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아직도 ‘서울대의 나라’
|
||
| ▲ 지난해 8월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풍경. 맨 오른쪽 연단에 서 있는 사람이 이용훈 대법원장이다. 전국 법원의 고위법관 519명의 출신대학을 조사한 결과 서울대 출신이 3분의 2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 ||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우리 사회의 소위 ‘파워그룹’이라 할 수 있는 정·재계 및 학계 내에서도 거세게 일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신의 영역’을 대신한다는 사법부의 중추 권력은 여전히 ‘전통적 주류’인 서울대 출신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요신문>이 사법부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전국 법원 부장판사급 이상 법관 519명(전체 법관 2247명)의 출신 대학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 출신 법관들이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핵심 고위직 및 일선 부장판사 직에 대거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장판사 이상 고위 법관들의 70% 이상이 서울대 출신으로 조사된 것.
지난 2005년 이용훈 대법원장이 사법 개혁의 과제를 안고 사법부 수장에 취임한 이후 법원 안팎에서 제기된 ‘사법부 내 주류 문화의 변화’와 ‘다양한 인맥 재편 가능성’에 대한 현실적인 논의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일요신문>이 최근 대법원이 국회에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전국 부장급 이상 판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대법원장을 포함한 고위직 판사 519명 가운데 전체의 73.2%인 380명이 서울대 출신인 것으로 조사됐다.
다음으로 고려대 출신이 54명(10.4%)으로 그 뒤를 이었고, 전통적으로 법학과가 강세인 한양대와 성균관대 출신이 각각 19명(3%)과 13명(2.5%)인 것으로 집계됐다. 연세대 출신은 현재 10명(1.9%)만이 부장판사급 이상 고위직에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5개 대학 출신 법관이 사법부 고위직의 91%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부장판사급 이상 고위 법관 가운데엔 지방 국립대학인 부산대와 경북대 출신도 각각 9명과 8명이 이름을 올렸으며 건국대가 7명의 고위직 법관을 배출한 점도 눈에 띈다.
서울대 출신 법관들은 법원 고위직에서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법원장, 대법관 등 요직도 거의 ‘싹쓸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한 12명의 대법관 중 원광대 출신인 김지형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11명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알려졌다시피 대법관은 민·형사 사건 판결의 기준을 제시하는 고유 권한은 물론 △판사의 임명에 대한 동의 △대법원 규칙의 제정과 개정 △판례의 수집·간행 및 예산 지출과 결산 등에 관한 의결 권한을 지닌다. 결과적으로 사법부의 주요 의결 권한을 서울대 출신 법관들이 한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대법원장, 대법관과는 별도로 각급 법원의 행정·인사 문제를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도 서울대 출신이다. 또한 대법원장의 명을 받아 사건의 심리와 재판에 관한 자료 조사·연구를 총괄하는 대법원 수석, 선임 재판연구관도 서울대 출신들이다.
전국 고등법원장 및 지방법원장 자리도 서울대 편중 현상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고등법원을 제외한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4개 지역 고등법원장이 모두 서울대 출신. 전국 14개 지방법원장 자리 중 13곳이 역시 서울대 출신 법관들로 채워져 있다.
‘차관급’ 예우를 받는 판사로서, 사실심의 마지막 관문인 항소심의 재판장을 맡고 있는 전국 고등법원 부장판사 현황 역시 마치 서울대 동문회를 보는 듯하다.
서울고법은 50명의 부장판사 중 44명(88%)이 서울대 출신이다. 광주와 대전고법은 5명의 고법 부장판사 전원이, 부산고법도 부장판사 11명 중 9명이 서울대 인맥.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구고법은 5명의 고법 판사 중 2명이 서울대를 나왔다.
|
||
| ▲ 대법원 전경 | ||
그렇다면 이처럼 사법부 고위직에 서울대 출신 인사들이 대거 등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서울대 출신의 사법고시 합격률이 높은 데다 사법 연수 과정에서 서울대 출신 사법시험 합격자들이 초임 판사나 예비 판사에 대거 임용되는 것에서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지난 2000년 서울대 국감 자료에 따르면 10년 전인 97년 서울대 출신 사시합격자는 모두 325명으로 전체 합격자(604명)의 53.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98년에는 서울대 출신이 전체 합격자 700명 중 300명(42.9%)이었다.
또한 지난 2005년 3월 <법률저널>이 그해 2월 임명된 예비 판사 97명의 출신 대학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절반가량인 47명(49.5%)이 서울대 출신으로 나타났다. 예비 판사를 배출한 기수인 34기 사법 연수원생 중 서울대 출신 비율인 34.3%와 비교해 15% 포인트나 높은 수치였다.
그러나 이 비율은 사법연수원생 중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수치다. 특히 현 고법 부장판사급 이상 고위 법관들이 신규 판사로 임용된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는 전체 사법연수원생의 50~60% 이상이 서울대 출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본적으로 서울대 출신들이 법원의 요직에 발탁될 가능성이 다른 대학 출신 법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태생적인’ 이유 이외에도 과거 법원 내부의 이른바 ‘승진 서열’에서 사법부 고위직의 서울대 출신 편중 현상의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사법시험 성적과 2년간의 연수원 성적을 합한 종합 성적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고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이 서열이 승진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던 것이 과거 법원의 인사 관행이다. 따라서 연수원 성적 우수자가 많은 서울대 출신 법관들이 승진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법관으로서의 역량이나 실적보다는 사법연수원생으로서의 성적이 법관의 미래를 상당부분 좌우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행의 최대 ‘수혜자’ 역시 서울대 출신 법관들이었고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서울대 출신들의 사법부 고위직 독점화 양상으로 이어져왔다.
일각에서는 그간 법원 내에서 일반 판사와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법 부장판사까지 이어지는 승진 단계에서 비서울대 출신들의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장판사 이상 간부급 인사 선임 과정에서 ‘업무성과’와 ‘지역안배’라는 기준 못지않게 ‘서울대’ 출신이라는 학맥도 보이지 않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일부 법조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최근에 법원의 인사관리시스템이 많이 개선됐지만 사법부가 아무리 공평하고 객관적인 인사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사람의 일이니만큼 학연, 지연의 문제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며 “특정 대학 출신이 고위직에 많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투명하고 설득력 있게 승진 등의 인사가 이뤄지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