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만 남은 법정 통역이 없어 법석
“이거 큰일 났네. 나 일본에 출장 가야 하는데.”
뒤따라오던 방글라데시인 통역이 투덜거렸다.
“나 사업 지장 있어. 통역 안 해요.”
그가 나를 보고 내뱉었다. 먹고 살기 힘들면 동족이란 개념도 희박해지는 것 같았다.
법원 마당에는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 듯한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앞에 허리가 꼬부라진 백발의 노파가 걸어가고 있었다. 죽은 하 영감의 부인이었다. 모두들 불쌍한 사람이었다.
잠시 후 나는 사무실에서 장영두의 형 장영목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장영목이 화가 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동생이 최후진술을 하는 걸 보니까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옵니다. 차라리 랭가같이 목이 콱 메서 주저앉아 버리든가하지 동생 영두의 최후진술을 보면 변호사님이 이미 변론한 걸 주절주절 따라하고 있어요. 정말 답답합니다. 재판장보고 ‘한 번만 살려주십쇼’라고 왜 솔직히 사정을 하지 못하는지 몰라요. 아무리 동생이지만 바보 같아요.”
“앞으로 대법원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내가 장영목에게 물었다. 이제 나의 역할은 대충 끝이 났다.
“더 이상 돈이 없습니다. 대법원은 아예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장영목의 목소리에는 힘이 쭉 빠져 있었다. 사흘 후 선고에서 장영두는 무기징역이 선고될 가능성도 많았다. 법원은 변호사보다 수사기록과 검사를 더 신뢰했다. 그게 변호사로서의 20년 경험의 결론이기도 했다.
초조한 가운데 사흘이 흘렀다. 오후 1시 40분경 법원 주변은 사람들의 발길로 바빠졌다. 2시에 대부분의 법정이 오후재판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장영두의 선고 장면을 보기 위해 법원 정문에 들어서고 있었다. 옆으로 교도소의 호송부 버스가 경광등을 번쩍이면서 지나갔다. 장영두가 안에 타고 있을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보는 세상은 전혀 다르다고 했다. 어떤 죄수의 한 토막 글이 떠올랐다. 호송버스 안에서 보니까 종종걸음을 치면서 바쁘게 출근하는 보통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럽더라는 얘기였다. 자유를 빼앗겨 봐야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안다.
나는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한 웅장한 법원 앞 정원을 걷고 있었다. 미끈하게 옆으로 가지를 펼친 소나무와 그 아래 비스듬히 누운 잘생긴 회색 바위가 보였다. 판사도 검사도 피고인도 그 모습을 볼 눈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한 법조인들은 선입견의 현미경 같은 렌즈로 판례와 수사기록 이외에는 잘 보지 않았다. 피고인들 역시 이기심과 억울함, 분노에 가려 맹인이 되어 있었다. 각자의 관점은 동시에 그들의 맹점이기도 했다. 바닥에 시선이 집중되면 천장이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려 법정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법정마다 ‘재판 중’이라는 파란 녹색등이 들어와 있었다. 그 위에 붙은 손바닥만 한 유리창 안으로 법대에 앉은 판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방송국 스튜디오도 이와 비슷했다. 오후의 햇빛이 사선으로 법정 앞 복도에 비쳐들었다. 404호 법정이 눈앞에 보였다. 복도에 있는 벤치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기도하는 남자가 있었다. 장영목이었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 그의 표정이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 같았다. 곧 피 같은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판사들은 재판의 배경에 있는 여러 가지 진솔한 모습들을 보아야 했다.
법정은 진공같이 텅 비어 있었다. 재판장은 오후 2시 무렵 이 법정을 잠시 빌려 장영두 한 사람만 선고할 예정이었다. 법정은 늘려도 늘려도 항상 부족했다. 판사들은 법정을 교대로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법정이 없어 재판이 지연되는 수도 많았다. 법원 건물은 계속 늘려 직원들 복지시설은 만들어 줘도 죄인들을 위한 법정은 충분하게 늘리지 않았다.
