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기는’ 부하 발목 쳐 기강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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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거된 중앙훼미리파 조직원들. | ||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5월 2일 ‘중앙훼미리파’ 조직원 60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붙잡아 두목 한 아무개 씨(43) 등 22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조직원 3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국제평화신도시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평택지역에서 주로 활동해온 이들 중앙훼미리파는 대형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13억 원 상당의 세금을 포탈해 조직 운영자금을 마련해왔고 지역 업주들로부터 1억 원 상당의 금품을 갈취해왔다고 한다. 이들 조폭은 각종 행사와 엄격한 규율로 조직력을 강화하며 보란 듯이 지역의 밤거리에 군림해왔지만 1년여에 걸친 경찰의 끈질긴 추적을 끝내 피할 수는 없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평택 시내의 한 유흥가. 험상궂은 얼굴의 건장한 사내들 한 무리가 나타난다. 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인근 유흥업소는 물론 영세 상가를 순례하며 사장들에게 ‘안부’를 묻고 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괜히 시비를 건다. 눈이 마주쳤다거나 어깨가 스쳤다는 이유 하나로 욕을 해대고 폭력을 휘두른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순식간에 거리를 접수한 사내들. 저 멀리 골목 입구에 번쩍번쩍 빛나는 벤츠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오자 일제히 달려가 정렬을 갖추고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며 “형님, 안녕하십니까”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멈춰선 벤츠 뒷좌석의 차창이 내려가고 어둠 속에서 중년의 한 신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신사는 무리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사내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한다. 그 사이 골목으로 들어서려던 다른 차들이 경적을 눌러보지만 그저 ‘형님의 벤츠’ 뒤에 줄을 잘못 섰기에 이들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골목이 자동차와 조폭들로 가득차자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 외식을 하러 나왔던 가족들, 데이트 나온 연인들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입 밖으로 볼멘소리를 꺼내지는 못한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평택 시내 밤거리에서 자주 목격되던 광경이다. 이 지역 미군부대 주변, 시내 유흥가, 먹자골목 등을 주 무대로 세를 과시하며 업주나 상인들을 상대로 갈취행위를 벌여온 중앙훼미리파. 불안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던 주민들은 결국 참다못해 경찰에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민들의 원성이 차츰 높아갈 즈음 경찰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사실 경찰은 진작부터 이들 조직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폭력조직의 특성상 이들이 물밑에서 활동하는 데다 피해자들의 경우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못하거나 이들의 협박에 고소를 취하하는 터라 그동안 수사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철저한 보안 속에서 이들의 행적을 뒤쫓으며 피해자를 확보하고 하나씩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경찰의 수사망이 차츰 좁혀오자 중앙훼미리파 내부에서도 이상기류가 포착됐다. 나이 들어 ‘품위’를 지키며 지역 유지로 행세하고 있던 상부 조직원들은 밤거리를 휘저으며 행동대원으로 활동하던 하부 조직원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자신들에게까지 수사가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그동안 추적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 사용을 금지한 채 한적한 유원지 민박촌이나 산장 등에서 은신해왔다고 한다. 이들은 특히 은신 중에 조직원들이 흔들리는 걸 막기 위해 나이대와 서열이 다른 7인씩 3개조를 짜서 서로 통제하며 생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끈질긴 추적 수사 끝에 결국 이들 하부 조직원들은 물론 두목까지 잡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경찰에 따르면 폭력조직은 두목 등 상부조직원을 잡아야 뿌리까지 소탕할 수 있다고 한다. 대개의 폭력조직을 보면 하부 조직원,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조직원들이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하지만 하부 조직원은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저 조직의 세력을 넓히는 존재에 불과하므로 이들을 많이 붙잡는다고 해서 그 폭력조직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따라서 일단 두목을 찾아내고 혐의를 입증해 내는 게 폭력조직 수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중앙훼미리파는 지난 94년 7월경 반대파 조직원을 살해한 혐의로 5년 복역한 후 출소한 두목 한 씨가 기존 조직에 주변 폭력배들을 규합해 만든 폭력조직. 이들은 2002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유흥업소 4곳을 직접 운영하며 바지사장을 내세워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수법으로 13억 원 상당의 세금을 포탈하는 한편 유흥업소, 게임장의 업주와 영세 상인들로부터 보호비 명목으로 1억 원가량의 돈을 뜯어내 조직 운영자금으로 사용해왔다. 특히 이들은 거대 폭력조직임을 내세워 대담하게도 은행 계좌를 통해 ‘보호비’를 송금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훼미리파의 범죄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2005년 12월에는 평범하게 살고자 조직을 탈퇴하려다 폭행을 당한 후 경찰에 진정서를 낸 Y 씨(44)에게 4명의 조직원으로 구성된 일명 ‘작업조’를 보내 흉기로 살해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경찰에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B 씨(22)에게 둔기를 휘둘러 실명 위기까지 가는 전치 6개월의 중상을 입혔다. 지난해 7월에는 반대파 조직원이 자신들의 관리 구역을 활보하고 다닌다며 10여 명이 도로 한복판에서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는가 하면 조직의 대(?)를 잇기 위해 고교 ‘일진’ 출신 등 지역 젊은이 8명을 끌어들이려다 거절당하자 이들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야산으로 끌고가 야구방망이로 집단 폭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조폭은 지난 2002년 8월엔 두목과 부두목에게 버릇없이 행동했다며 K 씨(36)를 납치, 심하게 폭행해 장애인으로 만들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이들은 유흥주점 탁자 위에 K 씨의 양발을 올려놓고 야구방망이로 수회 내리쳐 발목을 부러뜨리는 잔인함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여성운전자의 차량에 고의로 부딪쳐 교통사고로 위장, 피해자를 협박해 700여만 원의 합의금을 갈취하고 지역 술집에서 조폭임을 내세워 1000만 원 상당의 주대를 떼먹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은 선배조직원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친 후 달아나자 후배조직원을 내세워 운전자를 바꿔치기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중앙훼미리파가 그간 보인 범죄 행태는 폭력조직의 전형적인 모습을 고루 갖춘 ‘조폭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이들은 군대보다도 엄격한 5대 강령을 만들어 조직의 기강을 다스리고 수사기관에 검거되었을 때 조직을 보호하는 요령 등을 수시로 교육했으며 특히 구역을 침범한 반대파나 탈퇴 조직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응징’에 나섰다고 한다.
특히 두목 한 씨 등 수뇌들은 하부 조직원들에게 떡값 등 용돈을 주고 축구시합, 단체 회식, 야유회 등으로 결속을 강화하는 한편 ‘작업조’로 활동하다 구속된 조직원들에겐 조직 차원에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옥바라지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출소한 조직원에 대해서는 환영행사를 열고 유흥업소 등에 취직시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주는 등 조직을 꾸리는 데 남다른 수완을 발휘해왔다고 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폭력조직이라 하면 일반인들은 자신과 상관없다고 여기지만 이들 조직은 절도범이나 성폭력범 등 못지않게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라면서 “부녀자, 약자 등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것은 물론 사람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고도 영웅심을 가지며, 일부 철없는 청소년들을 꼬드겨 조직원으로 만들어 인생을 망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달아난 나머지 조직원 13명을 추적하는 한편 지역 토착 군소 폭력조직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장유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