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가 때린 ‘럭비공’ 또 누구 잡나
▲ 신정아 씨(왼쪽)와 박문순 관장. | ||
신 씨 사건이 불거진 이후 가장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사람은 바로 박문순 성곡미술관장(53)이다. 후원금 등의 일부 횡령 사실을 시인한 신 씨가 빼돌린 돈의 ‘최종 종착지’로 지목한 인물이 바로 박 관장이기 때문이다. 횡령 혐의를 둘러싸고 신 씨와 박 관장은 현재도 뜨거운 책임공방을 펼치고 있다. 이 와중에 박 관장의 자택에서 정체불명의 60여억 원의 뭉칫돈이 발견됨에 따라 검찰 수사는 옛 쌍용그룹의 비자금 수사로까지 번지는 등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신 씨가 올 초 박 관장으로부터 받았다는 현금 2000만 원과 1800만 원짜리(신 씨는 1300만 원 상당이라고 주장) 고가의 목걸이의 ‘용도’다. 지난 소환 조사에서 신 씨는 대기업 후원금 등을 빼돌려 박 관장에게 상납한 대가로 오피스텔 보증금(2000만 원)과 고가의 목걸이를 받았다고 밝혔다. 반면 박 관장은 2000만 원을 준 적은 없고 다만 목걸이는 후원금을 잘 관리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선물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박 관장은 당초 진술과는 달리 신 씨에게 2000만 원을 건넨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박 관장은 이 돈이 지난 2004년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돼 실형(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던 남편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특별사면을 받는 데 도움을 준 대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 씨가 변 전 실장의 부산고 동창인 아무개 변호사를 소개해 준 덕분에 김 회장이 올 2월 사면될 수 있었고 2000만 원은 이에 대한 성의표시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고가의 목걸이 선물 역시 대가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신 씨는 박 관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시기는 올 1월로 김 전 회장이 사면되기 한 달 전이었다며 2000만 원은 ‘후원금 상납의 대가’라는 기존의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목걸이 역시 상납의 대가로 받은 것이며 박 관장이 횡령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주장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변 전 실장의 고교 동창인 해당 변호사 역시 김 전 회장의 항소심에는 관여한 적이 있지만 사면절차를 대행해 준 적이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검찰은 신 씨가 변 전 실장을 통해 당시 김 전 회장이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된 사실을 미리 알고 박 관장에게 돈을 요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한 검찰은 김 전 회장의 사면과 관련된 로비가 사면 전부터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양측의 주장 중 진실을 가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이 박 관장이 신 씨에게 준 2000만 원의 진짜 성격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데 힘을 쏟는 이유는 이 돈이 횡령이나 다른 범죄 사실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돈이 신 씨의 주장대로 횡령한 대기업 후원금을 상납한 데 대한 대가로 밝혀질 경우 박 관장이 횡령의 ‘몸통’이라는 오명을 쓸 수밖에 없다.
▲ 성곡 미술관. | ||
두 번째 쟁점은 지난 9월 28일 박 관장의 집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현금과 수표 뭉치 60여억 원의 ‘성격’이다. 이보다 앞서 우리은행 서울 효자동지점에 2004년 박 관장의 요청으로 개설된 신 씨 명의의 차명 개인대여금고에서 외화 2억여 원이 발견된 것과 맞물려 ‘괴자금’의 출처를 둘러싼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박 관장은 검찰에서 “(그 돈은) 회사와 무관하게 주변 사람들이 모아준 돈”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검찰은 문제의 돈이 ‘쌍용가’의 비자금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이 이 돈을 옛 쌍용그룹 사주 일가의 비자금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정상적인 자금이라면 이 정도 액수의 돈을 금융기관이 아닌 집에 쌓아둘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일단 검찰 측은 이번 수사가 변-신 씨의 혐의를 밝히는 데 집중돼 있으며 박 관장 집에서 발견된 비자금은 아직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60억대에 이르는 괴자금의 존재가 드러난 만큼 조만간 별건의 수사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만약 문제의 괴자금이 김 전 회장의 비자금으로 확인될 경우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자금의 출처, 조성 경위, 용도 등에 따라 연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물론 이 돈에 대한 채권단의 자금 회수 조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옛 쌍용그룹에는 1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으나 그중 상당액이 회수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만에 하나 박 관장의 집에서 발견된 괴자금이 김 전 회장의 비자금으로 판명되고 이 가운데 일부가 김 전 회장의 특별사면 로비 등을 위해 쓰인 것으로 밝혀질 경우 이번 사건은 또 하나의 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 쟁점은 신 씨가 미술품 중개 과정에서 조성한 리베이트의 ‘행방’이다. 검찰에 따르면 신 씨는 그간 성곡미술관 조형연구소를 통해 십수 점의 조형물을 기업체 등에 중개해주고 해당 작가들로부터 30~40%에 이르는 리베이트를 받아 수억 원의 자금을 조성했다. 신 씨는 이 리베이트 자금 역시 박 관장에게 모두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박 관장은 그중 일부를 사용한 사실만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일단 박 관장이 신 씨로부터 받았던 리베이트 자금 중 일부를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를 잡고 박 관장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하지만 신 씨가 건설사 등 기업체에 조형물을 중개한 과정에 대해서도 외압 의혹 등이 제기되고 있고 리베이트의 구체적인 규모와 용도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 또 어떤 ‘반전’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