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주들 ‘너 죽고 나 죽자’ ‘히든카드’ 쾅
▲ 경찰의 고강도 단속으로 영업을 중지한 장안동 안마시술소들의 모습. 왼쪽은 단속에 항의해 자살한 업주의 가게.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장안동 안마시술소 업주들은 일부 언론을 통해 “이 리스트는 최후의 무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리스트에 포함된 명단 중에는 경찰청 고위직 인사도 적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한 업주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년 전 장안동 성매매 업소들이 생긴 이후 뇌물을 받은 경찰 숫자는 엄청나며, 당시 신참이었던 경찰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은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 등에서 고위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요신문>이 취재한 결과 이들의 리스트는 크게 두 가지라는 이야기다. 첫 번째 리스트는 장안동 70여 개의 성매매업소 업주들이 직접 접대한 경찰관 명단이다. 장안동 업주들이 각자 보관하고 있는 것들을 종합한 이 리스트 속에는 700여 명에 이르는 경찰관 이름이 적혀 있다는 주장이다.
장안동에서 불법성인오락실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주에 따르면 “성인오락실 등 장안동 일대에 불법으로 이뤄지고 있는 모든 업소들이 그간 경찰에게 정기적으로 상납을 해왔고 이 목록 역시 현재 장안동 업주들이 주장하고 있는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불법 성인오락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엄 아무개 씨(30)는 “뒷돈을 받으려고 정기적으로 오락실을 찾아왔던 경찰은 한두 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업주들이 단속을 앞세워 찾아오는 경찰들에게 ‘게임이나 하면서 놀다가라’며 칩을 건네주면 경찰은 잠시 가게에 머물다가 바로 현금으로 바꿔 돌아갔는데 오락실 상납은 이런 식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한 번에 적게는 3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까지 경찰에게 줬다는 것.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안마시술소는 아니어도 장안동 일대에 불법·편법 영업을 하는 상인들에게 기생하던 경찰이 적지 않았던 셈이다.
또 다른 리스트는 지난 10년간 장안동에서 주먹세계에 몸담으며 일명 ‘넘버3’로 불리는 A 씨가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A 씨는 얼마 전 폭행 치상 혐의로 1년 가까이 형무소에서 복역하고 출소한 인물로 전해진다. 이 리스트야말로 업주들이 말하는 ‘핵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안동에서 몇 년째 가게들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이 아무개 씨는 “A 형님이 지난 몇 년간 성상납에서 뇌물까지 줬던 인물들을 정리해 놓은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며 “A 형님도 상권이 망가지자 리스트의 폭로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안동의 한 성매매업소 업주에 따르면 업주들의 직접 관리대상 외에는 모두 A 씨가 도맡아 상납을 해왔다고 말해 이 씨의 말을 뒷받침해줬다.
A 씨가 무려 10년 동안 관리해 왔다는 이 리스트에는 경찰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씨는 “동대문구청 단속반 직원에서부터 언론사 기자 등등 그간의 성상납 내역은 물론 그동안 자신이 뇌물을 준 모든 관련자들의 이름이 이 명단 속에 적혀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 리스트에 올라있는 사람은 약 200명. 장안동 업주들이 갖고 있는 명단과 합치면 900여 명의 사람들이 뇌물 및 상납 리스트에 관련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씨는 이 리스트의 공개를 거부했다. 그는 “리스트가 공개되면 자신이 죽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이 다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리스트는 분명 존재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장안동 업주들의 ‘최후의 보루’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중구 동대문경찰서장은 상납리스트 폭로에 대해 “단속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 7월 말부터 나왔던 이야기”라고 말하고 “공개하려면 빨리 공개하지 왜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다”며 단속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한 언론과의 회견에서 “뇌물을 줘서 비양심적인 경찰을 양산하는 사람들과 뇌물을 요구하는 경찰 모두 처벌받아 마땅하다”면서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잘못된 상납관행을 없애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900여 명에 달하는 ‘장안동 리스트’는 존재하는 것일까. 현재 장안동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경찰보다 장안동을 거쳐간 인사들이 더 떨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장안동 리스트’는 진위에 상관없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