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지원 선진화” vs “취재자유 침해”
▲ 지난 9월 11일 정일용 기자협회장이 청와대 민원실에 취재선진화 방안에 대한 항의 서한을 접수시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지난 12일 정부가 이 조치에 따라 기존의 기사송고실을 폐쇄하고 10월 말까지 다른 용도의 사무실로 사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양측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외교통상부·통일부·건설교통부 등 일부 부처 출입기자들은 청사 로비 바닥에 임시기자실을 만들어놓고 정부가 새로 마련한 합동브리핑센터(정부중앙청사 별관 1~3층)의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로는 이전하지 않겠다며 ‘투쟁의지’를 높여가고 있다.
기자들의 취재시스템 자체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정부와 기자들이 싸우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체 왜 이런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걸까.
정부는 지난 5월 22일 ‘각 부처별 정부청사에 흩어져 있는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기자실)을 정부중앙청사 별관과 과천청사 대전청사로 통합한다’는 취지로 이른바 ‘취재선진화 방안’을 내놓았다.
당시 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참여정부 들어 마련한 ‘브리핑룸 도입’ 및 ‘기자실 개방 정책’의 본래 취지와 달리 기사송고실이 과거의 출입기자실로 되돌아갔고, 일부 기자들의 경우 공무원이 일하는 사무실로 무단출입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메이저 언론 위주의 기자실 운영으로 군소 매체나 인터넷매체 기자들이 기자실에 상주하는 것을 막는 폐해도 있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기자들은 “사무실에 무단출입한 사례가 어디 있느냐” “군소 매체의 기자가 취재하는데 유력 (매체) 기자들이 방해라도 했단 말이냐”며 반발했다.
무엇보다 기자들은 “정부가 흩어져 있는 기사송고실과 브리핑룸을 한 곳에 모아놓으려는 데엔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쓰게 하고, 기자들의 정부청사 출입을 차단해 국민의 알 권리와 취재자유를 침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참여정부 4년여 동안 실시한 브리핑이라는 것도 상당부분 부실하게 진행돼 정부의 새 조치에 따른 취재지원 방안을 믿을 수 없다는 것도 반발의 한 이유였다. 기자들은 정부의 새 조치 발표 이후 각 부처 공무원들이 취재를 회피하는 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지난 8월 취재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정부가 마련한 국무총리훈령안에 △기자들의 취재시 공무원들은 각 부처 홍보관리관과 사전협의해야 하고 △기자들과 인터뷰할 공무원은 기관장이 정한 장소에서만 할 수 있으며 △주 1회 이상 브리핑룸에 참석하지 않은 기자의 출입증을 강제 회수할 뿐 아니라 △엠바고(보도유예조치)도 정부가 직접 정한다는 내용이 담겨짐에 따라 ‘언론통제’ 의혹이 더욱 확산됐다. 물리적 통제뿐 아니라 기자들의 취재접근권도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었다.
이후 전국언론노동조합·PD연합회·인터넷기자협회 등 언론단체와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국정홍보처 차장 등이 수차례 만나 논의한 끝에 정부는 지난 9월 14일 총리훈령에 담긴 위의 내용을 모두 삭제하겠다는 수정안까지 냈지만 기자들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송고실 통합 방침을 포함해 취재선진화 방안 자체를 백지화하라는 것이 기자들의 입장이다.
이후 정부는 정부대로 ‘취재선진화 방안’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기자실 이전을 수차례 통보한 뒤 지난 10월 12일부터는 정부부처 기사송고실과 브리핑룸을 완전 폐쇄했고 기자들은 이에 맞서 기사송고실 바깥의 로비에 임시 기자실을 만드는 등 ‘외곽투쟁’까지 벌이고 있다.
그동안 나온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서도 정부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홍보처 조신 홍보관리관은 기자실 사태에 대해 “과연 기자들이 정부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이나 했느냐”며 “객관적인 사실보도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신문·방송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입장보다는 ‘취재제한’ ‘일방적 기자실 폐쇄’ 등에 비중을 둬 보도했다는 것.
그렇다면 기자들은 대체 왜 정부의 조치를 불신하고 있는 걸까. 정부가 우선 지적하고 있는 기자송고실의 ‘출입기자실화’라는 문제점은 수십 년간 지속돼온 출입처 위주의 취재방식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판박이 같은 기사를 싣거나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공무원과 기자의 유착이 이뤄진 요인이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방식의 변화는 기자와 언론사가 스스로 해야 할 몫이지 정부가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게 기자들의 입장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도 정부가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정부와 언론의 유착이 이뤄지던 과거의 기자실은 이미 오래전에 바뀌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자들의 반발에는 정서적인 거부감의 성격이 짙게 배어 있다. 기자들은 참여정부 내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관에서 행정관까지, 또 국정홍보처의 국정브리핑까지도 언론의 비판에 과도하게 대응해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초기에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 등 특정 신문을 상대로 벌여온 대언론 비판을 다른 매체로까지 확대했다.
또한 아무리 몇몇 매체가 정파적인 보도를 하고 오보를 양산한다고 해도 국민의 알권리를 대변하는 것이 언론인데 이런 점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이 의외로 많다. 참여정부 인사들이 기존의 기자사회를 청산돼야 할 기득권세력 정도로 보는 데 대한 반감도 크다. 이 때문에 조·중·동뿐 아니라 많은 기자들이 취재선진화 방안의 유용성이나 필요성에 일부 공감을 하면서도 좀처럼 반발의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23일과 25일 잇따라 언론단체장과 청와대·국정홍보처 등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사태 해결을 위해 다시 비공식 협의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기자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는 한국기자협회 내부에서도 정부조치에 대한 대응방법을 두고 집행부와 일선 기자들 간에 심한 대립을 빚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양쪽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 대목도 있지만 기자들의 취재지원방안이라는 문제를 두고 이렇게 오랫동안 갈등을 빚는 건 소모적이라는 데엔 대부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17대 대통령 선거가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국민들은 정부와 기자사회가 하루빨리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보다 중요한 문제에 눈과 귀를 기울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조현호 미디어오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