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에 돈줬다” 누가 불었나 했더니…
영화 <타짜-신의 손> 스틸컷.
검찰은 이 사건을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검찰이 함부로 건들기 부담스러운 법원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상당한 심증과 달리 물적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검찰은 공식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현재 사법처리 방침이나 방향이 정해진 것은 전혀 없다. 수사상황은 밝힐 수 없다”고 극히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 사건에 대해 “언론과 최 씨 내연녀 측이 주도하고 있는 사건”이라며 “언론에 공개되는 상황은 검찰보다 언제나 한 발씩 더 나가 있다. 수사로 전환하면 기소를 전제로 한다는 건데, 아직 그 정도는 안 되고 그냥 내사 수준에서 살펴보는 정도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검찰청은 지난 4월 내사 상태이던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강해운)에 이첩해 살펴보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최 판사의 사법처리를 넘어 검찰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음지의 권력자였던 최 씨가 그간 사회저변에 깔아놓은 ‘암흑의 카르텔’이 상당한 수준일 수 있다는 것. 특히 최 씨와 갈라선 최 씨의 내연녀가 지속적으로 정보를 흘리며 최 씨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최 씨까지 ‘혼자 죽을 수 없다’는 식으로 폭로전에 나설 가능성을 보이고 있어 사건이 게이트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최 씨는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경찰 수사 등에서 상당한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얘기가 계속해서 나왔다. 경찰관이나 검찰 수사관들은 최 씨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며 극진한 예우를 했다고 한다. 최 씨는 자기 사건뿐 아니라 지인들의 사건 편의 청탁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최 씨는 자기 세계에서 점점 더 거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수도권의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최 씨를 이용해 최 씨와 얽힌 다른 사건들을 두드려보려고 했었던 걸로 아는데 사건이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며 “피를 보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테지만 법원과 검찰에서 숨죽이고 이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이 여럿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씨에 대한 내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최근 최 씨의 전 내연녀 한 아무개 씨로부터 최 씨의 비밀장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기도박판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진 한 씨는 최 씨와 사기도박을 함께 벌이는 등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이익분배 등 과정에서 감정이 악화돼 지금은 서로 등을 돌린 상태다. 한 관계자는 한 씨가 “정보를 하나 하나 꺼내는 식으로 최 씨를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한 씨는 사기도박계에서 꽤 이름을 날린 여성 ‘타짜’로 알려진 인물이다. 최 씨는 사채업 외에도 불법도박장을 직접 개설한 뒤 도박꾼들에게 노름빚을 빌려주는 일도 했는데, 한 씨와 손을 잡고 ‘호구’를 잡아 돈을 따낸 뒤 이를 나눠 갖는 범죄도 저질렀다.
최 씨와 손을 잡은 한 씨 일당은 도박에 빠진 사업가 등을 ‘호구’로 끌어들인 뒤 최 씨 소유의 별장 등을 돌며 도박판을 벌였다. 최 씨는 직접 사기도박에 가담하진 않고 도박장소와 도박자금 등을 지원하는 후방지원 역할을 맡았다. 한 씨 일당은 꽃뱀을 동원하고 음료수에 약을 타는 등 온갖 수법을 동원해 ‘호구’로부터 6억여 원을 털어갔다. 이중 일부를 최 씨가 챙겼다.
검찰은 제보 등을 토대로 최 씨가 최 판사에게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총 6억여 원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판사는 이에 대해 “최 씨가 아니라 이름이 비슷한 친척에게 돈을 빌렸던 것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도 없으며, 언론에 법적대응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히는 등 강하게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담당하고 있지만 내사는 다른 곳에서 진행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이었던 아무개 검사가 지방 지청장으로 내려가면서 사건파일을 들고 가 뒤를 계속 추적해 왔다고 한다. 해당 검사 외에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한 부장급 검사도 지청장으로 부임하면서 이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검찰 관계자는 “처음에 언론을 통해 문제가 제기될 때까진 이런 내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최 판사의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현재로선 혐의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사건이 얼마나 커질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검찰에 앞서 이 사건 첩보를 입수했던 경찰도 내사 단계에서 사건을 훑어보다가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어 그냥 덮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 씨 내연녀가 최 씨와 틀어지면서 제보를 한 건데 지금은 접었다. 뭔가 나온다면 검찰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은 돈을 주무르는 최 씨가 여러 불법적인 사업에 발을 담그고 이 과정에서 각종 위법적인 행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추론은 자연스러운 연결점이다. 법조계의 관심은 이 과정에서 최 씨가 ‘어느 선’까지 돈을 주며 관리했느냐는 것이다.
