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고개 숙일 순 없다’ 특급 주문
할아버지들에 성매매를 위해 접근하는 ‘박카스 아줌마’가 한동안 이슈가 되기도 했다. 왼쪽은 영화 <죽어도 좋아>의 스틸 컷.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한다’는 말이 틀린 말 아니다.”
비뇨기과 의사인 이 아무개 원장은 할아버지들 사이의 화두가 ‘성기능 개선’이라고 단언했다. 아흔 살이 넘는 환자도 받아본 적이 있다는 게 이 원장의 말이다. 젊은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대부분의 할아버지들이 여전히 왕성한 성생활을 이어가고 있거나, 이어가길 바라고 있다. “그게 돼?”라고 묻지 마시라.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라”는 게 요즘 할아버지들이다.
실제로 사랑의전화복지재단 사회조사연구소가 지난해 60세 이상 남녀 250명을 대상으로 성생활 여부를 조사한 결과 61.6%가 ‘성생활을 지속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빈도는 ‘월 평균 2회’가 36%로 가장 많았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성생활을 한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또 한국노인의전화에도 성생활과 관련된 상담 건수가 해마다 10%씩 증가하는 추세며, 연평균 상담건수 중 열 건 중 한 건 정도가 이성문제 등 노인들의 성상담과 관련된 내용이다.
전립선비대증 등 질병을 치료하러 오면서 ‘특별한 주문’을 하는 할아버지도 많다. 성기능 개선제 처방을 은근슬쩍 부탁하는 것. 이 원장은 “노골적으로 다짜고짜 ‘비아그라’ 달라는 분들도 많다.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없다면 대부분 처방해 드린다”고 말했다.
화이자의 비아그라가 특허만료가 되기 이전에는 가격이 한 알에 1만 6000원 정도로 고가였기 때문에 이런 약품을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비아그라의 제네릭(복제약)이 대거 나오면서 이제 5000원에서 6000원 선이면 같은 기능의 약을 살 수 있다. 때문에 할아버지들이 부담 없이 약을 요구한다고 한다.
성기능 개선제 과다복용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일도 심심찮게 보도가 되는 게 현실인데 빈번한 처방이 문제되진 않을까. 이에 대해 “그런 일은 잘 없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과다하게 복용해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는 다소 서글픈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약으로도 효과를 못 본 이들은 수술을 감행하기도 한다. 보형물을 넣는 확대술로 발기부전 등에 효과를 보려는 것이다. 확대술을 한 할아버지들은 친구들로부터 크게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고. “수술을 받았던 할아버지가 와서 ‘요즘 점심을 돈 내고 사먹을 일이 없다’고 말했다. 무슨 얘긴가 들어보니, 친구들이 돌아가며 밥을 사면서 ‘한 번만 보여 달라’고 한다더라. 다들 수술을 하고 싶긴 한데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걱정스러우니까 보고 결정하겠다는 거다”는 게 이 원장의 말이다. 실제로 삼삼오오 모여 상담을 받으러 오는 할아버지들도 많다.
성 기능에 관심이 많은 건 비단 할아버지들만의 일이 아니다. 할머니들도 소위 말하는 ‘이쁜이 수술’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다. 한 성형외과 원장은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사실을 알게 돼 복수하고 싶다며 이쁜이 수술과 얼굴 주름제거 수술을 받고 돌아갔다”는 일화도 전했다.
60대가 넘어가면 피부가 처져 흔히 맞는 보톡스로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초미세 실을 얼굴에 심어 피부를 당기는 수술을 한다. 이마 헤어라인을 따라 절개하고 늘어진 피부를 잡아당겨 팽팽하게 만드는 수술도 주로 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이런 수술은 600만 원 정도로 매우 고가다. 정 원장은 “보통 이런 수술은 경제력이 있는 할머니들이 주로 와서 한다. 간혹 쌈짓돈을 모아서 수술을 받는 분도 있다”며 할머니들의 리프팅 열풍을 전했다.
할머니들 사이의 ‘워너비’ 연예인이 따로 있지 않을까. “젊은 사람들은 와서 ‘연예인 누구처럼 해주세요’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할머니들은 그런 건 별로 없다. 최대한 티 나지 않는 걸 원하기 때문에 ‘김수미처럼 빵빵하게만 아니면 된다’고 당부하는 분들이 다수다”고 말했다.
미에 대한 갈구는 할머니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들도 젊어 보이고 싶긴 마찬가지다. 정 원장은 “한 번은 60대 중반 남성이 오셔서 주름 제거 수술을 받았다. 진료를 오실 때마다 애인들에 대한 얘기를 언뜻언뜻 비쳤다. ‘세컨’, ‘서드’에게 잘 보이려 수술을 받는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 병원 문 두드리기를 불사하는 이들에게도 ‘황혼 로맨스’는 여전히 낯 뜨거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대놓고 데이트를 즐긴다고 말하기엔 젊은이들의 손가락질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성기능 개선제의 값이 내려 중국산 불량 약품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여성들이 대부분인 약국에 가서 성기능 개선제가 포함된 처방전을 내밀기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할아버지들이 많다. 때문에 여전히 불량약을 알음알음 구해 몰래 산다”고 실태를 전했다.
음성적 성매매 역시 할아버지들 사이에 여전히 만연하다. 한동안 ‘박카스 아줌마’로 불리는 노년 성매매 여성이 이슈가 되면서 종로 일대 경찰서에서는 합동 단속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가 찾은 인사동, 영등포 일대에서는 여전히 박카스 아줌마로 보이는 이들을 흔히 목격할 수 있었다.
진분홍 립스틱에 원색의 옷을 입고 박카스나 ‘짝퉁’ 비아그라를 담는 작은 가방을 멨다면 열에 아홉은 박카스 아줌마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지난 2일 영등포 시장 일대를 찾았을 때 이런 차림의 여성이 할아버지에게 ‘작업’을 거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 원장은 “노년층이 성생활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건 건강한 현상이다. ‘노년의 사랑은 주책맞은 것’이라는 인식을 차츰 없애야 노년층의 건강한 성생활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