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후보 정계입문 전후로 사업 흥망
▲ 지난 13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한 이명박 후보의 처남 김재정 씨. 재산형성 과정에 대해 의혹을 받고 있는 김 씨는 현재 당뇨 합병증 등으로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현재 이 전 시장과 관련해서 김 씨에게 쏟아지는 의혹은 단 하나. (주)다스의 최대 지분 소유자이면서 많은 부동산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그가 어떻게 재산을 형성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전 시장 측에서는 “(김 씨에게) 원래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이 제법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 씨의 처남이 되는 권 아무개 씨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토건회사와 다스로 재미를 보는 등 매형(이 전 시장)의 후광도 제법 있었다”고 전했다.
과연 김 씨는 어떤 과정에 의해서 재산을 형성하고 또 불려왔을까. 그의 사업 수완은 과연 뛰어났을까. 본지는 김 씨가 경영했던 것으로 알려진 회사들의 폐쇄등기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실들을 더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80년 이후 김 씨의 사업 행적을 되밟아 본다.
김재정 씨는 1949년생이다. 부친은 공무원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위로 두 명의 형과 세 명의 누나가 있지만 두 형은 비교적 일찍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처남인 권 아무개 씨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제가 외아들인 줄 알았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의 바로 위 누나인 김윤옥 씨가 이명박 전 시장의 부인이다.
이 전 시장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처가 쪽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거의 없다. 구구절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형제들에 대한 사연을 소개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나마 <신화는 없다>에서 부인과의 결혼에 대해 언급하면서 ‘포항 동지상고 시절 나를 귀여워해 주시던 영어 선생님께서 친구의 여동생을 소개해 줬다. 무엇보다 부잣집 딸이 아니고 부친이 청렴결백한 공직자로 이름이 난 분이어서 호감이 갔다’는 내용만 눈에 띈다.
이 전 시장은 자신의 신혼살림에 대해서 ‘결혼식 축의금을 모아 마포에 있는 14평짜리 아파트를 겨우 사글세로 얻었다. 신혼살림의 수입은 내 월급이 전부였다. 주인집에서 세를 올려달라고 해서 3년 동안 8번 이사했다’고 당시의 궁핍했던 살림을 소개했다.
그 무렵 이 전 시장은 현대건설에서 이사 직함을 갖고 있었다. 부인은 이화여대를 졸업했으나 직업을 갖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시장이 과거 어려운 시절을 강조하려 했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표현대로라면 처가 쪽 역시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결혼 후에도 처가로부터 별다른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씨의 학력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분분했으나 대구의 명문인 K 중학을 졸업하고 가족이 서울로 이사한 뒤 서울 S 고를 졸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학은 M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씨의 K 중학 동기인 김 아무개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재정이를 잘 안다. 친구들도 많았고 착했다. 부친이 공무원을 하고 있었기에 생활 형편도 비교적 넉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70년 셋째누나 윤옥 씨의 결혼으로 그는 이 전 시장의 처남이 된다. 당시 그의 나이 21세였다. 76년(27세)에 그는 당시 매형이 부사장으로 있던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그는 6년간 매형과 함께 근무하다가 82년(33세) 과장으로 퇴사했다. 당시 회사 내에서도 그가 이명박 부사장과 처남매부지간이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고 한다.
김 씨가 회사를 그만둔 것은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가 퇴사하기 1년 전인 81년 5월 부친이 경기도 부천에 ‘세진개발’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건축자재 매매를 사업 목적으로 하는 회사였다. 사위였던 이 전 시장이 현대건설 사장과 대한알루미늄 회장을 겸임하고 있을 때였다.
이 회사의 폐쇄등기부를 확인했다. 김 씨의 부친은 당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주소지를 둔 채 이 회사의 초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당시 임원진 명단 가운데 감사로 등재된 김창대 씨가 눈에 띈다. 그는 이 전 시장의 동지상고 동기동창으로 이 전 시장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특별히 언급할 정도로 가장 절친한 친구로 알려져 있다. 현재도 그는 이 전 시장 후원회인 ‘명사랑’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주)다스의 지분 4.16%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89년까지 이 회사에 임원으로 남아 있었다.
김재정 씨는 현대건설을 퇴사한 직후인 82년 11월에 이 회사의 이사로 취임했다. 그리고 84년(35세) 4월 부친을 대신해 이 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당시 회사에는 김 씨와 부인 권 아무개 씨(51), 최측근으로 보이는 최 아무개 씨(54) 그리고 매형의 절친한 친구 김창대 씨 등이 임원으로 등재돼 있었다(이들 가운데 최 씨는 이후 김 씨가 설립한 회사마다 이사로 자주 등장한다).
