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록 전 회장은 지난 28일 법무대리인 법무법인 화인을 통해 “지난 16일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직무정지 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본안 소송을 29일로 취하한다”고 전했다.
임 전 회장은 앞서 지난 12일 금융위가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와 관련,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내리자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7일 KB금융지주 이사회가 임 전 회장을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해임한 뒤에도 등기이사 직은 유지해 왔다. 그러나 임 전 회장은 등기이사 직도 사퇴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자 한다.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을 제 부덕의 소치로 생각하고, 앞으로 충분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며 “KB금융그룹의 고객, 주주, 임직원 및 이사회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KB금융이 새로운 경영진 선임으로 조속히 안정되기를 기원한다”고 태도 변화의 변을 설명했다.
얼마 전까지 “끝까지 가겠다”던 임 전 회장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데는 ‘자리’에 집착하는 것으로 비쳐질지 모를 부담감, 관료 출신으로 정부와 맞서 이기기 힘들다는 등의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임 전 회장은 “범죄행위에 준하는 잘못이 없다”며 징계처분을 억울해 하고 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금융당국이 검찰 고발한 상황에서 자진 사퇴하면 ‘치부가 드러나기 전에 항복하는 것’이라고 비쳐질 수 있어, ‘결사항전’을 결심한 임 전 회장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억울함’이 ‘집착과 욕심’으로 대중의 부정적 시각이 늘어날 수 있다는 부담감이 태도를 바꾼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행정고시 20회의 경제관료 출신으로서 정부와 맞서면 결국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임 전 회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또한 자신의 버티기로 KB금융이 받게 될지도 모를 불이익, 관료 출신 후배인 신제윤 금융위원장(행시 24회), 최수현 금융감독원장(행시 25회)과 계속 싸워야 한다는 부담감, 자신의 결백과 상관없이 ‘모피아(재무부+마피아) 낙하산’에 대한 부정적 여론, 이사회까지 돌아선 상황에 몇 년에 걸친 소송전에서 이긴다고 해도 실익이 별로 없다는 점 등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임 전 회장이 소송을 취하하고 KB지주 등기이사 직도 사퇴하면서, 5개월을 넘게 끌었던 ‘KB사태’는 당분간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차기 회장 선임절차가 빠르게 진행돼 정상화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