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줄기세포’ 해외로 이식하나
▲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수암생명공학연구소 전경. 아래는 황우석 박사 연구팀이 실험에 성공한 복제개. | ||
그러나 줄기세포에 대한 세계적인 연구흐름이 역분화방식으로 완전히 옮아가면서 일반 여론과는 달리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무용론까지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황 박사가 이끄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이하 수암연구원)은 그동안 무슨 일을 해왔을까. 그들이 “획기적인 연구결과”라고 자신하는 질환모델에 관한 연구는 과연 성과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황 박사가 해외연구진과 손을 잡을 것이라는 소문의 진상은 무엇일까. <일요신문>은 ‘승인 불허’를 둘러싼 논란의 전말을 살펴보고 수암연구원 측의 연구활동과 성과를 집중 추적해봤다.
여론은 황우석 박사의 편이었다. 한 방송사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황 박사의 연구 재개’에 대해 80% 이상이 찬성표를 던진 것. 하지만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생명윤리심의위원회(위원장 노재경)의 결정은 이와는 반대였다.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던 황우석 박사가 이끄는 수암연구원의 활동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하지만 수암연구원 측은 “황 박사의 연구 열정은 식지 않았다”고 전한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승인 취소가 결정되었을 때도 황 박사는 연구원들에게 “계속 열심히 하자”고 독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에서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황 박사와 수암연구원 측이 식지 않는 열정을 보이는 데에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수암연구원에서 자문 역할을 맡고 있는 현상환 충북대 교수는 “황 박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며 “근래에 4개국 5개 팀에서 공동 연구 제안을 받은 상태다”라고 설명했다.
해외 여러 연구소에서 연구 제의를 해온 상태기 때문에 황 박사의 연구는 보건복지가족부의 승인 불허와는 상관없이 계속된다는 얘기다. 또 현 교수는 “이러한 해외 연구소의 공동연구 제안은 그동안 황 박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연구결과를 계속해서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황 박사는 ‘논문조작 사건’ 이후 몇 가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맹인 안내견 ‘골든 리트리버’ 애완견 ‘미씨’ 사자견 ‘티벳 마스티프’ 등의 복제개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 특히 그는 세계 최초의 애완견 상업 복제인 ‘미씨 프로젝트’로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의 주목을 다시 한 번 받기도 했다.
수암연구원 측은 곧 또 하나의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바로 질환모델에 관한 연구다. 질환모델이란 특정 질병에 걸린 동물을 일컫는 말이다. 수암연구원 측은 “그동안 쥐 등의 설치류 질환모델에 관한 연구 결과는 많았으나 고등동물인 개 질환모델은 처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러한 질환모델 개의 경제적 가치는 수백조 원에 달한다”며 “암이나 당뇨, 치매 등의 치료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암연구원 측은 “아직 논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또 하나의 세계 최초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황 박사의 연구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황 박사와 수암연구원 측은 정부로부터 연구비 보조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수암연구원에는 현재 35명의 연구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고가의 연구 장비도 동원되고 있다. 수암연구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지인들과 황 박사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연구비를 충당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백억 원이 필요한 복제 연구를 외부의 도움만으로 계속할 수는 없는 일. 수암연구원 측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현 교수는 “연구비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5월에 ‘에이치바이온’이라는 상업법인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비록 국내에서의 연구 승인은 취소됐지만 황 박사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돼있다고 할 수 있다. 해외 연구소와의 공동 프로젝트가 검토되고 있고 연구에 필요한 자금도 마련될 가능성이 있는 데다 무엇보다 연구원들과 그들의 열정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박사의 의지와는 별개로 그의 연구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많다. 이는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연구 계획 승인을 불허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한 국내 줄기세포 권위자는 “황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은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문제였던 만큼 그가 국내는 물론 국외의 학계에서 다시 인정받기는 매우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황 박사가 ‘논문 조작’ 사건으로 자격이 없다는 이유 말고도 그의 연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최근의 줄기세포 연구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한 줄기세포 권위자는 “줄기세포 연구는 크게 성체줄기세포, 배아줄기세포, 그리고 역분화방식(IPS:유도된 다능성 줄기세포)으로 나눌 수 있는데 최근에는 역분화방식이 세계적인 추세다”라고 주장했다. 역분화방식에 의한 줄기세포 연구는 난자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세포를 이용한다. 인간체세포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많은 수의 난자를 이용하는 것에 비하면 윤리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셈이다. 또 역분화방식은 핵이식 과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면역거부반응 문제도 획기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연구방식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줄기세포 권위자는 이에 대해 “줄기세포 연구를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인간체세포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대전까지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역분화방식은 이미 대전에서 출발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그동안의 연구방식이 갖는 문제점을 극복한 새로운 연구 방식이 등장했는데 이전의 연구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자동차가 나왔는데 달구지를 끌고 다닐 수는 없지 않냐”고 황 박사의 연구방식을 비판했다.
제주대학교 박세필 교수 역시 인간체세포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역분화방식으로 옮긴 케이스. 현재 역분화방식으로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박 교수는 미국과 일본보다 효율이 높은 연구 성과를 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황 박사의 연구에 대해서 “역분화방식이 각광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체세포배아복제 연구가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줄기세포 연구에서 모든 연구 방식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황 박사의 연구 승인 불허가 국내 줄기세포 연구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박 교수는 “최근에 다시 세인의 관심을 얻고 있는 줄기세포 연구가 황 박사의 연구 승인 불허로 침체에 빠질까 우려된다”며 “일본의 경우 한 연구소의 한 프로젝트에 대한 연구비가 수백 억 원에 달하지만 국내는 전체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이 수백 억 원 정도인 게 현실”이라며 정부의 각별한 지원을 강조했다.
이에 반해 다른 줄기세포 권위자는 “황 박사 사건으로 인해 해외 학술잡지에 국내 연구 논문이 특별한 이유 없이 실리지 않았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회복했다”며 “황 박사의 연구 승인 취소는 국내 줄기세포 연구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