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과 김규리, 두 여배우의 과감한 음모 노출 장면이 화제의 중심이 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세간의 시선은 김규리가 김호정 투병고백에 눈물을 흘린 장면에 집중됐다. <화장>이 갈라프리젠테이션 공식 초청작인 터라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기자회견에 모더레이터로 나선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김호정 씨가 오랜 투병생활을 해서 본인이 본인에게 감정이입이 된 것 같다”며 김호정의 투병사실을 전하자 김규리는 “영화 촬영 과정에서 언니랑 수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언니가 (투병 사실을) 나에게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다. 오늘 처음 이 자리에서 알게 돼 깜짝 놀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투병 생활을 캐릭터에 투여해 혼신의 연기를 펼친 김호정,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눈물을 흘린 후배 배우 김규리의 아름다운 모습이 영화 <화장>을 최고의 화제작으로 만든 셈이다.
기자회견에서 이와 같은 ‘김호정 투병고백에 눈물’이라는 화제가 없었더라면 영화 <화장>은 자칫 김호정 김규리 두 여배우의 음모 노출로만 화제가 됐을 수도 있다. 영화 <화장>이 두 여배우의 음모 노출로만 화제를 양산하지 않은 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화 <화장>은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화장품 대기업 중역인 오상무(안성기 분)는 헌신적이고 충실한 간병인이자 남편이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투병 중인 아내(김호정 분)와 매력적인 부하직원 추은주(김규리 분)가 있다.
4년여의 투병 생활 끝에 사망한 아내, 아내를 간병하며 마음으로 연모해온 추은주가 오상무를 둘러싸고 있다. 영화는 아내가 사망한 시점과 투병중인 과거 시점을 교차하며 오상무의 갈등을 그려낸다. 암에 걸린 아내가 죽음과 가까워질수록 다른 여자를 깊이 사랑하게 된 한 중년남자의 절망적이고 서글픈 갈망이 바로 영화 <화장>의 중심이다.
음모 노출 장면 역시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우선 김호정의 음모 노출 장면은 화장실에서 이뤄지는 데 투병 생활로 거동이 불편해 화장실조차 혼자 가지 못하는 아내를 오상무가 돕는 장면이다. 이처럼 암 투병으로 피폐해진 아내의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김호정의 음모 노출 장면이 등장한다. 에로틱한 노출과는 전혀 무관한, 오히려 투병 생활을 보다 사실감 있게 그려내는 과정에서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로 등장하는 노출 장면이다.
김규리의 노출은 성적 판타지를 배가하기 위해 등장한 만큼 어느 정도는 에로틱한 노출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장면 역시 에로틱한 요소보다는 오상무의 갈등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기 위해 등장한다. 매력적인 부하직원 추은주를 마음으로만 연모하는 오상무는 추은주가 전라 상태로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성적인 욕망을 표출한다. 투병 중인 아내와 젊고 매력적인 부하 여직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오상무의 심리 상태를 적절하게 그려내기 위해 등장한 음모 노출 장면이다. 성적 판타지를 위해 침대 위에서 이뤄진 음모 노출 장면이라 베드신으로 구분할 순 있지만 정사가 이뤄지는 정사신은 아니다.
결국 두 여배우의 음모 노출 장면은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핵심, 다시 말해 오상무의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수위를 감안해서 촬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거장 임권택 감독은 두 여배우의 음모 노출 장면을 통해 보다 직접적이고 극명하게 오상무의 갈등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연출을 했다. 또한 두 여배우 역시 거부감 없이 감독의 연출 의도에 따라 과감한 노출 장면을 소화했다. 또한 해외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한 영화인 터라 임 감독이 사실성 극대화를 위해 두 여배우의 음모 노출 장면을 사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임 감독은 칸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강행군을 했지만 나이가 장애물이 됐다고 털어왔다. 촬영 과정에서 한 달 가량 몸이 아프는 등 임 감독은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칸 영화제에 영화를 보냈지만 당시 출품 버전은 편집이 너무 졸속으로 이뤄졌고 결국 칸 영화제에서 관심 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임 감독은 “일단 칸 영화제에 영화를 보낸 뒤 경쟁부문에 초청이 이뤄질 때까지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편집하려 했지만 너무 졸속으로 이뤄진 버전이라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난처해졌다”며 “이후 제작사인 명필름 심재명 대표의 제안을 받아 다시 편집해 꽤 정돈된 버전이 완성됐다”고 밝혔다.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버전이 바로 편집을 다시 거쳐 정돈된 버전이다. 이후 <화장>은 제7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제39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제33회 밴쿠버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이제 남은 건 극장 개봉작 버전이다. 영화제의 강점은 대중들의 관람을 목적으로 한 극장 개봉작 버전과 달리 감독의 연출 의도가 제대로 살아 있는 버전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화장> 역시 극장 개봉작 버전은 또 다시 편집을 거칠 가능성이 크고 이 과정에서 김호정과 김규리, 두 여배우의 음모 노출 장면이 편집될 수도 있다. <화장>의 배급을 맡은 리틀빅픽쳐스 관계자 역시 “극장 개봉을 위해서는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두 여배우의 노출 장면이 지금 버전과는 다르게 편집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어쩌면 임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영화 <화장>의 온전한 버전은 제 1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관람한 소수의 영화팬들만 관람할 수 있었던 지도 모른다. 이게 바로 영화제의 강점이기도 하다.
사실 요즘에는 극장 개봉 영화에 대한 심의 기준도 많이 완화됐으며 반드시 필요한 장면에서의 음모 노출 장면이 심의를 통과해 그대로 관객들과 만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영화 <화장> 역시 온전한 모습으로 극장에서 개봉될 가능성도 크다. 그렇지만 개봉 과정에서 괜히 두 여배우의 음모 노출 장면만 화제가 되진 않기를 바란다. 관객몰이를 위해 여배우의 노출 장면을 활용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목에서 매우 적절하게 쓰인 노출 장면이었던 터라 두 여배우의 노출은 투혼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노출의 정도로 평가하기엔 거장 임권택의 102번째 영화 <화장>은 너무 훌륭한 영화다.
부산 =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