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준 주먹 피해 10년간 해외로 전전”
▲ J 회장이 올 초 전직 골프강사 C 씨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고소를 취하한 공소 기각 판결문(왼쪽)과 C 씨가 인터넷 언론 사이트에 올린 글. | ||
당시 평범한 한 재미교포의 탄원이 주목을 끈 이유는 대통령의 친인척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C 씨의 탄원서에 적힌 ‘폭력배’가 2000년 10월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놨던 동방상호신용금고 불법대출 사건과 관련돼 해외로 도피한 오기준 전 신양팩토링 사장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당시 C 씨에 대한 폭행사건은 비록 동방금고 사건보다 훨씬 이전(98년 10월)에 일어난 사건이었지만 이 같은 연관성 때문에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C 씨가 대부분의 시간을 해외에서 체류해왔던 탓에 지금까지 자세한 내막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며 사건 속의 ‘대통령 친인척’은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이들 간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달 전 귀국한 C 씨를 만나 이 모든 궁금증을 들어봤다.
우선 C 씨의 주장을 들어보자. 오기준 씨와의 악연은 9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80년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C 씨는 지인을 통해 오 씨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오 씨로부터 “‘대통령 처남’인 차창식 씨에게 골프를 가르쳐주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차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별한 부인 차용애 여사의 동생으로 홍일·홍업 형제의 외삼촌이다. C 씨는 하와이에서 차 씨와 그의 여자친구에게 골프를 가르쳐줬다고 한다. 사건은 그들이 귀국한 뒤에 터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얼마 후 C 씨가 차 씨에게 안부나 물을 겸 전화를 했는데 그의 여자친구가 전화를 받아서 ‘그런 사람 없다’며 쌀쌀맞게 대하더라는 것. 이 일로 C 씨와 차 씨의 여자친구는 서로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다퉜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후 오 씨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C 씨는 서울 강남의 한 빌딩에 있는 오 씨의 사무실에서 다짜고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차 씨의 여자친구에게 ‘감히’ 대든 죄로 차 씨와 친분이 두터운 오 씨가 알아서 ‘충성’을 한 것이었다는 게 C 씨의 얘기다. C 씨는 이날 꿇어앉은 자세에서 척추 부분을 마구 짓밟히는 바람에 큰 고생을 했고 현재도 몸이 정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신변위협을 느낀 C 씨는 이날 저녁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호주로 긴급도피했다고 한다. 그러나 C 씨는 억울하고 분해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주변인들에게 이날 있었던 감금폭행 사건을 알렸다. 그러자 문제는 더 악화됐다고 한다. 그 후부터 신원을 알 수 없는 폭력배들의 협박이 이어졌고 살해위협까지 받았다는 것.
C 씨는 “결국 신변의 불안을 느낀 99년 6월 한국으로 다시 입국, 청와대 공보관 김 아무개 씨를 통해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다 한나라당 민원실 관계자를 통해 아미가 호텔에서 차 씨를 만나 사과와 보상을 약속받았다. 그 자리에서 차 씨는 감금폭행건에 대해 인정하면서 ‘오 씨가 치료도 해주고 집도 얻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는 한나라당 민원실 직원과 차 씨의 친구 두 명이 같이 있었는데 차 씨의 친구 중 한 명이 ‘일단 급한 대로 쓰라’며 200만 원을 건네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얼마 후 C 씨는 사직동팀(경찰청 조사과로 해체되기 전까지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의 사정업무를 맡고 있던 부서)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수사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C 씨는 차 씨가 부탁한 대로 “사과도 받았고 치료도 약속받았다”라고 진술, 일을 무마시키고 돌아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 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C 씨는 결국 99년 12월 하와이로 도피해야 했다고 한다.
C 씨는 “하와이로 도피한 후 나는 억울한 심정에 그간 그들과 함께 골프를 치며 들은 얘기들 및 그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들을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렸다. 오 씨와 그 일당들이 이런저런 범죄에 관여했다는 사실과 신공항 근처에 벌이려 했던 사업 등을 공개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사업 얘기’를 직접 들었고 그들이 관련자들과 골프를 같이 치는 것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같은 C 씨의 반격은 통하지 않았다. 오 씨 등의 괴롭힘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C 씨는 “오 씨의 측근 A 씨와 B 씨 등으로부터 깨진 맥주병으로 머리와 목 부분을 가격당해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며 그 증거라며 머리에 있는 큰 흉터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 수시로 “입 다물고 조용히 살라” “네 비즈니스와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협박을 했다고 한다.
오 씨 부하들에게 당한 C 씨는 결국 또 한 건의 ‘폭로’를 결심한다. 바로 중견기업의 J 회장과 오 씨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었다.
C 씨는 2005년 4월 ‘폭력조직 보호하는 수사기관’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J 회장과 오 씨의 관계에 대해 폭로했다. C 씨는 이 글에서 ‘감금폭행 사건으로 기소된 오 씨와 J 회장을 증거와 증인이 있는 데도 수사기관이 금품을 받고 무혐의로 풀어줬다’고 주장했다. J 회장이 폭력배인 오 씨와 친밀한 관계이며 불법적인 일에도 개입해왔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C 씨가 주장하는 이 엄청난 내용들은 모두 사실일까. 당사자들은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오 씨는 2000년 11월 한 언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C 씨의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는 음해”라고 반박한 바 있다. 또 차창식 씨와의 친분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광주 S 중학교 재학시 목포에서 중학교를 다닌 차 씨를 친구 소개로 알게 됐다. 1997년 대선 직후 1년 동안 강남의 내 사무실에서 가끔 만나 술을 마셨다. 당시 차 씨는 ‘위에서 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며 은밀히 찾아왔다. 또 98년 초와 98년 9월께 미국 LA와 하와이에서 각각 두 차례 만나 골프를 쳤다. 그런데 당시 골프강사가 차 씨를 찾아와 면담을 요청하다 거절당하자 온갖 음해성 소문을 퍼뜨려 그 후로는 차 씨를 만나지 않았다”고 답변한 바 있다.
J 회장도 마찬가지다. 2006년 J 회장은 C 씨가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며 C 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이 고소건은 올 초에 취하됐다. J 회장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를 원치 않는다며 C 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는 것.
하지만 C 씨는 귀국한 이후에도 ‘대통령 친인척 폭행 사건 후 10년’이라는 글을 게재하며 자신의 사연을 계속 알리고 있다. 과연 어느 쪽의 주장이 사실일까. 분명한 것은 C 씨에 대한 오 씨의 폭행이 있었다는 점과 그로 인해 양측의 갈등이 끊임없이 빚어졌다는 사실이다. C 씨가 공세를 멈추지 않는 지금 차 씨와 오 씨, J 회장이 언제까지 지켜만 볼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