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때마다 도둑 들어…알고보니 헉!
주민들의 불안감이 점점 커지던 어느 날 A 아파트 관리소장은 한 입주민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는 김 아무개 씨(48)가 정전된 집에 수리를 왔다 어두운 틈을 타 금품을 주머니에 넣는 것을 봤다는 내용이었다.
김 씨가 A 아파트 관리소에 채용된 것은 지난 9월 3일. 아파트 정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9월 4일과 김 씨가 출근하기 시작한 날도 절묘하게 겹쳤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파트 관리소장은 김 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절도혐의를 부인하던 김 씨는 경찰의 계속되는 추궁에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에서 밝혀진 김 씨의 범행수법은 같이 일하던 동료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김 씨는 아파트를 순찰하는 척하며 복도에 있는 배선기를 내리는 수법을 썼다. 김 씨는 배선기를 내린 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관리사무실로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
김 씨가 작업을 끝낸 후 자리에 돌아와 앉아 있으면 정전이 된 세대에서 민원전화가 들어왔다. 김 씨는 전화를 받으면 곧바로 공구함을 챙겨 신속하게 출동했다. 출근하자마자 잦은 정전으로 작업이 늘어난 김 씨를 지켜보던 아파트 관리소 직원들은 김 씨가 안됐다고만 생각했다. 김 씨가 아파트 단지를 불안에 떨게 한 연쇄 절도범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리를 하러 왔다며 정전된 집으로 들어간 김 씨는 입주자들에게 이상한 요구를 했다. 헤어드라이기로 화장실에 있는 콘센트를 10분 이상 말리라고 하거나 누전차단기 쪽으로 유도하고서는 차단기를 올리고 내리는 동작을 반복하도록 요구했다. 입주자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김 씨는 입주자들이 자신에게서 관심이 멀어진 사이 금품을 훔치는 수법을 썼다.
서초경찰서 형사팀 관계자는 “관리사무소 직원을 사칭하는 절도범들은 있었지만 관리사무소 직원이 입주민의 집에서 절도행각을 벌인 것은 이례적”이라며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액은 700여만 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김 씨가 일주일간 8차례에 걸쳐 훔친 금액이다”고 말했다.
A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씨는 본사에서 추천해준 사람이라 아무도 의심을 하지 못했다. 주민들도 많이 놀랐지만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괜한 오해를 받을까 도리어 격려해 주는 주민도 있다”며 “김 씨도 많이 미안해하고 있다고 들었다. 당혹스럽긴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서초서 관계자는 “김 씨는 전기관련 자격증도 있어 동종 업계에 일하는 사람들에 비해 처우가 나쁘지는 않았다. 자신도 그 순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후회한다고 했다”며 “김 씨가 A 아파트에 근무하기 전 다른 아파트에서도 전기기사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에 여죄부분은 추가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