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벌 신사’ 박정희 대통령 계절별로 돌려 입어
<나는 …두려웠다>에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한밤중에 들이닥쳐 윤전기를 멈춰 세웠던 선우휘·이영희 필화사건, 10월 유신 ‘언론암흑의 시대’에 김대중 납치 규탄 사설을 싣고 잠적한 주필의 ‘반란’, 5공 시절 신문기사에 빨간 줄 쳐가며 신문사 발행인들에게 따지던 장세동 안기부장 등 그간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권력과 언론의 갈등 내막과 비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주장 뚜렷한 박정희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역대 대통령들에 관한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 방 회장은 ‘내가 본 대통령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신이 살펴본 역대 최고 권력자들의 개인적인 특징과 함께 그들과의 일화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한 역대 대통령들의 고독과 순박함, 고집과 열등감 등 인간적인 면면을 여과 없이 담아내고 있다.
방 회장이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역대 대통령은 다름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 5·16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박 전 대통령을 처음 보게 됐다는 방 회장은 그를 ‘호불호가 대단히 강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가느다란 눈에서 안광이 번뜩이는데 아주 매서웠다. 깡마른 체구의 박정희는 새까만 얼굴에 반짝이는 눈과 하얀 이만이 유난히 돋보여 한눈에도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이 방 회장의 술회다.
‘냉정하고 차갑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반응도 재미있다. 언젠가 청와대 모임에서 방 회장이 “국민들 사이에 박 대통령의 인상이 너무 차갑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그런 오해가 불식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더니 박 전 대통령은 수북이 쌓인 면담신청서를 보여주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일일이 다 만나겠습니까”라면서 “제가 뱀띠라서 천성이 차갑습니다”라고 덧붙였다는 것.
사범학교 출신인 박 전 대통령은 오랜 군대생활의 영향 탓인지 성격이 깐깐하고 예의범절도 상당히 따졌다고 한다. 한번은 한 신문사 발행인이 청와대에서 가진 박 전 대통령과의 환담 자리에서 무심코 다리를 꼬았다가 대통령이 따가운 눈초리로 노려보는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된 적도 있었다는 것.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의외로 농촌 출신다운 소박한 면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방 회장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국그릇에 밥을 말아먹는 일반 사람들과 달리 밥그릇에 국을 부어 먹는 독특한 습관이 있었는데 김을 먹을 때도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김에 갖다 대어 착 붙여 먹는 식이었다고 한다. 또 계절별로 양복 하나를 정해두고 늘 같은 옷을 입었는데 어찌나 다림질을 여러 번 했는지 옷 표면이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였다는 것.
방 회장이 칼같이 매섭게만 보였던 박 전 대통령의 순진한 일면을 소개한 대목도 무척 재미있다. 한번은 청와대 초청 오찬에 앞서 발행인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환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박 전 대통령의 눈동자가 왔다갔다하면서 무언가를 쫓고 있더라는 거다. 대통령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파리 한 마리가 윙윙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박 전 대통령이 들고 있던 유리잔을 내려놓더니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꽝 하고 내리쳤다고 한다. 대통령의 느닷없는 돌출행동에 모두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잠시 후 박 전 대통령은 방 회장에게 몸을 기울이더니 “방 사장, 잡았어”라고 하더란다. 그러면서 손바닥을 펴는데 그 안에는 파리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방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을 차가움 뒤에 순박함과 다정다감함을 간직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점들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많았을 거라는 게 방 회장의 얘기다.
고독한 사람 최규하
최규하 전 대통령에 대해서 방 회장은 ‘귀거래사를 읊던 고독한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썼다. 직업공무원 출신인 최 전 대통령은 소위 말하는 보스 타입은 아니었다고 한다. 외무부 장관 때도 자기 사람을 안 키워 심복이 없는 그를 두고 신문사 내부에서도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냐’는 말이 많았다는 것.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화 의지와 군부의 집권욕 사이에 끼어있던 그가 나름 애를 쓰는 것을 보면서 ‘체격 값은 한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전두환 신군부 세력들에 둘러싸여 마음 편히 밥 먹을 사람도 없었던 최 전 대통령은 신문사 사람들을 만나길 좋아했는데 ‘선인들이 벼슬을 마치면 쓸데없는 잡음을 피하기 위해 낙향한다’는 얘기에 공감을 표하며 자신도 대통령을 그만두게 되면 고향인 강릉에 내려갈 계획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 최 전 대통령은 결국 5공화국 출범과정에 대해 끝내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서거하고 말았는데 방 회장은 최 전 대통령의 특이한 고집으로 짐작컨대 비망록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전하고 있다.
보스 기질의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에피소드들도 흥미롭다. 1979년 10월 ‘부마사태’ 직후 장충동의 한 술집에서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방 회장은 당시의 그에 대해 혈색이 좋고 아래턱이 두둑해 장군으로서의 위엄을 풍겼다고 회고한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전 전 대통령이 보스기질이 충만했고 사람이 분명하며 사나이다운 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독대를 좋아한 전 전 대통령은 방 회장을 만나면 30~40분간 담배도 혼자 피우며 홀로 계속 얘기를 하곤 했는데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다는 것. 참다못해 방 회장이 ‘저도 담배 한 대 피우겠습니다’고 했더니 전 전 대통령은 ‘아, 담배를 피우시던가요’라며 능청을 떨며 묻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독대 후 방 회장은 장세동 경호실장으로부터 ‘각하 앞에서는 담배 좀 피우지 말라’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방 회장은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사람 하나는 기막히게 쓸 줄 아는 영리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나보다 유능한 부하를 써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히 알고 있는 인물로, 아웅산 사태 후 ‘인재가 고갈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청와대 비서관이나 각료에 훌륭한 사람들이 발탁됐다고 한다.
