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든 손 열받자 흉기로…
꽃바구니를 들고 여자친구 집에 찾아간 김 씨는 그녀의 가족들까지 잔혹하게 살해했다. 사진은 엘리베이터 CCTV 화면에 잡힌 김 씨의 모습. 사진제공=광주서부경찰서
먼저 화해의 손길을 건넨 건 김 씨였다. 김 씨는 커다란 꽃바구니를 사들고 자신에게 냉랭해진 권 씨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권 씨의 아파트로 향했다. 꽃바구니를 건네며 사과하면 권 씨의 마음도 금방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 씨의 기대와 달리 권 씨는 김 씨를 차갑게 대했다.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온 김 씨에게 권 씨는 “필요 없다”며 집에서 나갈 것을 요구했다. 이에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김 씨는 홧김에 권 씨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광주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살해 동기에 대해 김 씨는 말 그대로 ‘(권 씨가) 무시해서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자 홧김에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 씨를 목 졸라 살해한 김 씨는 권 씨를 이불로 덮어 사체를 은폐하려했다. 그런데 김 씨가 사건현장을 정리하던 중 누군가 권 씨 집으로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같은 동네에 살던 권 씨 어머니 채 아무개 씨(여·68)였다.
권 씨 어머니는 중학생인 외손녀를 돌봐주기 위해 가끔 권 씨의 집에 들르곤 했다. 그날도 권 씨 어머니는 외손녀의 저녁상을 차려주기 위해 권 씨의 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김 씨는 그런 권 씨 어머니를 둔기로 때려 살해했다. 권 씨에 이어 권 씨 어머니까지 살해한 김 씨는 권 씨 어머니 사체를 작은방으로 옮겨 은폐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 씨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던 저녁 8시께 권 씨 딸 장 아무개 양(14)이 학원을 마치고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장 양의 인기척을 느낀 김 씨는 화장실에서 안방으로 급하게 몸을 숨겼다. 집을 둘러보던 장 양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통화 중이던 친구에게 “할머니 신발이 없어. 욕실에서 소리는 나는데. 무서워”라고 말했다.
잠시 후 장 양은 작은방에서 외할머니 채 씨가 숨진 채 누워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외할머니 시신을 본 장 양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안방에 숨어서 권 씨 딸 장 양을 살피던 김 씨는 안방에서 뛰쳐나와 장 양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경찰은 장 양과 장 양 친구의 통화가 끊긴 시각을 장 양이 살해된 시각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 씨가 권 씨 일가족 3명을 살해한데 걸린 시간은 2시간 남짓. 더욱 충격적인 것은 김 씨는 목을 조른 권 씨와 전 양이 숨지지 않자 주방에 있던 랩으로 권 씨와 전 양의 얼굴을 감아 질식사시켰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무참히 일가족을 살해한 김 씨는 이미 한 차례 살인죄로 5년을 복역했던 사실이 있는 것으로 <일요신문> 취재결과 드러났다. 경찰관계자는 “김 씨는 2006년 살인죄로 5년을 복역한 바 있다”며 “출소 후에는 행상을 하며 생활했다”고 말했다.
범행 직후 사건현장에서 달아난 김 씨의 도피행각은 금세 꼬리가 잡혔다. 사건발생 다음날인 9월 30일 장 양이 다니던 중학교 교사가 평소 성실했던 장 양이 학교에 나오지 않고 연락도 닿질 않자 직접 장 양의 집을 찾은 것이다. 장 양의 집을 찾은 교사는 집에서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도 휴대폰 전화 벨소리가 들리는 집안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장 양의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 양의 집에서 시신을 확인한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통해 장 양의 집이 위치한 9층에서 한참을 머물다 나오는 김 씨를 발견하고 용의자로 특정했다.
렌터카로 도주했던 김 씨는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기도했다 미수에 그친 뒤 전북 고창지역에 숨어있다 지난 1일 새벽 5시께 탐문수사 중이던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발생 34시간 만이었다.
경찰관계자는 “현재 김 씨는 권 씨 딸을 죽인 것에 있어서는 매우 후회한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현장검증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