87년(38세) 그는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선다. 우선 사돈인 이 전 시장의 친형 이상은 씨와 함께 (주)다스를 공동 설립하고 여기에 상당한 돈을 투자해 최대 지분 소유자가 됐다. 하지만 경영에는 참여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경향신문>의 보도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경기도 화성과 충남 당진의 땅 등 부동산 매입 역시 이 시기를 전후해서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신문은 ‘김 씨가 82년부터 91년 사이 전국 47곳에 걸쳐 모두 67만여 평에 이르는 땅을 사들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 씨 주변에서 전하는 말에 따르면 당시 김 씨의 사업은 꽤 잘 풀렸다고 한다. 세진개발은 현대건설의 하도급을 많이 받으며 착실히 성장했고, 많은 돈을 투자한 다스 역시 경영 상태가 아주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매형인 이 전 시장의 영향력이 컸던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세진개발은 89년 11월 상호를 ‘우신토건’으로 변경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세진개발의 주인인 김 씨가 우신토건으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갑자기 대표이사를 사퇴하고 김창대 씨를 대신해서 감사로 취임하고 있는 것. 그리고 새 대표이사에는 당시 막 현대건설을 퇴사한 김 아무개 씨가 취임했다. 그는 이 전 시장이 현대건설 사장과 회장으로 있을 당시 상무이사 등을 맡았던 중역 출신이었다. 김재정 씨가 다시 회사의 대표이사로 복귀한 것은 91년 5월이었다.
이후 같은 해 11월 이 회사는 다시 상호를 ‘우방토건’으로 변경한다. 본점 주소지 역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으로 옮겨졌다. 그뒤 우방토건은 93년 11월 ‘태영개발’로 다시 사명을 변경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해볼만한 ‘사건’이 있다. 91년 10월 당시 경찰청 특수대는 현대증권 이 아무개 회장, 현대건설 김 아무개 부사장 등 현대 관련 기업인 7명을 입건했다. 89년 3월부터 91년 5월까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일대에 호화별장을 짓고 땅을 불법 형질 변경한 혐의였다. 그런데 이 7명 가운데 김 씨가 포함됐다. 현대그룹의 이사급들(나머지 6명)이 참여한 별장 조성에 과장 출신인 김 씨가 함께 끼었다는 사실은 당시에도 적잖은 의혹을 낳았던 바 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주목해볼 것이 있다. 당시 신문 보도에 김 씨는 ‘삼우토건’의 대표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회사등기부에 따르면 당시 그는 우방토건의 감사를 맡고 있다가 다시 대표이사로 재복귀한 무렵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그가 관여하던 회사가 우방토건 외에 또 있었다는 얘기일까. 혹시 ‘오기’가 아닌가 해서 다른 신문을 확인했지만 모두 ‘삼우토건 대표’로 김 씨를 소개하고 있었다.
기자는 김 씨의 여러 사업체 등기부등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알려지지 않은 김 씨 소유의 회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93년 4월 설립된 ‘태영통상’으로 가구제조와 부동산 임대업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였다. 이 회사의 폐쇄등기부를 보면 여기에도 김 씨는 대표이사를 맡고 있고, 다른 임원으로는 부인 권 씨와 측근 최 씨 등이 등장한다. 김 씨는 98년 2월 회사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현재 이 회사는 아직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 주변에서는 93년경부터 그가 ‘태영’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계속 펼쳐 나갔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든든한 버팀목이던 매형 이 전 시장이 92년 현대를 떠나 정계에 입문하게 된 것이 큰 원인이 됐다고 한다. 이후 태영개발이나 태영통상은 경영상 어려움을 겪었고 그는 결국 2003년 11월 태영개발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게 된다. 그리고 이 회사는 2005년 7월 매각됐다. 현재는 대전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S 토건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김 씨가 태영개발 대표이사를 사퇴한 이듬해인 2004년 이 전 시장이 소유하고 있던 서초동 건물에서 중국음식점 ‘강희제’를 창업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상당한 재력가인 그가 굳이 음식점을 개업한 목적이 궁금했던 것. 하지만 이 음식점 역시 영업 부진으로 2년 만에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 씨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자신이 직접 경영하는 회사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