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 들어봐 큰돈 벌게 해줄게”
불법 다단계 업체의 ‘관절’ 역할을 하는 센터 운영자들은 화려한 언변으로 각종 사업설명회를 개최해 투자자를 유치한다. 우태윤 기자
충남 아산의 한 평온한 농촌마을. 대부분 노인들이 작게나마 농사를 지어가며 근근이 살아가는 촌락이다. 이곳에 불행이 닥친 것은 지난해부터다. 이 마을의 노총각 김 아무개 씨(45)는 지난해 어렵사리 주변의 소개로 이 아무개 씨(여·41)를 만나 늦장가를 갔다. 문제는 이 마을에 살게 된 새댁 이 씨였다.
이 씨는 온라인 쇼핑몰 분양 사업을 골자로 하는 ‘다단계 S’의 열혈 회원이었다. 마을 인근에 자신의 명의로 센터를 차리고 마을 노인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들의 쌈짓돈을 낚아채갔다. 이 마을 노인들 중에서 다단계 S를 모르면 간첩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대부분 노인들은 그 세세한 사업 내용까지 알지 못했다. 그저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싹싹하고 언변 좋은 새댁의 말만 믿었을 뿐. 물론 노인들에게 돌아가는 수당은 거의 없었다. 현재 이 씨는 잠적했다. 어렵게 배필을 맞이한 남편 김 씨는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중이다.
한 다단계 피해 상담 전문가 A 씨로부터 전해들은 최근 사례다. A 씨가 운영 중인 국내 최대 규모의 피해자 상담 카페에는 이 같은 피해 사례가 수두룩했다. 불법 다단계 사기는 아마도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목격되는 사기 범죄의 유형일 것이다.
다단계는 크게 적법한 절차를 거쳐 운영되는 실질 업체와 아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영업을 개시한 가상 업체로 나뉜다. 여기서 말하는 가상 업체 대부분은 우리가 소위 말하는 ‘사기 업체’다. 현물보다는 무형의 상품 혹은 금융 및 투자를 명목으로 내세우는 피라미드 형태가 주를 이룬다. 오랜 기간 많은 불법 업체를 지켜보고 연구했다는 A 씨는 “불법 업체 역시 법인도 존재하고 공식 홈페이지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종합하면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불법 다단계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불법 다단계에 생명을 불어 넣고 두뇌로서의 역할을 하는 이는 ‘최초 기획자’다. 이들의 존재는 베일 속에 철저히 가려져 있다. 대부분 ‘바지사장’ 혹은 가상의 CEO(최고경영자)를 내세운다. 요즘 불법 다단계 업체는 이전과 비교해 스케일도 커졌고, 무엇보다 국제화 추세에 있다. 국내에 법인 설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초 기획자들은 버진아일랜드, 마샬제도, 홍콩, 카리브해 국가 등 조세회피지역을 중심으로 유령회사를 설립한다. 홈페이지 개설 역시 해외에 서버를 두는 경우가 많다.
다단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경찰은 “불법 업체들도 급수가 존재한다. 자금의 여유가 있는 기획자들은 초기 투자비용을 과감하게 사용하거나, 1차 투자금 회수 후 재투자에 나선다”며 “이를 통해 홈페이지에 공을 들여 의심의 여지를 없앤다. 지난해 큰 피해를 양산했던 펀드 다단계 G 사의 경우 여느 금융기관의 사이트와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초기 투자비용을 많이 들인다면, 그들 입장에선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라고 귀띔했다.
아이템은 무궁무진, 돈이 된다면 뭐든 가능하다. 다만 앞서의 아이템들과 겹치면 곤란하다. 이 때문에 기획자들도 나름 아이템 발굴에 대한 연구를 거듭한다. 쇼핑몰 분양, 여행상품, 펀드, 경매, 파워드링크에 최근에는 클라우드(가상 저장소),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광고, 게임 등 신종 아이템이 등장했다.
최초 기획자가 사기를 치기 위한 요건을 완벽하게 조성했다면, 그 다음은 이를 유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생명체로 따지자면, 온몸에 혈액을 퍼트리는 ‘심장’과 같은 역할이다. 이른바 ‘알바’로 통용되는 전문 유포자의 활약이다. IT 강국 한국은 온라인 영역에 있어선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앞선 국가다. 이러한 IT 혁명은 어쩌면 불법 다단계 사기에 있어선 최적의 생태를 선사한 셈이 됐다. 익명성과 파급성이 보장된 온라인 환경 자체가 불법 다단계 사기를 더욱 부추긴 꼴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등장한 것이 앞서 말한 전문 유포자들이다.
전문 유포자들은 자신이 평소 활동하는 각종 온라인 카페와 게시판, 최근엔 각종 SNS를 통해 앞서 기획자가 내놓은 불법 아이템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유포한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해당 아이템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이들은 그저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보를 유포하고 거기서 떨어지는 ‘수당’을 목적으로 한다. 이들을 두고 ‘수당 사냥꾼’이라 부르는 이유기도 하다.