검찰이 정말 ‘비밀장부’를 확보했는지 여부가 수사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현재 최 판사 외에도 경찰관 수십여 명과 검찰 수사관 여러 명도 최 씨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내연녀 한 씨가 ‘한 방’에 터뜨리지 않고 정보를 순차적으로 내놓고 있는 상황인 만큼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커질지 예단이 쉽지 않다. 반면 현재 교도소 수감 중인 최 씨 역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여러 경로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한때 최 씨와 간접적으로 엮인 사건을 맡았던 적이 있다고 밝힌 한 법조인은 “최 씨는 상당히 치밀하고 집요한 성격”이라며 “언론에 대해서도 상당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걸로 안다.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검찰로서는 일단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모습인 듯하다.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한 차장검사급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이길진 모르겠지만 사건이 (사기도박 등 강력범죄와 관련된) 강력부 사건으로 커지든, (뇌물사건이 연결된) 특수부 사건으로 커지든 제멋대로 커지지 않겠느냐.”
조정수 언론인
대기업 잡던 특수부 요즘 뭐하나 정치권 향해 겨눈 칼, 무만 자르고 칼집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해체 후 검찰의 ‘제1 화력’으로 평가받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올해 별다른 활약 없이 잠잠한 상태다. 지난해 CJ와 효성그룹, 동양그룹 등 굵직한 대기업들을 표적으로 삼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역점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에까지 칼을 들이댔던 것에 비하면 올해 특수부가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평가다. 검찰 내 특수통 검사로 꼽혀 온 김진태 검찰총장이 취임한 후 서울중앙지검 진용은 크게 바뀌었다. 특수부를 이끌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는 배우 유오성 씨의 친형이기도 한 유상범 차장검사(48·사법연수원 21기)가 임명됐다. 휘하에는 김후곤 특수1부장(48·25기), 임관혁 특수2부장(48·26기), 문홍성 특수3부장(46·26기), 신설된 특수4부에는 배종혁 부장(47·27기)이 각각 포진됐다. 이번 인사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있었다. 지난해 혼외자 문제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불명예스럽게 퇴임한 직후 검찰 내 ‘특수통’ 세력이 크게 위축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던 것이다. 지난해 검찰 최대 이슈였던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사건 수사와 관련,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검사가 ‘한직’인 대구고검 검사로 밀려났고 검찰 내 ‘가장 날카로운 칼’이라고 평가받던 여환섭 전 특수1부장과 윤대진 전 특수2부장, 박찬호 전 특수3부장 등도 지방으로 내려갔다. 이에 대해서는 검찰이 지난해 집중했던 대기업 수사를 올해 상당히 위축시키고 ‘다른 곳’에 집중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살리기 방침과도 맥이 맞닿아 있는 것. 검찰 내에서는 “지난해 대기업들에 대한 청와대의 ‘길들이기’가 끝난 만큼 올해는 대기업 수사가 없을 것”이란 반응이 나왔다. 올해 검찰 수사는 공무원들과 유관기업의 유착비리, 이른바 ‘관피아’ 수사에 집중됐다. 서울중앙지검뿐 아니라 전국 각 지검이 동시에 전방위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공직 최윗선까지 사법처리하지는 못해 용두사미라는 평가가 나왔다. 대중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대한야구위원회 등 체육단체들에 대한 수사도 ‘그냥저냥’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이 와중에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서울중앙지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줄어들었다. 2012년 검란 파동으로 좌천됐던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이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최대 수사였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에 대한 수사를 총책임지면서 더욱 관심을 받게 됐다. ‘설욕전’을 다짐했던 최 전 지검장의 욕심이 결국 유 전 회장의 변사체 발견과 함께 유명무실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올 한 해 확실한 ‘성과’가 부족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이후 정치권을 겨냥하며 반전을 노렸지만 사정수사라는 비판에 부닥치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입법로비와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국회의원 3명을 구속기소하는 등 여야 의원들을 줄줄이 재판에 넘기긴 했지만 사건을 확대하지는 못하고 접어야 해 아쉬움이 남았다. 사건을 담당했던 한 특수부 검사는 “조심스러웠지만 꽤 철저하게 준비했던 사건인데 정치권 반발로 사건이 죽어 아쉽게 됐다”고 입맛을 다졌다. [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