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눈 가리고 뒤뜰에 차곡차곡?
▲ 부동산 축적 과정서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영담 스님은 토지 매입 수년 후 석왕사로 매매예약 가등기 신청하는 등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영담 스님 모습과 충청남도 서천군 임야 등기부등본을 합성했다. 연합뉴스 | ||
승려는 사찰 재산으로 부동산을 매입해 개인명의로 등기할 수 없다. 이는 조계종 종법에도 나와있는 사실이다. 조계종 총무원에서도 부동산관리법과 관련, 부동산 거래 및 변동시 반드시 종단의 승인을 받게 하는 등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영담 스님은 어떻게 그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게 됐을까.
등기부등본 및 임야대장을 살펴보면 대한불교 조계종 석왕사를 창건한 고산 큰스님은 1975년 11월 5일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 산 29-12번지 1만9835㎡(약 6010평)를 홍 아무개 씨와 공동매입한 데 이어 1980년 3월 13일 산 29-8번지 1091㎡(약 330평)를 추가로 매입했다. 그리고 총 2만 926㎡(약 6340평)의 이 땅을 모두 1981년 9월 24일자로 대한불교 조계종 석왕사로 증여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석왕사 명의로 돼 있어야 마땅한 이 땅이 수차례 분할되는 과정을 거쳐 그 대부분이 석왕사 주지인 영담 스님 개인 소유로 돼 있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찰 자산인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 산 29-12와 산 29-8번지는 지난 1989년 4월 25일 총 면적 2만 926㎡ 중 826㎡(약 250평)가 분할, 매매돼 석왕사와 영담 스님의 공유지분으로 등기이전된 것을 시작으로 수차례에 걸쳐 석연찮은 분할과 합병과정을 거쳤다. 등기부 등본과 토지대장 확인 결과 원미동 산 29-12와 산 29-8번지는 결과적으로 총 24필지로 분할되어 있는데 이 중 무려 18필지(공동소유 2필지 포함)가 현 석왕사 주지이자 불교방송 이사장인 영담 스님의 소유로 등기이전되어 있는 것이다.
영담 스님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 정도의 규모다.
영담 스님은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에 앞서의 18필지를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 등기부 등본 확인 결과 충남 서천에도 총 5만 743㎡(약 1만 5370평)의 임야를 갖고 있고 경기도 부천시에도 15채의 건물과 4300여㎡(약 1300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담 스님이 이 부동산들을 자기 명의로 매입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도 후반부터다. 그런데 그는 무슨 목적에서인지 이들 부동산 대부분에 대해 매입한 지 수년 후에 매매예약 가등기를 해놓았다. 확인 결과 영담 스님이 소유한 부동산 18필지 중 석왕사로 매매예약 가등기를 해놓은 것만도 무려 14필지였다.
영담 스님이 이처럼 가등기를 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부동산 관계자들은 “매매예약 가등기를 해놨다 하더라도 부동산 실명법에 따라 문제의 부동산들은 등기부 등본에 올라있는 사람의 소유로 봐야 한다”며 이 같은 조치를 해놓은 부분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매매예약 가등기는 매도인이 이전등기를 미룰 경우나 이중으로 처분할 위험이 있는 등의 경우에 하는 것인데 이 경우는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아 재산소유 내역을 위장하려는 것으로 의혹까지 살 수 있다는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 부동산에 거액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이들 부동산에는 총 42억여 원의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는데 이 중 영담 스님이 채무자로 근저당 설정돼 있는 금액만 무려 21억 1500만여 원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석왕사가 증여받은 부동산 2만 926㎡ 중 순수하게 석왕사 소유로 남아 있는 곳은 잡종지로 구분된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 184-1OO와 산29-OO에 소재한 임야 두 필지뿐이고 그 면적은 4494㎡(약 1360평)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부동산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11억 원이 넘는 거액의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증여된 부천 원미구 대지 외 충남 서천의 임야는 무슨 이유로 석왕사에 증여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영담 스님 소유가 된 것일까. 