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들불 잠재워 청와대 ‘방패막이’ 합격
▲ 정부 출범 초기 미국산 쇠고기로 시작된 촛불정국에 휩싸여 곤욕을 치른 이명박 대통령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어청수 경찰청장과 임채진 검찰총장이 신속히 사태를 해결하자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두 권력기관의 수장은 그 특성상 어느 자리보다도 정권과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런 이유로 정권 말에 단행된 두 권력기관장 인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다. 노무현 정권 거의 끝 무렵 인사가 이뤄진 임채진 검찰총장과 관련해서 신·구 정권이 날선 신경전을 벌인 것도 같은 이유다.
새 정권 출범이 임박했던 지난 2월 말까지만해도 구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은 새 정권 출범 후 곧 교체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취임 5개월이 지난 지금, 이들은 일각에서 돌았던 교체론을 불식시키며 모두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자리는 그동안 한결같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지난 5월 촛불집회가 시작되며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유임과 교체설이 시시각각으로 교차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촛불정국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지금, 숨 가쁘게 2개월을 달려온 권력기관장들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을 바라보는 내외부의 평가는 공교롭게도 이들의 촛불집회 대응방식과 그 궤를 같이한다.
청와대나 여당에서는 정부출범 초기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켰던 촛불집회의 위력을 얼마만큼 빨리 잠재우냐에 따라 정권의 연착륙 여부가 달려있었다고 봤다. 하지만 정부의 초기대응 실패로 인해 촛불집회의 세는 점점 불어갔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여론이 악화되어 갔다.
정국이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자 자연스럽게 권력기관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경찰은 강경진압이란 비판을 들어가며 최일선에서 ‘촛불정국’을 잠재웠고, 검찰은 배후세력 찾기에 나섰다.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박자 맞추기’라며 이들 기관의 움직임을 비판하면서 한때 주춤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변함이 없었다. 실제로 이들 기관의 힘 때문이었을까. 촛불집회는 6월 중순 이후 그 위력을 잃어갔다.
촛불정국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현 시점에서 정권의 가장 큰 신임을 유지하는 인사는 어청수 경찰청장이란 것이 내외부의 공통된 평가다. 어청수 청장은 이번 촛불정국을 마무리하는데 일등공신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물론 어 청장은 참여정부와 현 정권의 협의를 통해 임명되기는 했다. 그 때문인지 그는 이번 촛불정국에서 모든 비난을 한몸에 받으며 일선에서 고군분투했다는 평이다. 촛불집회를 담당했던 한 경찰은 “지난 2개월간 밤낮이 뒤바뀌었다”고 말할 정도로 촛불집회에 대응하는 경찰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강경진압이란 비판도 적지 않았으나 시위 진압방식에 비판의 칼날이 향하면서 오히려 촛불집회의 원인이었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관심은 줄어드는 모양새였다는 진단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경찰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질수록 청와대에 대한 비난여론은 점점 줄어든 셈이라는 이야기다.
강경 진압과 관련한 어 청장에 대한 비판 여론은 결국 한진희 서울경찰청장의 사퇴로 마무리됐다. 서울청 소속의 한 관계자는 “한진희 서울청장의 사퇴를 두고 결국 현 청장에 대한 정권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운가를 확인해주는 것 아니겠냐”고 귀띔했다. 본청 소속의 다른 관계자는 “정권이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시작하자 앞장서서 그 매를 대신 맞은 만큼 현 청장의 위치는 더욱 확고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 어청수 경찰청장(왼쪽)과 임채진 검찰총장. | ||
조계종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불교에 대한 정권의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며 “결국 지관스님도 반체제인사로 보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불교계는 어청수 청장의 파면을 이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있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산문폐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산문폐쇄란 모든 사찰의 문을 닫겠다는 항의의 표시다. 불교계 입장에서는 최고 수준의 항의인 셈이다.
어청수 청장과 달리 임채진 검찰총장의 경우는 시간이 갈수록 신임이 단단해지는 듯한 모양새다. 임 총장의 경우 정권 교체 직후 교체설이 돌며 조기 퇴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다. 참여정부 말기 임명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던 만큼 촛불정국이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 5월 중순까지 교체론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임 총장은 취임 직후 곧바로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 떡값 리스트에도 올라 그 위치가 불안정했다. 몇몇 검찰 관계자들은 ‘총장 교체론은 총장을 흔들기 위한 외부의 루머’라며 방어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촛불집회와 공기업 수사는 검찰총장의 숨통을 터줬다. 임 총장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라는 시선이 무색하게 강도 높은 공기업 비리 수사를 해나갔다. 적이 없다는 내부의 평가를 들을 정도로 포용력이 강한 임 총장이 새 정부의 주요 공약인 공기업 개혁과 발을 맞춰 강공모드로 나간 것. 전 정권 실세들의 이름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오르내렸다. 얼마 후 청와대도 “검찰총장에 대한 교체는 현재로서는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며 임 총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촛불정국에서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 MBC PD수첩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정국 안정에 한몫 거들었다. 동시에 현 정부에서 공들이고 있는 KBS 사장 교체 작업에도 수사력을 모았다. 지난 달 중순 한 검찰 관계자는 “현재 조직이 KBS와 MBC 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다른 사건에 집중할 여력이 없다”고 기자에게 토로할 정도로 정권과 손발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로서는 임 총장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임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다. 물론 여기에도 변수가 있다. 수사가 적정선에서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진 전 정권 실세들의 사정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국회 원외 구성이 끝나고 동시에 올림픽이 끝나는 9월쯤에 본격적인 사정이 시작될 것”이라며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진 공기업 관련 비리들은 현재는 보류상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거론됐던 몇 개 공기업 이외에도 전 정권 실세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민간기업인 K, N 등과 관련해서도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 사정작업의 결과에 따라 총장의 ‘롱런’ 여부가 달려있는 셈이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모두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돼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임자들의 예에서 보듯 그 임기는 권력의 뜻에 따라 얼마든지 보장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두 권력기관 수장들의 경우도 예단하기가 쉽지는 않다. 현 시점에서 결과적으로 보면 지난 2개월간 이어진 촛불정국은 두 권력기관장들의 재신임을 묻는 하나의 시험무대였으며 일단은 현정권에 의해 합격점을 받은 것 같아 보인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