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 아닌 내꺼 같은’ 현대차 콧노래
김동진 IA 대표(왼쪽)는 현대차 출신으로서 한때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현재 산업은행 등 동부하이텍 매각 주관사들은 매각 본입찰에 단독 참여한 ‘IA컨소시엄’의 자금 조달 능력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부하이텍 매각 문제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차이나머니(중국 자본) 유입설 등이 돌고 있어 매각 주관사 쪽에서 자금 능력을 철저히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것만 해결되면 IA컨소시엄의 인수가 결정될 듯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동부그룹이 매각하는 동부하이텍 지분은 경영권을 포함해 37%다. 현재 시장에서 평가하는 동부하이텍 지분 37%의 매각 가격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1500억 원 수준이다. 그러나 경쟁력이 높으면 모를까, IA컨소시엄 단독 참여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각 가격이 이보다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많아야 1500억 원이라면 동부하이텍의 현재 시가총액인 2400억~2500억 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재계 관계자는 “부채 규모가 8000억 원에 달해 이를 안고 사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비록 액면가는 1500억 원 수준이지만 실제 인수가는 1조 원에 육박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동부하이텍에 관심을 보였던 기업들이 대부분 인수를 포기한 이유도 부채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은행 등 매각 주관사들이 IA컨소시엄의 자금 조달 능력을 들여다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매각 가격이 더 높으면 좋겠지만 일단 차입금과 부채가 빠져나가는 것이기에 1500억 원에 매각되더라도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털어놨다.
재계 일부에서는 본입찰에 단독 참여한 IA보다 현대차에 더 눈길을 주고 있다. 동부하이텍 인수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현대차가 그동안 계속 인수전 참여를 부인해왔지만 사실상 IA를 통해 동부하이텍 인수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결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IA의 김동진 대표가 현대차 대표이사 부회장·현대모비스 대표 출신으로서 한때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또 IA는 차량용 전장제어장치(전장)·시스템 등을 개발·제조하는 회사로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IA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자회사 (주)오토소프트는 현대모비스 사내협력사로 사업을 개시했으며 현재 현대모비스의 핵심 협력업체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점들 때문에 동부하이텍 인수전에 현대차가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김동진 대표가 현대차 출신이라는 점이 오해와 억측을 낳고 있는 것 같다”면서 “우리는 동부하이텍 인수와 아무런 관련 없다”고 부인했다. IA 관계자 역시 “현대차에서 우회적으로 돕고 있다거나 현대차가 동부하이텍 인수전에 간여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동부하이텍 전경. 임준선 기자
그러나 IA와 현대차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정황이 또 있다. 지난해 3월 25일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오트론이 IA의 전신인 씨앤에스테크놀러지가 발행한 150억 원 규모 전환사채(CB)를 인수한 것. 발행 당시 기준으로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480만 7692주, 전체 지분의 15.40%가 된다. 씨앤에스테크놀러지는 CB 발행에 맞춰 회사명을 지금의 IA로 변경했다. 현대오트론의 주주는 현대차(지분율 60%)·기아차(20%)·현대모비스(20%), 3사다.
지난 8월 27일 공시한 IA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IA의 최대주주는 428만 2540주(14.14%)를 보유하고 있는 김동진 대표다. 그러나 지난해 CB를 인수한 현대오트론이 이를 주식으로 전부 전환하면 김 대표를 제치고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현대오트론은 채권단에서 최대주주로 신분이 바뀌며 이자 대신 배당을 챙기게 된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보통 운영자금을 조달할 때 증자와 CB 발행 두 가지 중 상황에 따라 회사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며 “다만 증자는 한 사람이나 한 기업이 한꺼번에 큰 비율로 들어올 수 없는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IA 관계자는 “현대오트론이 CB를 전량 주식 전환하면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게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아직 주식으로 전환한 것도 아니고, 전량 전환할지 일부만 할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IA의 반기보고서상 현대오트론이 주주명부에 올라와 있지 않은 까닭은 CB를 아직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은 탓이다. 현대오트론이 인수한 IA의 CB 전환가액은 3120원이며 전환 청구 기간은 2014년 3월 25일~2016년 2월 25일이다. 현재 전환 청구 기간에 해당한다. IA 주가는 3800원에 달한다.
현대오트론은 2012년 4월 16일 현대차그룹이 전자제어장치(전장)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출범한 업체다. 해외업체에 의존해왔던 차량용 반도체와 전자제어장치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겠다며 야심차게 출범시켰다. 이와 관련한 연구개발 인력을 대대적으로 모집하면서 전장사업에 큰 뜻을 피력했다. 그러나 현대오트론은 연구개발업 위주의 팹리스(fabless, 반도체 설계와 판매 전문으로 반도체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은 업체, 일명 무설비업체)다. 현대차의 계획대로 전장사업을 강화하려면 설비업체가 꼭 필요하다. 현대차가 동부하이텍 인수의 유력 후보로 거론된 이유다.
현대차는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 인수 등에 집중한다면서 동부하이텍 인수전 참여를 부인했다. 그렇지만 지난해 IA의 CB 인수와 IA의 동부하이텍 인수전 참여가 맞물리면서 현대차의 동부하이텍 인수로 해석하는 재계 관계자가 적지 않다. 재계 고위 인사는 “그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향후 현대오트론이 IA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지배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만약 IA의 동부하이텍 인수가 최종 결정되고 마무리되면 현대오트론, 즉 현대차가 동부하이텍을 인수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