이윽고 선고시간이 가까워 오자 여성 사무관이 법정으로 들어왔다. 이어서 작달막하고 건강해 보이는 여성 주임이 장영두의 수사기록이 든 박스를 가지고 들어왔다. 맞은편 법정 벽의 피고인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교도관이 나왔다. 등장인물들이 거의 무대에 나온 셈이다. 방청석을 둘러보던 여성 주임이 다급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거 야단났네. 통역이 아직도 오지를 않네.”
사흘 전 방글라데시인 통역은 일본에 일이 있다고 하면서 불평했다. 법원에서 주는 보수가 너무 적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법원 직원인 주임이 안절부절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어느새 법정의 벽시계가 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10분만 흐르면 그 법정으로 다른 재판장과 판사들이 나와서 담당한 다른 사건들을 심리할 예정이었다. 나는 불현듯 선고를 앞둔 장영두의 마지막 표정을 보고 싶었다. 나는 피고인 대기실로 들어갔다. 벽에 붙여 놓은 나무벤치에 장영두가 눈을 질끈 감은 채 앉아 있었다. 극도의 초조함이 얼굴 가득했다. 그 역시 무기징역을 눈앞에 두고 마음을 가눌 수 없을 것이다. 그 앞 나무의자에 랭가가 겁먹은 듯 불안한 눈을 굴리고 있었다. 먼저 들어온 여성 주임이 랭가에게 물었다.
“랭가씨, 통역인 없이 선고를 알아들을 수 있겠어요?”
“못 들어요.”
랭가는 고개를 좌우로 완강히 흔들면서 소리쳤다. 주임이 그 방에서 나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바로 나타나 내게 말했다.
“방글라데시 대사관에 급하게 전화를 걸어서 통역할 사람을 부탁했어요. 대사관 직원이 빨리 구해서 보낸다고 했어요.”
더 기다리라는 소리였다. 잠시 후 주임과 법원 사무관이 소리 없이 법정을 빠져 나갔다. 빌린 재판정을 반납하려는 것 같았다. 내게 어디서 선고를 할 테니 가라는 얘기도 없었다. 자기들끼리 은밀히 선고를 할 모양이었다. 그 법정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판검사도 들어왔다. 벽시계가 정각 2시를 가리키자 법대 뒤쪽의 문이 열리고 다른 판사들이 등장했다. 나는 어디로 가서 선고를 들어야 하나 걱정하면서 막 재판이 시작된 그 법정에서 나왔다. 복도에서 마침 장영두 사건 재판부의 여성 주임을 만났다.
“지금 조정실을 빌리는 중이에요. 거기서 선고를 하려고 하니까 오세요.”
주임은 재빠르게 내게 말했다. 사실 판사들은 부하가 없다. 그 아래 서기와 주임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실제로 주임이 온갖 잡일을 다 떠맡는 것 같았다. 백조가 물 위에서 우아하게 떠있으려면 흙탕물 아래서 짧은 다리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짧은 다리의 역할을 여주임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팻말을 보면서 미로 같은 조정실을 찾아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다. 제복을 입은 남자직원이 열쇠로 조정실 문을 열고 있었다. 직사각형의 텅빈 작은 방 벽 쪽에 커다란 판사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조정실 앞 벤치에 앉아 판사들이 올 때를 기다렸다. 다시 20분이 흘렀을 때였다. 감색제복을 입은 정리가 다가와 내게 알려주었다.
“변호사님, 여기 조정실은 선고를 하기에 시설이 마땅치 않답니다. 지금 403호 법정을 다시 빌려 보기로 했으니까 그리로 가시죠.”
형의 선고는 일종의 제사의식이었다. 사실 결과만 알려줘도 됐다. 그런데도 넓은 법정에서 판사가 종교의식 같은 집전을 펼쳐야 법의 권위를 보이는 것이다.
