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 이면엔 ‘통합은행장’ 야심이…?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하나은행과 통합을 앞두고 노조에 강경 대응을 해 내부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연합뉴스
외환은행은 지난 18일부터 인사위원회를 열어 대규모 직원 징계 조치에 들어갔다. 지난 3일 외환은행 노조가 개최하려던 임시조합원 총회에 참석했거나 참석하려던 직원 898명이 대상이며 근무이탈이 이유다. 금융권 사상 단일사안으로는 최대 규모의 징계 조치다.
외환은행의 이 같은 조치는 외환은행 노조뿐 아니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외환은행 노조는 이미 김한조 행장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서울지방노동청에 고소한 상태다. 외환은행 노조와 참여연대 등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환은행의 대규모 직원 징계 절차를 규탄했다.
그럼에도 외환은행은 지난 18일부터 직원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조합원총회가 열리기 전 이미 불법·위법행위라는 점과 징계에 대해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강행했으니 징계 절차를 밟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외환은행의 노사관계가 개선되기는커녕 갈수록 악화하고 있음에도 하나금융지주 측은 조기 통합 작업을 강행하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18일 “(노조와) 협의가 되지 않더라도 10월 중 금융위에 통합 신청을 낼 계획”이라며 ‘하나·외환은행 조기 통합’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나금융 측은 외환은행 노조를 설득하는 일을 외환은행 측에 맡기고 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우리도 합의를 위해 계속 노력할 테지만 노조와 대화 파트너는 외환은행장”이라며 선을 그었다.
경력만 놓고 보면 김한조 행장이 외환은행 노조의 대화 파트너로서 손색이 없다. 1982년 외환은행 지점 행원으로 출발해 32년간 ‘외환맨’으로 근무한 김 행장은 지난 3월 제25대 외환은행장으로 취임했다. 행원 출신 행장으로서 외환은행 직원들에게는 행장 이전에 선배다. 외환은행 노조와 직원들 사이에서 행장 선임에 큰 반대가 없었고 김 행장 스스로 ‘후배들을 위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처음엔 소통하기 위해 애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선배가 898명의 후배를 징계하려 하고 있다. 취임 초 기대를 받았지만 지금은 외환은행 일부 직원들로부터 ‘선배가 오히려 더하다’는 원성을 사는 이유다.
외환은행 노조는 김 행장이 통합은행장 자리에 욕심이 앞서 후배들을 죽이고 있다고 맹비난하고 있다. 김근용 노조위원장은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물러나면 김한조 행장이 통합은행장으로 예정돼 있다고 한다”면서 “개인적 영달을 위해 32년간 다닌 외환은행을 배신하고 후배들을 죽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지난 8월 말 “두 은행 통합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백의종군하겠다”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되면 하나은행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밝힌 바 있다. 김종준 행장이 물러날 것이라고 밝힌 만큼 김한조 행장은 통합은행장 유력 후보다. 이를 위해 김한조 행장이 노조에 대해 무리수를 거듭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일부에서는 외환은행 노조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김한조 행장의 통합은행장을 향한 ‘미션’으로 보고 있다. 특히 김정태 회장이 10월 중 금융위원회에 통합신청서를 낼 것이라고 밝힌 터여서 시간에 쫓기는 김 행장이 노조를 더 다그치고 있다는 것. 금융당국은 여전히 ‘노조 합의 없는 통합 승인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통합은행장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한 적 없다”면서 “행장께서는 은행을 위해 소신 있게 해나갈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고 오히려 대화를 거부하는 쪽은 노조”라고 반박했다. 하나금융 관계자 역시 “통합은행장은 지주에서 후보추천 등 정식 절차를 거쳐 선임할 것”이라며 “김한조 행장이 내정됐다는 것은 낭설”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외환은행 노조는 통합은행장 자리에 대한 야심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다고 강조한다. 김보헌 외환은행 노조 전문위원은 “통합은행장에 앉기 위해 노조 탄압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는 것은 명명백백한 일”이라면서 “은행 내에서는 현재 김 행장에 대해 대다수 직원이 고개를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설사 김 행장이 통합은행장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수적인 은행권에서 피인수 쪽 사람을 통합은행장 자리에 앉히겠느냐”고 반문하며 “앉힌다 해도 오래 가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귀띔했다. 외환은행 노조 관계자는 “하나금융 쪽에서 외환은행에 맡겨두고 노조를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은 뒤에서 전부 지시하고 체크하고 있다”면서 “김한조 행장 등은 토사구팽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처럼 김한조 행장 역시 백의종군의 뜻을 밝혀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통합 후 은행장직에서 물러난다고 해야 쓸데없는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소신 있게 일을 추진하고 있는 분에게 너무 악의적인 발상”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