이를 통해 불법 다단계 업체에는 1차 투자자들이 모여들고 초기 자본금이 형성된다. 더 놀라운 것은 초기에 업체들로 꼬이는 1차 투자자들 상당수는 사업의 불법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아이템만 좋다(사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면 기꺼이 그 업체에 발을 담가 상위계급을 형성한다. 그 때부터 자기 영업에 나서며 빠져나갈 타이밍을 계산한다.
보다 적극적인 1차 투자자들 일부는 불법 업체의 ‘관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센터’를 전국 곳곳에 세우고 활동에 나선다. 이른바 ‘센터 운영자’다. 이를 통해 불법 다단계의 전국적 확산이 진행된다. 센터 운영자들 역시 대부분 다양한 불법 아이템들을 다뤄본 경험자들이다. 화려한 언변과 화술로 무장한 이들은 각종 사업설명회를 개최한다. 앞서의 전문 유포자와 같이 ‘꾼’으로 통하는 이유다.
앞서의 1차 투자자들과 달리 여기서부터는 실제 피해자가 양산되기 시작한다. 주변의 소개로 센터를 찾은 피해자들은 이른바 센터 운영자들의 화려한 언변에 홀딱 넘어간다. 앞서의 경찰은 “불법 업체들이 센터를 개설해 사업설명회를 열지만, 대부분 초단기 임대 형식이다. 우리가 정보를 입수했을 때는 이미 늦는 경우가 많다”며 “또 대부분 센터 운영자들은 미필적 고의임에도 불구하고 불법 여부를 몰랐다 항변한다. 처벌 자체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업체들은 엄연한 불법이기 때문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앞서 설명했듯, 이미 불법 인지하에 수당을 노리고 들어간 1차 투자자들과 달리 업체의 90% 이상을 형성하는 실제 피해자들은 얼마 안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다. 최초 기획자는 본인이 정한 아이템은 있지만, 모여든 투자금을 실제 이 아이템에 투자하진 않는다. 몰려든 투자금(실제로는 피해금)을 통해 소위 말하는 꾼들과 1차 투자자들에게만 적당히 수당을 돌리다 그것이 한계에 다다르면 ‘먹튀’에 나선다.
불법 다단계 업체의 수명은 ‘양식’의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 업계 내부에선 이른바 ‘대박·중박·쪽박’이 있다는 후문이다. 잘 먹혀드는 아이템은 투자금도 수천억 원에 이르며 수명도 연장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피해 규모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A 씨는 “여행이나 쇼핑몰 분양 아이템의 경우, 나이 많은 어르신들도 대략 이해를 한다. 이해가 쉽고 접근하기 쉬운 아이템일수록 대박이 날 가능성이 높다”라며 “반면 파생상품, 온라인 저장소, SNS사업 등 이해가 어려운 아이템은 피해 규모가 한정돼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불법 업체들이 소위 말하는 ‘끝물’에 다다랐을 때, 최초 기획자는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고 또 다른 업체를 생성한다. 기획자는 이미 막대한 투자금을 ‘흡입’한 후다. 그렇게 또 다시 한 사이클의 작업이 순환된다. 안타까운 점은 천문학적 규모의 피해를 양산하는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적발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의 경찰은 “피해자 대부분 ‘자신의 원금을 회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와 본인 스스로도 가해자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쉽게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다. 또 운이 좋아 고발 조치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자신에게 투자를 제안해 돈을 가로챈 상위 계급자에 한해서”라며 “정작 막대한 투자금을 흡입한 기획자는 철저히 장막 뒤에 위치해 있으며 제3자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속의 칼날이 미치기 어렵다. 결국 수사의 목적 대부분은 처벌보다는 와해에 있다”고 밝혔다.
한병관 기자 wlimodu@iyo.co.kr
교회는 다단계 천국? 자매님 믿습니까? 그럼 투자하세요~ <일요신문>은 1163호를 통해 다단계 업체 ‘썬라이즈’와 관련한 불법 의혹을 조명한 뒤 각종 다단계 업체의 피해자들로부터 많은 문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의외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피해사례 상당수가 교회 내부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한 여대생은 “현재 가족과 함께 서울 관악구의 한 개척교회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담임목사가 우리 가족을 포함해 각 가정에 사업 아이템을 소개한다며 투자금을 요구했다”며 “알고 보니 다단계였다. 그 사실을 안 것은 부모님이 목사에 돈을 건넨 후였다. 지금 부모님께 말도 못하고 나 혼자 끙끙 앓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단계 피해상담 전문가는 “교회 내 피해사례가 많다. 이는 적절한 폐쇄성과 유대관계가 밀접하게 형성돼 있는 한국 교회 특유의 문화 탓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한국 교회는 불법 다단계 영업의 최적 장소”라며 “최근 들어서도 마케팅 기술 특허를 명목으로 급속히 확장 중인 P 사와 SNS 광고권을 아이템 삼아 번지고 있는 M 사 등이 전국 교회 커뮤니티를 공략하고 있다. 교회 입장에서 보면 ‘이단 퇴출’만큼 ‘다단계 퇴출’도 골치 아플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