나는 다시 층계를 오르고 복도를 걸어 403호 법정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마에 끈적끈적한 땀이 묻어 있었다. 오십대 중반의 나이는 벌써 숨이 찼다. 텅 빈 법정의 공중에서는 방금 전 끝난 재판의 항변과 절규들이 맴도는 것 같았다. 포승을 한 장영두와 랭가도 무대의 저쪽에서 어지간히 바쁠 것이다. 나는 피고인 대기실 문을 열어 보았다. 군데군데 구멍 뚫린 아스타일 바닥만 보일 뿐 아무도 없었다.
다시 10분이 흘렀다. 이미 장영두에 대한 선고가 끝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고 당시 장영두의 표정을 관찰한다는 건 아주 중요했다. 재판에 이력이 난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자기의 경험담을 이렇게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판사들은 선고를 하는 순간 피고인의 얼굴을 예민하게 살핀다는 것이다. 어떤 피고인이 ‘저 판사가 나한테 속지 않았구나’ 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아 나는 바로 재판을 했구나’ 하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억울해서 어쩔 줄 모르는 피고인의 표정 속에서 재판을 잘못 했을 수도 있구나 하는 걸 깨닫는다고 솔직히 털어놓았었다. 변호사인 나도 그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진실을 보기 위해서 왔다. 그때 문을 열고 스포츠머리의 법원 직원이 들어왔다. 그 법정을 담당한 정리였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지금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통역인이 없어서 선고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지금 재판부에서 방글라데시대사관에 독촉해서 아무 통역이라도 구하는 중입니다”
그때 법정으로 장영두 사건 재판부의 여사무관과 주임이 들어오고 있었다. 주임이 반가운 듯 나를 보고 말했다.
“변호사님 여기 미리 와 계셨네요. 제가 연락을 못 드려서 어디 계실까 걱정했어요. 통역이 지금 막 방글라데시 대사관에서 출발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3시 20분 정도면 여기 도착할 거라고 하네요. 판사님들도 지금 위에서 통역을 기다리고 계세요.”
나는 다시 기다렸다. 법정은 답답하고 더웠다. 낮인데도 창문 하나 없는 법정 안은 푸른 형광등 불빛만 껌벅거렸다. 눈이 침침하고 아팠다. 다시 법원 사무관과 주임이 사라졌다. 텅 빈 법정에 나 혼자만 남았다. 어느새 시계가 오후 3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법정 뒤쪽의 문이 삐끔 열리더니 까만 얼굴이 나타났다. 은테안경 뒤의 눈만 반짝거렸다. 새로 부른 방글라데시인 통역이 틀림없었다. 그가 법정 안으로 들어섰다. 감색양복에 사선의 넥타이를 단정하게 맸다. 그는 빈 법정을 두리번거리면서 낭패한 표정이었다. 아무도 그를 붙잡지 않으면 곧 나갈 눈치였다.
“여기 통역하러 왔죠?”
내가 물었다.
“네, 갑자기 불러서 왔는데 아무도 없어요.”
방글라데시인이 한국어로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 불만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내게 항의했다.
“나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람이고 바쁜 사람이에요. 대사관에서 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왔어요. 그런데 아무도 없네요.”
그는 불쾌해서 당장이라도 돌아갈 눈치였다.
“조금만 기다려 봐요.”
내가 그를 잡았다. 그때 주임이 법정으로 들어와 통역인을 보면서 반색을 했다. 방글라데시인이 주임에게 항의했다.
“저는 시간이 없는 사람이에요. 저를 여기 고정 통역으로 해 주는 것도 아니고….”
방글라데시인은 생색을 내면서 통역 자리를 흥정하고 있었다.
“법원에서 통역비를 드려요. 여기에 사인을 하세요. 그리고 앞으로 원하시면 법정통역의 일도 드릴게요.”
법원 주임이 방글라데시인을 달래면서 영수증에 서명을 받았다. 이제야 선고를 할 수 있는 무대 준비가 다 된 것이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