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 명함’ 3개서 1개로…왜 나야?
금융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겸직 중인 계열사 대표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신 위원장은 금융회사의 관리감독과 관련해 2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서 서둘러 통과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2012년 금융위가 국회에 제출한 이 개정안은 금융사 상근임원 겸직 금지, 이사회의 사외이사 과반수 의무화, 사외이사 자격요건 강화, 최고경영자(CEO) 승계, 임원 선임, 이사회 운영 등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은 금융위 외에도 김기식, 김기준, 이종걸 의원 등이 잇달아 발의했는데, 이름만 조금 다를 뿐 4개 법률(개정)안 내용은 모두 대동소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금융권에서 금융지주사들 외에 유독 이 개정안 통과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CEO가 한 명 있다. 현대카드를 필두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현대라이프 등 현대차그룹의 금융부문을 이끌고 있는 정태영 사장이 그 주인공으로, 정 사장은 이 개정안 내용과 통과 여부에 따라 거취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처지다. 정 사장은 현재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3곳에선 대표이사를, 현대라이프에서는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현재 국내 대형 금융사 중 여러 회사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CEO는 정태영 사장이 유일한데, 이 때문에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인물도 은행장이나 금융지주사 회장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정 사장이 될 전망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태영 사장은 겸직하고 있는 세 곳의 대표이사 가운데 하나만 빼고 나머지 자리에서는 물러나야 한다. 물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위인데다 금융부문을 혼자 책임지고 있는 만큼 대표이사 직위를 유지하지 않더라도 경영권을 행사하는 방법은 많다. 하지만 현대차 금융부문의 상징 같은 존재이자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그를 대체할 마땅한 인물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개정안은 발의한 주체들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 여야 간 이견이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일단 절차만 시작되면 큰 어려움 없이 국회통과가 예상되고 있다. 정부당국과 야당이 일심동체로 발의한, 보기 드문 법률(개정안)인 셈이다.
정태영 사장으로서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 셈인데,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현대카드와, 캐피탈, 커머셜 간의 합병 등 합종연횡이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우선 현대차 금융부문의 핵심 계열사들이자 업종이 가장 유사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합병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합병을 통해 생겨난 가칭 ‘현대카드캐피탈’의 대표이사는 그가 맡고 상대적으로 소비자 노출 빈도가 낮은 현대커머셜은 새로운 CEO를 영입하면 정태영 사장이 가진 상징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정몽구 회장의 차녀이자 정 사장의 부인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이 사장으로 올라서 ‘부부 CEO’ 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안을 추진하기에는 물리적 제약이 크다는 의견도 많다. 우선 현대카드와 캐피탈이 합병하려면 주요 주주인 미국 GE캐피탈과의 협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GE캐피탈은 현대카드와 캐피탈 모두 43%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다. 게다가 개정안 통과 이전에 합병을 추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지주회사 설립이나 계열사 합병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때문에 최근에는 정 사장이 현대라이프를 지배하는 방식을 다른 회사에 적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라이프의 경우 정태영 사장은 상근임원직 대신 이사회 의장직을 맡아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 사장은 이사회를 통해 CEO 인사권 등을 가진 사실상의 경영자 역할을 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정 사장이 2곳의 CEO 자리에서도 물러난 뒤 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이들 회사를 지배하는 방식을 똑같이 쓸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해당 개정안은 금융지주사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취지인 것으로 안다”면서 “일정부분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개정안 내용 등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복 언론인
야심작 현대라이프 칼바람 부는 속사정 카드엔 선수여도 보험엔 선무당 “올해 연말에는 어마어마한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현대라이프에는 ‘칼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3일 최진환 현대라이프 대표이사 부사장이 사표를 던졌다. 최진환 대표는 현대캐피탈 전략본부장 출신으로, 정태영 사장의 오른팔로 꼽힐 만큼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인물. 그가 물러나면서 보험업계에서는 “정태영 사장이 보험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신생 회사가 흑자를 내려면 최소 5년의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는데, 1~2년 만에 이익을 기대하는 정 사장의 계획은 무리라는 것이다. 혁신을 무기로 카드업계를 평정해오다 보험이라는 뜻밖의 장벽을 만난 정태영 사장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