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에게 바이블로 통하는 두 책들의 별명이다. 이 책들의 정체는 토익 수험서. ‘해커스’에서 출시된 이 책들은 빨간색이 토익의 LC(듣기)파트, 파란색이 RC(읽기)파트다. 지금까지 토익 분야에서는 빨갱이와 파랭이는 ‘무적’이었다. 두 책은 2005년 출시 9년 만인 지난 8월 1000만 권 판매를 달성했다. 그런데 책 출시 10년을 앞둔 지금 해커스의 절대 아성에 신예 ‘영단기’가 무모해 보이는 공성전을 펼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영단기 홈페이지 캡처
영단기와 해커스의 전쟁터는 서울 강남역 한복판이다. 영어학원의 메카인 강남역에 해커스는 제6별관까지 7개 건물을, 영단기는 제4관까지 4개 건물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강남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 중 한 곳인 10번 출구 앞 ‘마인츠돔’이 철수하자 영단기가 이를 낚아채 본관으로 만들었다.
지난 연말에는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영단기는 ‘공단기’, ‘일단기’ 등을 보유한 ST&컴퍼니의 한 브랜드. 지난해 12월 29일까지 ST&컴퍼니는 창업주이자 경영자인 윤성혁 대표이사의 100% 소유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30일 ST&컴퍼니의 유상증자에 네이버의 자회사인 NHN엔터테인먼트와 NHN인베스트먼트가 참여해 10.2%의 지분을 약 109억 원에 인수했다. 이 금액은 네이버가 ST&컴퍼니의 가치를 1068억 원가량으로 평가했다는 뜻이다. 창업 3년차 기업이 1000억 원의 평가를 받은 것이다.
외국어학원 업계에서는 영단기가 이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공격적 마케팅으로 꼽는다. 영단기는 외국어학원 업계 최초로 TV 광고를 내보냈고 종합반 두 달 연속 수강생에게 ‘아이패드’를 지급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영단기는 상도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영단기의 TV 광고에서 허지웅과 성시경은 경쟁업체인 해커스의 교재를 연상시키는 책을 집어던지며 “에이 요즘 누가 그걸 봐”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공정위는 이 장면이 경쟁업체를 과도하게 비방했다고 판단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해커스의 한 직원은 “영단기의 광고가 방영되고 해커스 내부에서 대책 회의가 진지하게 열렸다. 그러나 광고가 파격적이긴 하지만 책을 집어 던지는 모습과 대사가 네티즌 사이에서도 비호감으로 인지되고 있다고 판단해 별다른 대응 없이 넘어간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영단기가 지급한 아이패드는 업계 제살 깎아먹기 경쟁이었다는 평이 있었다. 외국어학원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종합반 두 달 수강료가 70만~80만 원인데, 지급되는 아이패드는 60만 원이 넘는다”며 “무엇을 남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영단기 관계자는 “아이패드 지급은 수강생들에게 하나의 혜택으로 제공한 측면도 있지만 영단기에서 추진하는 ‘미래교실’에 활용하라는 것이 더 크다”고 답했다. 미래교실은 영단기가 추진하는 스마트 기기 활용 학습이다.
영단기는 파격적인 가격 정책도 내세웠다. 영단기는 ‘프리패스’라는 수강권을 현재 50만 원가량에 팔고 있다. 이 프리패스를 사면 수강생은 1년 동안 인터넷 강좌를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다. 영단기의 한 수강생은 “토익을 공부하는 대부분은 취준생(취업준비생)으로 학생이나 백수가 대부분이라 돈이 없다. 싼 맛이라는 메리트가 가장 강력한 유인책”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공격적 마케팅으로 인해 영단기의 외형(매출)은 급성장했지만 실속(이익)은 없다. 업계 수위를 다투는 해커스와 영단기의 ST&컴퍼니는 외국어뿐만 아니라 공무원, 자격증 등의 여러 분야를 운영하고 있어 외국어 실적만을 따로 떼어내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회사 전체 매출과 이익을 통해 유추해야 한다.
지난 2012년 약 198억 원 매출에 약 10억 원의 순이익을 낸 ST&컴퍼니는 지난해 급성장했다. 2013년 ST&컴퍼니의 매출은 415억 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반면 영업이익은 23억 원가량 손실로, 적자 전환했다. 이는 2012년 매출 531억 원, 순이익 190억 원, 2013년 매출 504억 원, 순이익 160억 원을 기록한 해커스와 비교되며 아직 ‘해커스 따라잡기’는 요원해 보인다.
끝장을 보자는 것일까. ST&컴퍼니는 특유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더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ST&컴퍼니는 광고선전비로 81억 9736만 원을 지출했다. 올해는 어학원 업계 최초 TV 광고, 아이패드 지급 이벤트 등으로 지난해에 쓴 금액을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영단기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마케팅비를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수익금을 남기지 않고 재투자하는데 쓰고 있다”고 밝혔다.
영단기의 파격적인 마케팅과 유례없는 성장에는 ST&컴퍼니가 학원업임에도 CEO(최고경영자)를 포함한 임원진 대부분이 교육과 전혀 관련 없는 인력으로 구성된 점을 들기도 한다. 이 같은 지적에 영단기 관계자는 “교육과 전혀 관련 없는 CEO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학원업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추진된 점이 있다”며 “일반적인 학원업은 수강생을 오래 잡아둬야 돈이 되기 때문에 6개월 정도 기간으로 기초-기본-중급-상급 등의 커리큘럼으로 구성된 것에 비해 우리는 2개월 안에 단기로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답했다.
한편 영단기는 ‘영어단기학교’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ST&컴퍼니의 다른 브랜드인 공단기도 공무원단기학교의 줄임말이다. 이제 영어단기학교라는 이름은 쓰지 않고 있다. 영단기 관계자는 “정부가 ‘학원은 학교라는 명칭을 쓰지 못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와서 현재는 영단기로만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