무른 성향의 노태우
노태우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술자리에서의 해프닝을 소개한 대목이 흥미롭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언론을 기피했는데 1989년 가을 청와대가 언론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언론사 대표들을 초대했다고 한다. 당시 방 회장은 노 전 대통령 맞은편에 앉았는데 자리가 무르익어갈 무렵 초대된 일행 중 한 명이 무릎을 꿇은 채 노 전 대통령에게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라고 하더라는 거다. 그 모습이 어찌나 비위에 거슬렸던지 방 회장은 커다란 유리잔에 술을 가득 부어 그에게 주면서 핀잔을 주었는데 이 때문에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는데 이날 방 회장은 대통령 앞에서 주사를 부린 셈이 됐다는 것.
방 회장은 이날 해프닝과 관련, 술에 취하면 속에 있던 말을 그대로 내뱉는 자신의 술버릇이 발단이 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노 전 대통령이 언론계에 무르게 비친 것에도 원인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주변을 휘어잡는 장악력이나 권위가 부족한 인물이었다는 게 방 회장의 평가다.
아들 챙기던 김영삼
유독 그와 인연이 깊던 김영삼 전 대통령(YS)과의 일화도 눈길을 끈다. 방 회장이 YS를 처음 만난 것은 1956년 사회부 기자 시절이었는데 방 회장은 당시의 YS에 대해 귀공자 인상에 늘 웃는 얼굴이었으며 성격도 모나지 않아 호감이 갔다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YS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방 회장과의 관계는 껄끄러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발단은 YS의 아들문제 때문이었다.
취임 전 방 회장은 김대중 주필과 함께 YS를 만났는데 YS는 ‘아들 부부를 청와대에 데리고 들어가려 한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에 김 주필이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부나방의 세계에 대통령의 가장 큰 신뢰를 지닌 대통령 아들을 방치한다는 것은 대통령 주변의 기강과 질서를 깨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의사를 피력했다는 것. 이에 YS의 낯빛이 변하는 게 보였는데 취임 직전 김 주필이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칼럼을 쓴 이후 YS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특히 취임 후 정부정책을 비판하면서 관계는 더욱 불편해졌다고 한다. YS가 금융실명제를 밀어붙일 때 방 회장은 YS에게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반대의사를 나타냈는데 이런저런 미운 털이 박혔는지 1994년 조선일보는 세무사찰을 당하기도 했다는 것.
방 회장은 YS에 대해 배짱 있고 고집이 세면서도 감성이 예민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YS는 개인적으로 비위에 안 맞으면 참지 못했는데 앞뒤 재면서 치밀하게 일을 계획하지는 못했지만 타고난 정치적 감각으로 속전속결로 일을 해치우는 능력은 단연 돋보였다는 게 방회장의 얘기다.
YS는 재임 중 공무원들의 골프 금지령을 내렸는데 방 회장이 서울CC의 이사장으로 있을 때 주변에서 대통령의 골프 금지령을 풀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고 한다. 이에 방 회장은 YS에게 세 번을 얘기했는데 그때마다 YS는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라며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또 방 회장은 YS가 취임 직후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김재순 국회의장을 재산문제로 걸어 내치고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인정사정없이 내치는 모습을 보고 YS의 독한 면을 다시 보게 됐다고 고백하고 있다.
상당한 미식가 김대중
김대중 전 대통령(DJ)에 대해 방 회장은 ‘타고난 계략가’로 평가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집념이 강한 사람이고 다르게 말하면 야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 방 회장의 해석이다. 방 회장은 1988년 가을경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DJ와 단둘이 식사를 하게 됐다고 한다. DJ는 사람을 직시하지 못하고 위로 눈을 치켜뜨며 바라봤으며 창문이 덜컹 하는 소리가 나도 깜짝 놀라곤 했는데 사형선고까지 받는 험난한 정치역정을 거치면서 생긴 후유증으로 여겨져 인간적인 동정심이 일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방 회장은 DJ에게 작정하고 충고를 했다고 한다. ‘사상적 의심을 받고 있으니 해소할 것, 거짓말하고 앞뒤가 다르다는 평을 불식시킬 것, 호남을 인질로 표를 얻으려고 하는 지역감정에서 벗어날 것’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방 회장의 진심어린 충고에 DJ는 기분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1997년 대선 당시 방 회장은 DJ를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함께 먹기도 했는데 이 선거에서 DJ는 네 번째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고 방 회장은 언론인 중 처음으로 청와대로 초청을 받았다고 한다. 이날 방 회장은 ‘샤토 오브리엥’이라는 고급 와인을 접대 받았는데 DJ는 와인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상당한 미식가였다는 것이 방 회장의 얘기다.
중앙정보부와 ‘빨간펜’
한편 역대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 사람들과의 껄끄러운 인연을 소개한 부분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방 회장에 따르면 언론과 권력의 긴장관계가 최고조에 달했던 70년대 후반 당시 역대 정보부장 중 신문사를 가장 괴롭혔던 사람은 김형욱 씨였고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5공 시절 장세동 안기부장이었다고 한다.
특히 장세동 씨는 기사가 마음에 안 들면 방 회장을 보자고 했는데 빨간 연필로 신문에 줄을 좍좍 그으면서 ‘기사가 왜 이러냐’며 따지기 일쑤였다는 것. 당시 안기부는 방 회장이 회사에 없는 밤에는 빨간 줄을 친 신문을 집으로 보내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정보부 사람들과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서슬 퍼렇던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실감케 해준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