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잡힌 미스터 리 껍질 벗나
▲ 이주성 전 국세청장이 지난 1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및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그레이스 백화점 김흥주 회장 정관계 로비의혹, 신성해운 세무조사 무마 의혹, 프라임그룹 정관계 로비의혹. 굵직하지만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세 사건은 모두 수사 과정에서 이 전 청장의 이름이 오르내렸었다.
앞서의 두 사건은 검찰이 각각 공소시효 만료와 증거불충분으로 수사를 종결했고 이 전 청장도 의혹을 벗었다. 하지만 프라임그룹 정·관계 로비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 전 청장의 뇌물수수 정황을 포착하는 의외의 결과를 얻어냈다. 이주성 전 청장은 현재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도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또한 검찰은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더 큰 혐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주성 전 국세청장과 관련된 지난 몇 년간의 논란을 되짚어봤다.
행정고시 출신인 이주성 전 청장은 2005년 3월 이용섭 청장에 이어 국세청장 자리에 올랐다. 이 전 청장은 부산 동아대를 나왔고 행시 합격 이후 25년이 넘게 국세청에서 일해 오며 본청 감찰, 기획 관리관, 부산 지방 국세청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쳐 청장에 올랐다.
이 전 청장은 그러나 실적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취임 1년 3개월 만에 돌연 자진 사임했다. 때문에 당시 그의 사퇴를 둘러싸고 청와대 압력설, 부동산 투기설 등이 제기되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당시 이 전 청장에 대해 일부 언론은 청와대 핵심 인사를 만나고 돌아온 직후 사임을 결심했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청장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났다. 이 전 청장의 퇴임식에 많은 직원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이주성 전 청장의 수난은 사임 이후부터 시작됐다. 먼저 지난 2007년 초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김흥주(전 그레이스 백화점 회장) 게이트’의 불똥이 이 전 청장에게 튀었다. 당시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검찰은 “이 전 청장이 국장 시절이던 2001년 서울 강남의 룸살롱에서 당시 국세청 과장, 술집 업자로 보이는 사람 한 명 등과 술을 마시고 도박판을 벌이다 국무총리 암행감찰팀에 적발됐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김흥주 씨를 통해 암행감찰팀에 로비를 시도했다”며 이 전 청장을 소환조사했다.
이 전 청장은 이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고 검찰도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을 가지고 논란을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아래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세간의 관심 밖에 있던 이 전 청장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올해 초 신성해운 세무조사 무마 의혹이 언론을 통해 불거지면서부터다.
중견해운업체 신성해운이 정상문 청와대 전 총무비서관을 통해 세무조사 축소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은 이 사건은 당시 국세청 핵심인사들의 이름이 여러 명 거론됐고 이 중 이 전 청장의 이름도 포함됐다. 신성해운 세무조사 당시 이 전 청장은 국세청 차장이었다.
신성해운 세무조사 축소 의혹이 발화점이 됐을까. 이후 이 전 청장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갖가지 의혹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와 관련해 강남의 고급 유흥업소인 D 유흥주점 계좌를 통해 이 전 청장의 차명계좌로 거액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하고 유흥업소 관계자들이 소환조사를 받았었다. D 업소는 이 전 청장이 단골로 이용하던 업소였다.
또한 검찰은 관련자를 소환하는 과정에서 유흥업소 관할 세무서 일선 직원들이 유흥업소로부터 정기적으로 돈을 상납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이 때문에 관련자들이 징계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성해운 수사는 정 전 비서관을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됐고 일각에서는 축소 수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전 청장과 관련된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밀지 못했던 검찰은 이번 프라임그룹 수사에서 뜻밖의 ‘월척’을 낚았다. 프라임그룹이 조성한 비자금 중 일부가 이 전 청장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
이 전 청장은 프라임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수 있도록 힘써주겠다며 2006년 2월께 시가 19억 원 상당인 강남구 청담동 S 아파트를 구입해 달라고 기 아무개 씨에게 요구해 아파트를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2005년 3월 삼성동의 I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기 씨에게 “세무조사 현안이 발생하면 잘 처리해주겠으니 집에 비치할 음향기구와 가구 등의 대금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해 5800만 원 상당의 가재도구를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전 청장 측은 “아파트가 자신의 명의가 아닌 만큼 뇌물이라 할 수 없고, 자신의 집이 아닌 곳에 있는 가구 역시 자신의 것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이 전 청장의 구속이 이번 사건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얼마 전 수사 종결한 신성해운 사건의 재수사 여부다. 특히 현재 프라임 그룹 수사를 하고 있는 서울서부지검에서 이번 수사 과정에서 신성해운 사건의 재수사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주성 전 청장 수사 당시 뭉칫돈이 많이 발견됐으나 자금세탁을 하도 많이 해놔서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당시 사건은 어떻게 보면 수사종결이 아닌 내사종결 상태”라고 말했다. 신성해운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되면 국세청은 다시 한 번 거센 폭풍에 휘말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프라임그룹의 비자금 의혹에서 출발한 검찰 수사가 본격적인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로 접어들지 여부도 주목된다. 그동안 프라임그룹 수사와 관련해 전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여럿 거론된 바 있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이 프라임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청탁과 관련해 실제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는지 여부를 밝히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