석왕사 사찰 재산처분 내역서를 보면 석왕사는 증여된 원미동 산 29-12번지 임야 1만 1787㎡를 1994년 1월 처분전환 승인 신청을 해서 처분했고, 이때 받은 처분금 7억 1300만 원으로 충남 서천군 임야 3필지(총 5만 1570㎡)를 2억 300만 원을 주고 매입했고,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 71O-X, 72O-X번지의 땅 1만 7259㎡(약 5230평)를 5억 1000만 원을 주고 매입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종단의 재산처분 내역서에 따르면 매입시점이 완전히 다르다. 충남 서천군의 임야를 매입한 날짜는 1988년 7월 5일이고 서귀포 땅을 매입한 날짜는 1989년 7월 18일로 나와있는 것. 원미동 산 29-12번지의 처분 승인 신청이 이뤄진 날짜는 1994년 1월로 두 건의 부동산을 매입한 날보다 훨씬 늦다. 말하자면 팔았다는 시점보다 4년 6개월 정도 먼저 매입했다는 셈이 되므로 원미동 산 29-12번지를 처분해서 서천과 서귀포시의 땅을 매입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어쨌거나 증여받은 부동산을 팔아서 매입했다는 땅 중 하나인 서천군 임야도 영담 스님의 명의로 돼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땅을 매입하고 약 10년 후인 98년 11월에 석왕사로 매매예약 가등기를 해놓았다.
그뿐이 아니다. 서귀포 땅과 관련해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석왕사 사찰 재산처분 내역을 보면 서귀포 땅 1만 7259㎡(약 5230평)는 매입한 지 약 9년이 지난 1998년 4월 28일 1억 9848만여 원에 토지처분 승인을 받은 것으로 나와있다. 그런데 이 토지는 약 10년 전 5억 1000만여 원에 매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거래내역대로라면 10년 전에 5억 이상을 주고 산 땅을 2억 원도 안되는 가격에 판 셈이다. 10년간의 땅값 상승률을 따지지 않더라도 3억 원이 넘는 금액을 손해보고 처분한 것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영담 스님이 석왕사 주지가 아닌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이 부분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석왕사는 또 98년 4월 28일 총무원이 서귀포 땅에 대한 재산처분 승인을 내줄 때 제시한 조건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승인내역서를 보면 ‘처분한 금액 중 종단 재무부에 납부한 10%를 제외하고 남은 1억 7863만여 원은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 33-22, 33-23 토지 및 건물 매입비로 사용한다’는 조건이 명시돼 있으나 등기부등본 어디에도 처분한 돈으로 해당 토지를 매입한 사실은 없다.
그렇다면 석왕사로 증여된 부동산 중 상당한 부분이 영담 스님 앞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또 자신 소유로 되어 있는 부동산에 굳이 효력도 없는 매매예약 가등기를 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부동산을 담보로 빌린 거액은 어디에 쓰였을까. 기자는 석왕사 부동산 변동내역에 대한 영담 스님의 해명을 듣기 위해 석왕사와 불교방송 측에 수차례 접촉했지만 끝내 그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등기부등본에 나타난 이러한 석왕사 재산변동 내역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사찰 재산을 사적인 이유로 승려 개인 명의로 해놓은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며 “그럴 소지가 있는 건에 대해서는 자체 조사가 들어가는 등 총무원에서는 이를 엄격히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여된 사찰 소유 부동산은 원칙적으로 ‘대한불교조계종 OO사’로 등기해야 하고 개인적인 이유로 종단 승인 없이 승려 개인 명의로 등기할 수 없다. 심지어 교육 포교 문화 복지 등 사회활동 사업을 위해 매각 증여 신축 담보제공 등이 이뤄질 경우에도 사찰 주지는 총무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총무원 측의 설명이었다.
과연 영담 스님은 종단의 정식 승인 없이 ‘삼보정재’를 본인의 사유재산인 양 처리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유가 있었던 것일까. 영담 스님의 수상한 부동산 축적 과정을 둘러싼 진실은 부동산 등기부등본과 토지대장 등을 토대로 한 총무원 측의 철저한 조사에 의해 1차적으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