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검사들 열독 과연 우연일까요
▲ 왼쪽부터 박세리,윤태식 씨,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 ||
우울한 소식들 가운데 희망적인 소식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스포츠 스타들이 연달아 전해 준 승전보였다. 이들의 선전에 국민들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웃을 수 있었다.
창간 이후 16년 가까이 숱한 화제를 만들어냈던 <일요신문>은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던 올 한 해도 어김없이 많은 특종과 단독보도를 통해 국민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2008년 한 해 동안 <일요신문>이 보도했던 특종들을 정리해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으로 국민들이 새로운 기대에 들떠있던 지난 2월 말 언론사 기자들과 국민들의 눈이 <일요신문>으로 모아졌다. <일요신문>은 지령 824호에서 ‘박철언, 여교수 고소 내막’을 통해 6공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장관이 자신의 돈을 횡령했다며 미모의 여교수를 고소하게 된 사연을 보도했다. 이 기사는 결국 박철언 전 장관의 비자금 의혹으로 비화됐고 이후 각 언론들이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특종보도엔 한 가지 미담도 있다. 원래 관련 정보를 처음 입수한 기자는 취재 2팀의 한 여기자였다. 그러나 그는 취재 도중 건강이 나빠져 잠시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욕심내지 않고 취재한 정보를 같은 팀원들에게 넘겼던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안양에 살던 열 살 혜진 양과 여덟 살 예슬 양이 유괴살해된 일명 ‘안양 초등생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는 경찰이 미처 살피지 못한 곳들을 샅샅이 훑고 다니다 살인마 정 씨의 다이어리를 입수해 보도했다(지령 828호 살인마 본색). 다이어리에는 정 씨가 자필로 쓴 일기가 담겨 있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살인을 저지르기 전 정 씨의 심리상태를 다른 어느 보도보다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다.
지난 4월 <일요신문> 창간 16주년 특집으로 발행된 지령 831호에는 깜짝 놀랄 만한 특종 2개가 보도됐다. 하나는 원조 골프 여제인 박세리의 남자친구를 최초로 공개한 기사와 사진. 이 사진은 다음날 각 일간지와 무료신문 스포츠면을 도배하기도 했다. <일요신문>이 해외에 주재하고 있는 통신원을 통해 박세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취재한 끝에 얻어낸 쾌거였다.
같은 호에 보도된 ‘김용철 변호사 다큐멘터리 찍는 내막’도 각 언론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로 최고의 뉴스메이커였다. 모 주간지에 처음 제보한 이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가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는 보도는 타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한 쇼킹한 뉴스였다.
그로부터 3주 후 지령 834호에서 <일요신문>은 ‘최고가 오피스텔 타임브릿지의 비밀’을 통해 다시 한 번 삼성그룹을 향해 펜을 겨눴다. 국내에서 가장 비싼 오피스텔 ‘타임브릿지’의 소유주가 대부분 삼성의 전·현직 임원이라는 사실을 보도한 것. 이 기사는 삼성 특검으로 인해 국민적 관심이 온통 삼성그룹에 쏠려있던 때라 파장이 더욱 컸다.
총선 이후 <일요신문> 기자들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먼저 18대총선 최연소 당선자였던 친박연대 양정례 의원에 대한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자 <일요신문>은 양정례 당선자가 가지고 있는 서울과 수도권 일대 부동산을 샅샅이 훑었다. 그 결과 양 당선자가 후보자 등록 당시 선거관리 위원회에 무려 140억 원대에 이르는 부동산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사건을 취재한 기자는 양 당선자의 재산으로 의심되는 부동산의 등기부등본을 일일이 떼어본 후 직접 현장을 찾아가 눈으로 확인까지 하는 탐사보도의 전형을 보여줬다.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사정작업이 수개월간 이어져 오는 동안에도 <일요신문>은 뉴스의 중심에 서 있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휴켐스 헐값 인수 의혹, 프라임 그룹 비자금 조성의혹 등 검찰발 기사는 대부분 <일요신문>에서 가장 먼저 보도한 것이었다. 이 가운데 프라임 그룹 사건은 결국 그룹 총수가 구속됐다.
