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마음회’ 사건 유인할 땐 거미줄식 무너질 땐 도미노식
▲ 큰손도 꽁꽁 불황 한파에 큰손들의 대규모 계모임 부도사건과 사기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다복회’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에서 또 다른 계모임인 ‘한마음회’는 곗돈을 주지 못한 계주가 한때 잠적, 큰 소동을 벌였고 서울 여의도에서도 카페나 룸살롱의 마담과 아가씨 등을 상대로 하는 70억 원 대의 계모임이 계주의 잠적으로 깨져 피해자들이 계주를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제2 다복회로 주목받고 있는 ‘한마음회’와 여의도 ‘카페계’ 사건의 전모를 추적해봤다.
계원들에 따르면 한마음회는 지난해 1월 결성됐다. 계주는 강남구 신사동에서 보석상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 씨(55·여)이고 총 곗돈 목표액은 최고 1000억 원대라고 전해지지만 모임의 정확한 실체나 피해규모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계원들 대부분이 계주 혹은 이전 회원들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피라미드식으로 가입한 탓에 계원들끼리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아 계원들도 실상을 잘 모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계원들 사이에서 ‘계원 수가 100~250명이며 피해액은 20억~30억 원선 정도가 될 것’이라는 정도의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한마음회의 총 피해 규모를 최대 2400억 원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계주 이 씨는 1억, 2억, 4억 원 등 금액별로 각기 다른 계좌를 구성하고 계좌당 계원을 21명으로 구성, 총 59계좌를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계원들은 개인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매월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곗돈을 부어왔는데, 현재까지 회원들이 불입한 액수는 일인당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은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인해 일부 계원들이 납입금을 제때 내지 못한 데서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원들에 따르면 곗돈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50여 명으로 늘어나면서 계주는 낙찰 곗돈을 지급하는 데 큰 차질이 생겼고, 한 번 펑크가 나자 피해는 도미노식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결국 낙찰곗돈을 탈 순번이 된 회원들이 줄줄이 돈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낙찰곗돈 지급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씨는 문제가 불거진 직후 수일 동안 잠적했다가 일부 계원들이 경찰에 고소할 움직임을 보이자 지난 25일 10여 명의 계원들을 만나 현재 상황을 토로하고 협상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마음회에는 사회 저명인사들이 여러 명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강남 일대에서 명품숍을 운영하는 토박이 ‘큰손’ 상인들과 우수고객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강남 큰손들을 주고객으로 상대하는 젊은 자영업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일부 계원들은 한마음회에 대해 “강남에서 영업하는 상인들이 주축이 돼 구성된 순수 계모임으로 규모도 20억 원대에 불과하다”며 귀족계라는 일부 보도에 대해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마음회는 운영방식이나 회원 모집과정 등에서 다복회와 유사한 점이 많다. 마당발로 소문이 자자했던 이 씨는 자신이 보석상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고객들과 가입된 계원들의 친분을 앞세워 회원들을 모집해왔다. 한 계원은 “사회적으로 명망 있거나 그 일대에서 이름난 재력가를 통해 가입을 권유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의심없이 계에 가입했다”고 귀띔했다.
이 씨는 유명인의 이름을 내세워 회원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모임을 진행할 때마다 변호사와 법무사 등을 동행해 신뢰도를 높여왔고, 외부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이들의 특성을 고려, 자신의 보석상에서 최대한 은밀하게 계를 운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수개월 동안 계가 잘 이뤄지다가 자금압박을 받은 회원들이 납입하지 못하면서 한순간에 계가 깨졌다는 점도 비슷하다.
실제로 모임이 이뤄졌던 이 씨의 보석상은 외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장소로 알려졌다. 주변 상인들에 따르면 이 씨는 두 명의 직원을 두고 현재 자리에서 8년째 상점을 운영해왔는데 평소에도 안면이 있거나 소개를 받은 사람들만 출입을 허용하고 외부인은 철저히 차단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근 상인은 “방문시 초인종을 누르면 안에서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강남 일대에서 ‘왕언니’로 불린 이 씨는 다복회 계주 윤 씨와도 친분이 있는 인물로 전해진다. 일부 계원들은 “다복회 계주 윤 씨도 한때 이 씨가 운영하던 계의 계원이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마음회에는 다복회 사건 피해자도 여럿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문제는 제2, 제3의 다복회가 터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강남지역에서는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규모의 ‘귀족낙찰계’ 10여 개가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워낙 은밀히 운용되기 때문에 대부분 그 실체는 베일에 싸여 있다.
강남 귀족계는 계주가 낙찰자를 임의로 선정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계원들이 서로 잘 모르고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계주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고, 계 운용도 투명하게 이뤄지기 힘든 구조라고 한다. 이 때문에 계주가 곗돈을 자신의 쌈짓돈으로 사용하거나 다른 용도로 굴려도 계원들이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계주 이 씨는 잠적 며칠 만인 지난 25일 오후 서초동에서 계원들과 만나 “먼저 곗돈을 탄 50여 명이 납입금을 내지 않아 계를 운영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한 뒤 “납입금을 내지 않은 계원들로부터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 빠른 시일 안에 계를 정상화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나머지 계원들이 이 씨를 상대로 고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이 사태가 어떻게 정리될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