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 ‘선심’ 받고 잠 안오면 ‘쥐약’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이처럼 직장인들이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윤리문제와 그 해결책을 모아 보고서를 발표했다. <윤리경영 100문 100답>이 바로 그것. 이 보고서를 참고하면 직장인들의 윤리적인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듯하다.
뇌물과 선물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주는 사람은 선물이라고 줬지만 받는 사람은 뇌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만큼 주관적인 것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2년 전 한 대기업의 총수는 ‘월급으로 생활할 수 없으면 회사에서 나가라’라고 했을 만큼 뇌물을 경계했다. 선물과 구별하기는 힘들지만 뇌물은 기업 내에서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 직장인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보고서에서는 ‘대가성 여부’와 ‘가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처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가격은 5만 원 이내가 적당하고, 대가성은 상황에 따라 현명하게 판단하라는 것. 그래도 정 감이 안 잡힐 때는 ‘수면 판별법’을 활용하라고 한다. 즉 잠이 잘 오면 선물, 잠이 오지 않으면 뇌물이라는 것이다. 다음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컴퓨터 회사의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문 아무개 과장. 얼마 전 고객으로부터 겉보기에도 제법 비싸 보이는 지역특산물을 선물로 받았다. 맡긴 컴퓨터를 수리해 줘 고맙다며 고객이 준 것이었다. 문 과장은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먹는 것이라 상할 것 같기도 하고 일처리도 끝났기 때문에 대가성도 없다고 판단해 그냥 받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이 직원은 윤리규범을 위반한 것이다. 5만 원이 넘을 것 같다고 예상되는 선물은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 보고서는 이 경우에 특산물을 바로 반송하기보다는 고객에게 사정을 잘 말하고 정중하게 돌려줄 것을 권고한다.
직장 내에서 직원들끼리 선물을 주고받을 때도 있다. 직원들 간의 적당한 선물은 필요하다는 것을 보고서에서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통상적인 수준을 넘으면 곤란하다. 특히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주는 선물은 자칫 ‘앞으로 잘 봐 달라’라는 뇌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자동차부품회사에 다니는 홍 아무개 사원은 대학선배이기도 한 직속상사의 아들이 대학입학을 하자 전자사전을 선물했다. 직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상사였기 때문에 그 정도는 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하지만 이것은 윤리규범에 어긋난 것이다. 아무리 의도가 순수하다고 해도 가격을 감안했을 때 과도한 선물이란 것이 보고서의 지적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 같다. 5만 원이 넘는 식사는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식사대접이란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즉 뇌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 특히 식사 후에 유흥주점 등의 2차 제의가 있을 경우 당장은 껄끄러울지 몰라도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보고서는 말한다.
때론 거래처로부터 특혜를 받을 때도 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대기업에 근무하는 황 아무개 부장은 한국전이 열리는 경기의 티켓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표는 이미 매진. 경기장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던 황 부장에게 거래업체의 한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기 티켓이 있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라는 내용이었다. 나름대로 윤리원칙이 확고하던 황 부장은 공짜로 받기는 꺼림칙해서 그 직원에게 돈을 주고 표를 구입했다. 그 표로 그는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언뜻 생각하면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이니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보고서는 김 부장이 그 표를 사지 말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본인이 구입하지 못했던 표를 구한 것 자체가 거래처로부터 ‘편의 제공’을 받은 것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거래처 직원들과 고스톱을 쳐서 돈을 땄다면 그 돈을 돌려줘야 할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친목도모를 위해 ‘재미’로 쳤더라도 그것이 간접적인 금품수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금품수수에 대한 감시가 엄격하다 보니 그 수법이 다양화되어 고스톱도 접대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 당구, 골프, 카드놀이 등도 이에 해당한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윤리’와 상사의 ‘명령’이 충돌할 때가 있다. 이럴 경우 보고서에서는 주저 없이 ‘윤리를 따르라’고 말한다. 당장은 손해를 볼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본인이나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한 아무개 대리도 얼마 전 이와 같은 일을 경험했다.
업무에 필요한 물품들을 평소 거래하는 A 사로부터 1000만 원에 구입하기로 했는데 상사가 느닷없이 B 사로부터 1200만 원에 구입하라고 한 것. 알고 보니 상사와 그 B 사의 사장은 친구였다. 부당한 명령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직장생리상 거절할 수 없어 B 사와 계약을 맺었다.
보고서는 한 대리가 상사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으면 차라리 윤리부서에 신고를 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리를 위해서는 ‘하극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기업의 내부신고 문제가 대두된다. 아직까지 직장인들에게 내부신고는 ‘머나먼 나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얼마 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동료의 사내 부정행위에 대해 신고하겠다는 직장인은 5명 중 1명에 불과했다. 또 직장 내 윤리 위반에 대해서도 37%가 처벌보다는 경고에 그쳐야 한다고 대답했다.
기업현장에서도 내부신고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보고서의 지적이다. 이는 온정적이고 유대관계를 중시하는 조직풍토로 인해 직장인들이 내부신고에 대해 익숙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