현 권력도 <일요신문>의 감시를 피할 수는 없었다. 전 정권 유력인사가 연결됐다는 의혹으로 시작된 강원랜드 비자금 수사는 결국 검찰의 의도대로 전 정권 인사가 관련됐다는 확실한 물증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하청업체인 케너텍을 통해 거액의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소정의 성과를 거뒀다. 이 와중에 <일요신문>은 전 정권 인사뿐 아니라 현 정권의 차관급 인사 A 씨도 케너텍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했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했다(지령 854호 케너텍 비자금 X파일 추적). A 씨는 일간지 등에 이 사실이 보도되자 얼마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팬클럽 ‘명사랑’ 회장인 정 아무개 씨가 거액의 돈을 가로챈 후 검찰에 의해 수배됐다는 사실도 <일요신문>의 특종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검찰은 사건의 파급력을 감안해 언론에 알리지 않은 채 수사하려 했지만 <일요신문>의 보도로 어쩔 수 없이 이 사실을 자세히 공개해야만 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는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도대체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을 만큼 <일요신문>의 정보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 김용철 변호사(왼쪽), 노건호씨. | ||
JMS의 교주 정명석도 <일요신문>을 통해 여러 차례 등장했다. 정 씨의 공판을 독점 생중계하는 한편 정 씨의 변호인으로 삼성특검 조준웅 변호사가 임명됐다는 사실을 최초로 보도하기도 했다(지령 858호 조준웅 특검, 정명석 변호).
본지에서 이 사실을 최초 보도했었던 것을 몰랐었는지 약 일주일 뒤 한 일간지는 마치 자신이 특종한 양 이를 그대로 보도하기도 했다.
다른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수사기관의 수사자료로 관심을 끌었던 기사들도 적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건호 씨의 해외유학 내막이다(지령 853호 노건호 해외유학의 비밀). 재벌가 자제들의 주가조작을 수사하고 있던던 검찰은 노 씨가 비슷한 일로 인해 청와대 민정실의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본지의 보도를 보고 알게 됐다. 담당 검사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알려줄 수 없느냐고 부탁해오기도 했다.
수지 김 사건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윤태식 씨와 박연차 회장의 주식 공방도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지령 862호 윤태식-박연차 주식공방). 윤태식 씨와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연차 씨가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기에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지를 <일요신문>만이 자세히 보도했다. 관련 사건으로 검찰청에 불려간 윤 씨는 출입기자들이 이것저것 물어오자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지령 863호에서는 형제 간의 오랜 갈등의 원인이었던 육영재단 운영권이 결국 박근령 씨에서 박지만 씨로 넘어간 사실을 보도했다. 육영재단의 갈등은 이로써 일단락되리라 예상됐지만 두 번째 ‘주인’이었던 근령 씨가 반발하는 바람에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스포츠 연예 부문에서도 <일요신문> 기자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이주노 씨가 본의 아니게 사기혐의로 피소된 사연을 단독 보도했으며 프로야구단 서울 히어로즈의 돈줄로 알려졌던 홍성은 회장이 실제로는 야구단 운영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던 것도 <일요신문>을 통해 밝혀졌다.
또한 퇴임 이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운용 전 IOC 위원을 단독 인터뷰하면서 태권도 협회 수장직을 물러날 당시의 비화를 듣기도 했다.
<일요신문>이 특종으로 보도했지만 다른 매체가 관심을 갖지 않는 바람에 아쉬움을 남긴 사례도 적지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대로 거액 송사를 벌였던 고춘남 씨(지령 826호 DJ 거액송사 당한 내막)가 대표적이다. 고 씨는 DJ가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고 있던 80년대에 DJ와 측근들의 부탁을 받고 강연 테이프를 제작·배포했다고 주장, 보상을 요구했지만 DJ 측이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송사는 고 씨 측의 패배로 끝났다. 한때 DJ 측에서 합의금으로 500만 원을 제시했었다는 후문도 들린다.
<일요신문>이 2008년에도 많은 특종 및 단독보도를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자들의 근성 때문이었다. 연예부의 한 기자는 올 한 해 두 번의 병원신세를 지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취재를 쉬지 않는 근성을 보여줬다.
‘언니 게이트’가 터졌던 지난 8월, 사회부 한 기자는 찜통더위를 무릅쓰고 신사동 일대를 샅샅이 뒤져 결국 김옥희 씨의 집이 이명박 대통령 부부가 다니는 소망교회에서 직선거리로 100m도 안되는 인근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충격과 감동이 교차했던 2008년 특종 퍼레이드. <일요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애정이 식지 않은 한 그 감동은 2009년 새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