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활동 하면 페널티 각오해라”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은 이번이 야당이 혁신할 마지막 기회라며 가능하면 매주 혁신 과제를 선정, 비대위와 의원총회를 통해 실천결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먼저 현안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오늘(10월 2일) 박영선 원내대표가 사퇴했다.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다.
“물론 세월호 특별법이 실제 제정되는 시점까지 역할을 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일 수는 있다. 하지만 반대로 박영선 전 원내대표 본인 입장에선 ‘불필요하게 자리에 연연하는 것 아니냐’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아쉽지만 무엇보다 본인의 결단을 존중해야 한다.”
―아직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야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외부에선 이를 두고 ‘면피용’이라는 시선도 있다.
“면피용으로 볼 수는 없다. 우리도 유가족이 동의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분명 야당으로서 힘의 한계가 있었다. 모든 국회 일정을 공전시키면서 계속 끌고 나가기가 어려웠다. 또 시간이 갈수록 국민의 관심이 약화되는 문제도 있었다. 미흡하고 안타깝지만 기본적으로 세월호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그에 기반한 개혁과제 추진의 틀로서 특별법 제정이 필요했다.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다?
“그렇다. 제도(특별법)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들에게 여한이 없도록 특별법을 제대로 만들어서 철저히 진상규명하겠다’고 앞서 말한 박근혜 대통령이 꼭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론 이는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기대에 부응할 것이다.”
―유가족들에 대한 동의 과정을 포함해 앞으로의 과제도 만만찮다.
“진상규명위원회 구성과 특별검사 임명에 있어서 정말 사정을 잘 이해하고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야말로 면피용으로, 형식적으로 임하는 사람은 절대 안 된다. 난 지금 그게 걱정이다. 그런 점에서 유가족이 특검 임명에 직접 참여하진 못하더라도 우리가 사전에 계속 그분들과 협의하고 뜻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어려운 시점에 중요한 자리를 맡았다. 부담스럽지 않나.
“아주 부담을 느낀다. 그러나 어쨌든 이건 ‘마지막 기회’다.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것과 그렇지 않고 아예 체념하고 포기한 것은 전혀 다르다. 그런 자세로 임하자는 게 내 생각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혁신’이 뭔가. 어떤 부분을 가장 혁신하고 싶나.
“혁신은 결국 기존의 것을 혁파하는 것이다. 기본 질서에서 형성된 기득권 내려놓지 않으면 불가능한 부분이다. 큰 것을 이르자면 개헌과 선거구제 논의를 통해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다.”
―그간 혁신위는 많았다. 한 당직자는 “우리가 혁신한다고 만들어 온 백서와 보고서만 한 트럭”이라며 자조하더라. 이번 역시 페이퍼용 혁신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페이퍼용 혁신이 되지 않으려면 혁신안의 발굴과 실천에 민주적 권위가 담보돼야 한다. 가능하다면 매주 혁신과제를 선정해 비대위와 의원총회를 통해 실천결의를 할 계획이다. 또 당 혁신대회도 검토 중이다. 미국의 아메리카스픽스, 스웨덴의 알메달렌을 벤치마킹해 당권과 지지자들의 소통을 이끌고 공감하는 장을 만들고자 한다. 이미 우리 충남도당에서 당원총회를 성공시킨 바 있다.”
―개헌과 선거구제 개혁에 앞서 당 내부의 계파갈등 문제 해결이 우선 아닌가.
“맞다. 제일 문제다. 일부의 목소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계파 문제를 지적한다. 계파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움직임이 필요할 때다.”
―위원장의 의지는 알겠지만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필요한 것 아닌가. 이미 분당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 않나.
“그렇다. 정말 다양하고 적극적인 의견수렴과 토론이 필요할 때다. 이를 통해 문제점이 뭐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중지를 모아야 한다. 구체적이고 강력한 안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당 윤리위원회를 복원하고 당헌당규를 통해 계파활동에 대한 엄중한 페널티를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학습과 봉사를 하는 의원모임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주어 의원들 사이의 관계를 양성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문제는 나 스스로 ‘확실히 바로잡지 않으면 당의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임하겠다.”
―개헌에 대한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범위에 대해 이르자면 의원들 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나.
