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포항 이○박인데’ 이름만 대도 통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막기 위해 민정실 민정 1비서관 산하에 대통령 친인척 전담팀을 만들어 이른바 ‘로열패밀리’를 관리해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김옥희 씨 공천비리에 호되게 당했던 청와대에 최근 한 50대 남자가 대통령의 친인척을 사칭하고 다닌다는 첩보가 입수돼 민정실이 또 한 번 들썩였다고 한다.
몇 주 전 청와대에 한 첩보가 들어왔다. 포항에 사는 성이 ‘이’ 씨이고 이름 끝 자가 ‘박’인 50대 남성 A 씨가 대통령의 친인척임을 사칭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포항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이자 형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밝지 못한 시골에서는 ‘포항에 사는 이○박’이란 프로필은 현직 대통령과 연관시켜 생각할 만했다.
민정실의 조사결과 A 씨가 처음부터 대통령을 사칭하고 다닌 것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어떻게 보면 주변 사람들이 A 씨를 친인척으로 만든 셈이었다. A 씨는 한번도 ‘내가 대통령과 친척 관계에 있는 아무개다’라고 내세우고 다닌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은 ‘이○박’이라고 밝혔을 뿐인데 상대방이 알아서 자신의 나이나 거주지(포항) 등을 연관지어 이명박 대통령의 친척으로 생각했다는 것.
이런 일들이 한두 번 이어지자 A 씨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어떤 때는 자신이 진짜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평소에 한 번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관공서 직원이 친절하게 인사를 해오면 ‘이 사람이 나를 대통령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구나’라고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했다.
A 씨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해서 사기를 치거나 이득을 본 것은 없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방의 눈길을 통해 일종의 만족감을 느꼈다고 조사 과정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결국 인근 파출소에 관련 정보가 입수됐고 이는 청와대 민정실까지 보고됐다.
민정실에서 구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A 씨는 실제 이명박 대통령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A 씨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민정실의 한 관계자는 “보통 한 사람이 서너 번 정도 이런 일을 겪게 되면 실제 자신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가 된 것처럼 행동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런 일들이 친인척 사칭 사건으로 확대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재 청와대 내에서 대통령 친인척, 이른바 ‘로열 패밀리’를 전담하는 직원은 민정 1비서관 밑에 10명 정도가 있다. 모두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 출신들이다. 전담팀에서는 대통령 친족의 8촌, 처ㆍ외족의 6촌에 사돈과 종친회까지 관리하고 있으며 이들이 맡고 있는 친인척은 총 1200명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0여 명이 1200명을 모두 관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핵심 친인척들은 가급적 직접 관리하고 먼 친척들은 일선 경찰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900명 정도가 관리대상 친인척이었다. 특히 이 대통령 친인척 중에는 거물급(?) 인사들이 많다. 청와대 관계자는 “친인척에 대해선 대통령도 수시로 체크할 만큼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청와대는 친인척뿐 아니라 청와대 직원 사칭 범죄에 대해서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청와대에서 일하고 있는 한 행정관은 명함에 청와대가 적혀 있다보니 명함을 받은 사람들이 이 명함을 가지고 “나 청와대에 누구누구랑 친하다”라고 말하고 다녀서 곤란했다는 경험을 털어놨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웬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면 “명함이 다 떨어졌다”며 메모지에 이름하고 전화번호를 적어 준다고 말했다.
민정실의 한 관계자는 “친인척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어 현 정권에서 관련 비리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문제는 친인척 사칭 범죄다”라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