 11월 연예인협회장을 맡은 유명 코미디언 A 씨 등이 여의도에 모여 조폭 근절 궐기대회를 개최한 것이 수사의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수사는 어떻게 진행됐나.
함 변호사 : 궐기대회 소식을 들은 후 보통 일이 아니다 싶어서 A 씨를 검찰로 불렀다. 그런데 A 씨는 “도저히 말 못하겠다”, “모른다”, “말하면 방송 출연이 어려워진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A 씨는 궐기대회를 연 이틀 후 집 앞에서 폭력배들을 만나 협박을 당했다고 한다. 폭력배들이 나이가 어렸다는데 이들이 A 씨에게 반발을 쓰며 “××야. 남들이 맞은 것은 칼이 아니라 침인데 너도 한번 맞아볼래”라고 위협했다고 하더라.
우선 신문 기사부터 뒤졌다. 연예인과 조직폭력배를 심층적으로 다룬 주간지 기사 2년치를 모았던 기억이 난다. 기사를 자세하게 분석하니 조폭에게 당한 피해 연예인들이 50명 정도 나오더라. 한 명씩 불러서 조사했는데 약 15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연예인들은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피해자 조사만 한 달 정도가 걸렸다. 대체로 매니저와 연계된 폭력조직들이 마음대로 이중, 삼중으로 유흥업소와 출연 계약을 맺은 경우가 많았다.
심 변호사 : 유흥업소가 관건이었다. 당시는 각 폭력조직들이 자신들의 유흥업소에 인기 연예인을 서로 출연시키기 위해 경쟁을 벌일 때다. 이를 위해 폭력조직 인원이 아주 조직적으로 동원됐다.
톱가수 B 씨는 출연 계약도 하지 않은 마산, 창원, 순천 등의 나이트클럽이나 스탠드바로 납치당하다시피 끌려다니며 노래를 불러야 했다. 또 인기 개그맨 C 씨는 미사리의 특정 유흥업소에는 출연하지 않는다고 버티다 조정 경기장으로 끌려가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조폭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당했다.
폭력조직이 운영하는 유흥업소에 출연하던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출연료의 30%를 뜯겨야만 했다. 특히 코미디언 A 씨는 아예 출연료의 70%를 장기어음으로 받기도 했다.
함 변호사 : 이른바 ‘연예인 폭력 사건’ 수사의 출발은 바로 가수 B 씨 사건이었다. B 씨가 전남 여수 모 나이트클럽의 출연을 강요당한 뒤 이를 거절하자 폭력배들에게 몰매를 맞고 납치당한 사건이다. 불행중 다행으로 그는 택시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수사 과정에서 B 씨에게 물어보니, 지방에 가면 전봇대 등에 영문도 모르는 업소 전단지가 붙어 있었는데 아예 그 전단지에는 마치 자기가 장기 출연하는 것처럼 소개되어 있었다고 하더라.
더욱 기가 막혔던 점은 우리가 수사를 하던 시점에 이미 이 사건이 지방 해당 검찰청에서 가수 B 씨와 업소 종업원과의 우발적인 싸움으로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것이었다. 허겁지겁 알아보니 해당 검찰청이 벌금 100만 원의 약식 사건으로 막 수사를 종결하려던 상태였다.
검찰이 사건을 한 번 종결하면 다시 재수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얼른 해당 지청장에 전화해 사건 종결을 막았던 기억이 난다. 그뒤 관련 피의자를 구속시켰고, 벌금 100만 원에 풀려날 뻔했던 그 폭력배는 3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여성 연예인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함 변호사 : 호청련(호국청년회)의 충청지역 지부장 한 사람이 여자 가수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 이 사람은 지역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이었는데 여가수가 업소 출연에 응하지 않자 일을 저질렀다.
수사를 해보니 가수 매니저가 중간에서 일을 꾸몄더라. 매니저가 여가수에게 업소 사장과 맥주나 한잔 하자며 동행하자고 했고, 여가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사장 차에 탔는데 공교롭게도 매니저는 차에 타지 않았다.
매니저는 가수에게 “뒷차로 간다”고 말하고는 따라가지 않았고 결국 업소 사장이 충주 지역의 한 공원으로 여가수를 끌고가 강제로 추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업소 사장은 전과 5범이었고 그 지역 내에서는 경찰 고위 간부에게도 반말을 할 정도로 힘이 대단했다.
이 사건 수사 중에 민생특수부에 함께 있던 후배 문세영 검사(현 변호사)가 “매니저들이 더 나쁘다”라며 연예인 매니저들에 대한 집중 수사를 제안했다. 곧바로 매니저들을 조사하니 일부 방송 PD들이 연예인 매니저 등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돈을 받고 가수들의 인기 순위나 가요 대상 수상자를 조작한 혐의가 드러나더라.
덧붙이자면 연예인이 유흥업소를 차려도 폭력배들이 가만두지 않았다. 조잡한 물건을 사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비’가 필요하다면서 팔아달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국립학교’(교도소) 학비를 도와달라는 식이었다.
―연예인 폭력 수사 과정에서 외압은 없었나.
함 변호사 : 제주 KAL 호텔 카지노 사건을 수사할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특별한 감시를 받았던 것과 같은 외압이라든가 수사 방해 공작 등은 없었다(심 변호사는 특수 1부장 시절 제주 KAL 호텔 사건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집무실에 상주한 안기부 직원 두 명으로부터 감시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다만 수사 때문에 유명 연예인들을 부르면 꼭 잘나가는 정치인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알아보니 별 것 없던데”, “그 사람만은 수사 때문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 달라”는 전화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권상우 씨 사건을 바라보며 느낀 점은.
함 변호사 : 이번 검찰 수사는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폭력조직과 정치권 인사 그리고 연예인이 묶인 삼각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점은 고부가가치 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연예 스타들은 폭력조직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돼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