“물론 개헌의 필요성은 1987년 체제의 한계를 여러모로 지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 포함된다. 하지만 너무 광범위하게 다루고자 한다면 의견이 수렴되기 어렵다. 결국 1차적으로는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이다. 현재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문제가 있다. 무책임의 정치를 책임의 정치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이 ‘이원집정부제’다. 대통령은 직선으로 선출하되 내각은 구회 다수의 지지를 받는 사람으로 구성해 권력을 나누고 견제해야 한다. 선거를 통해 정부를 심판하고 새로 구성하는 권력 시스템이 핵심이다.”
―선거구제 개혁에 대해선 염두에 두고 있는 방안이 있나.
“어찌되었건 지금 영호남은 경쟁이 없다. 영호남 국민은 현재 선택의 자유가 없다. 이정현 의원의 사례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독일식 정당명부제와 함께 논의되는 것이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다. 광역시와 대도시는 하나의 선거구로 묶어서 세 명 이상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적용하고, 소도시와 농촌은 지금처럼 하나의 선거구에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운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사실 제일 궁금한 것은 야당의 차기 권력구조 개편이다. 현재 비대위의 가장 큰 목적 역시 전당대회를 잘 치러서 권력이양 잘 하는 것 아닌가. 당 권력구조 개혁도 혁신과 무관하지 않다. 이 부분에 있어서 혁신위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매우 미묘하지만 중요한 문제다. 다만 전당대회와 관련한 것을 우리 혁신위에서 다루는 것이 적절한지, 아니면 곧 만들어질 전당대회준비위가 다루는 것이 적절한지는 일단 비대위와 상의해 봐야한다. 다만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게임의 룰은 당연히 전대준비위가 다뤄야겠지만, 크게 당의 구성과 운영방안 등 기본적 문제는 혁신위의 과제로 다룰 수 있다고 본다.”
2011년 12월 30일 민주통합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당시 원혜영 공동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일요신문 DB
―당헌당규 개정에도 관여할 여지가 있는가. 특히 현재의 단일성 체제에서 집단지도 체제로의 개정 가능성도 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당헌당규 개정은) 혁신의 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뭔가 안 맞는 것을 고치는 게 혁신 아닌가.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정당 운영방식이냐가 핵심이다. 그것(집단지도 체제 개정)은 혁신위에서 다루긴 너무 좁은 의미 같다. 또 그것은 중요한 문제기 때문에 비대위가 직접 다뤄야 한다고 본다.”
―지역위원장 개혁 문제도 큰 이슈다.
“일단 지역위원회 선정은 조직강화특위가 맡는다. 우리 혁신위가 역할을 하고 비대위에 결과물을 전달하기엔 너무 시급한 과제다.”
―혁신위 1차 인선이 완료됐고, 이제 곧 외부 인사 인선이 남았다.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은 있나.
“아직 밝히기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혁신위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단 ‘실천’을 주된 과제로 삼고 있다. 개혁의지가 확고하면서도 우리 정치현실과 당이 처한 위기상황에 대해 잘 인지하고 계신 분을 인선하고자 한다.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다.”
―위원장은 ‘(범)친노계’ 인사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당내 중도온건파를 중심으로 이번 인선이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섭섭하지 않나.
“섭섭할 것 없다. 오히려 친노로 봐줘서 고맙다. 난 20년 전부터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했으니 ‘원조 친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당에서 따지고 보면 친노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만 이것은 있다. 어쨌든 뭔가 원칙을 갖고 객관적으로 따질 필요가 있지 않나. 그저 자기 편의에 따라 그렇게 기준 없이 뭔가를 규정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의 위기는 이미 만성화된 현상이 됐다. 앞서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뭘 어찌 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한국 정치 지형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우리 야권의 입지가 약하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야당이 한때 집권도 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밖에 더 있나?’라고 생각해 온 것이다. 그러다 국민들로부터 ‘너네도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고 심판 받은 셈이다. 이제 과감히 혁파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혁신위가 발족한 이유다. 또 스포츠로 따지면, 정당은 개인종목이 아닌 집단종목이다. 이제 어느 누구도 ‘어디 잘하나 보자’는 식으로 뒷짐만 지고 지도부에게 맡기면 안 된다. 모두가 적극적이어야 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