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려도 너무 안 팔려” 체질개선 시도하지만…
최근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석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4월 올해 ‘먹거리’로 앞세웠던 스마트폰 ‘갤럭시S5’를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신기할 정도로 안 팔린다”고 되뇌었다. 이는 삼성전자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가 ‘진짜 위기설’로 확산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2분기 ‘어닝쇼크’ 수준으로 영업이익이 하락했는데, 3분기 전망에 대해 삼성전자 스스로 “어렵다”고 하는 게 엄살 수준이 아니라는 얘기다.
삼성전자가 9월 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4 개막에 앞서 삼성 언팩 행사를 갖고 갤럭시노트4를 공개했다. EPA/연합뉴스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증권가의 시각은 이미 바뀌었다. 증권사들이 두 달 새 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20% 가까이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9월 1일 기준 증권사 27곳이 제시한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 평균(컨센서스)은 6조 9876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10조 1636억 원)보다 무려 31.2% 적은 것이다.
증권사들의 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두 달 전인 7월 초만 해도 8조 6000억 원대에 달했으나, 한 달 전인 8월 초 7조 5000억 원대로 1조 원 이상 감소했다. 8월 말부터는 5조 원대 후반을 예상하는 전망까지 속속 등장하며 전망치 평균이 6조 원대까지 내려앉았다.
이 같은 전망치 하락은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이 일회성 요인이 아니라 스마트폰 가격 경쟁 심화 등 구조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란 분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 삼성전자의 정보통신·모바일(IM)부문 영업이익은 4조 42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조 2800억 원에서 2조 원가량 폭락했다. 스마트폰이 포함된 IM부문은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회사 내 비중은 절대적이다. 김영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와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며 “하반기에도 기초여건(펀더멘탈) 모멘텀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뿐만 아니라 ‘안방’도 문제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국내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59%로 넉 달 전인 지난 3월 69% 대비 10%포인트 떨어졌다. 중국의 저가폰 공세 못지않게 국내 점유율 감소도 위기감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내핍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본사 근무 인력의 15%를 사실상 구조조정했고, 경상경비의 30%를 줄이라는 내부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무선사업부 임원들은 올해 상반기 성과급(TAI) 가운데 25%를 자진 반납하기도 했다.
실적부진에 대한 문책성 인사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월 국내 모바일 영업을 총괄하던 이종진 전무가 한국총괄 모바일 영업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갤럭시S5를 비롯한 주력 스마트폰의 국내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임원들 사이에는 ‘연말 대학살설’이 파다하다. 신상필벌의 문화가 엄격히 적용돼온 인사정책의 흐름을 보면 실적부진에 따른 인사태풍이 거셀 수밖에 없다.
‘턴어라운드(실적회복)’의 모멘텀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다. 삼성전자는 4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인 유럽 최대의 가전전시회인 ‘IFA2014’를 앞두고 ‘갤럭시노트4’를 공개했다. 9월 중 국내는 물론 순차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내놓는다. 하반기 최대 기대작이다. 하지만 갤럭시노트4가 뛰어넘어야할 경쟁상대는 노트처럼 대화면을 장착한 애플의 ‘아이폰6’다.
삼성전자 주주총회. 사진제공=삼성전자
미국 IT전문매체 <씨넷>은 지난 1일 “갤럭시노트4가 공개된 이후 1주일 뒤에 공개되는 애플의 새 아이폰 모델이 삼성전자에 많은 압박을 가하고 있다”며 “그간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갤럭시S 시리즈와 애플 아이폰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 갤럭시노트4는 대화면 시장에서 독주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고 보도했다.
애플이 오는 9일 공개할 아이폰6는 4.7인치, 5.5인치 두 가지 모델이다. 갤럭시노트4와의 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IT전문조사기관 가트너의 반 베이커는 “삼성전자는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들의 무기고에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갤럭시노트4의 기능과 디자인 등에서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면 삼성전자는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갤럭시노트4의 혁신성이 이제껏 최대 장점으로 평가됐던 대화면과 ‘S펜’ 기능의 확장에 머물렀다고 평가를 받는다면 갤럭시노트4의 수요도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스마트폰을 제외한 신수종 사업 전망도 밝지 않은 것도 문제다. 삼성전자는 지난 2일 의료기기 제조 자회사인 삼성메디슨과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신수종사업으로 택한 의료기기 분야 성장에 본격적으로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삼성메디슨은 초음파 진단기 등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삼성전자가 2011년 인수해 68.45%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일각에선 삼성전자의 글로벌 판매망을 활용할 경우 의료기기 시장의 새 강자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큰 의미가 없는 합병”이란 평가가 많다. 이민희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메디슨은 삼성전자가 인수한 뒤 실적이 부진했다. 의료기기 사업 자체가 이미 글로벌 과점화된 상태이고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이라며 “상황이 녹록지 않자 합병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이 이런저런 사업에 도전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미국의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개발업체인 스마트싱스와 시스템 에어컨 공조제품 유통업체인 콰이어트사이드를 잇따라 인수한 데 이어, 3일에는 캐나다 모바일 클라우드 솔루션 전문업체인 프린터온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1983년 세워진 프린터온은 어느 모바일 기기에서도 쉽고 간편하게 프린팅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전 세계 120개 국가에 제공해왔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수를 계기로 모바일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기업 간 거래(B2B) 고객 확보, 모바일 프린팅 표준화에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먹거리로 추진해온 사물인터넷 기술 확보를 통한 스마트홈 시장의 주도권, B2B 시장을 위한 솔루션 확보를 위해 인수합병에 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인수합병 전략이 실제로 삼성전자의 체질변화를 이끌어 ‘대반전’을 일궈낼 수 있을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