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열린우리당의 ‘인터넷 당원’들이 당론에 영향을 미치는 등 당의 ‘제3세력’으로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진은 열린우리당 홈페이지(www.eparty.or.kr) 메인화면과 신기남 우리당 의장(오른쪽), 천정배 원내대표를 합성한 것. | ||
현재 인터넷 당원수는 약 6만5천명에 이른다. 그런데 당원 게시판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수는 약 3백여 명.
이중에서도 50여 명의 ‘인터넷 리더’들은 하루에도 몇 건씩의 글을 올리며 당론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막강한 외곽부대로 자리잡고 있는 것. 하지만 이들의 순수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이들이 당 지도부의 ‘상전’으로 당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급기야 당 지도부에서는 “네티즌 요구에 따라 당 정책이 춤을 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들에 대한 본격 견제에 나선 인상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 ‘인터넷 리더’들은 손사래를 친다. 이들은 “평당원들이 당의 진정한 실세로 우뚝 서는 그 날까지 정당개혁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40대 중반의 남성들이 대부분으로 “생각의 깊이가 어설픈 정치인들보다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지도부’라는 주변의 평가에 대해 “수평적 관계를 만드는 것이 꿈이며 결코 누구에게 우리의 의견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인터넷 핵심당원 50여 명의 ‘실체’를 따라가 봤다.
지난 6월29일 열린우리당 당원게시판은 당원들의 글 ‘소나기’를 맞고 있었다. 박창달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직후인 오후 4시경부터 다음날 오전 12시까지 당원 게시판에는 평소 조용하던 날과는 달리 무려 5백여 개의 글이 폭주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내용이 열린우리당에 대한 실망과 욕설, 조롱과 비난 등이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비난 글의 홍수로도 모자라 한때 1천 명씩의 당원이 매일 탈당하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17대 국회의 첫 체포동의안 투표에서 여야 의원들을 막론하고 제 식구 감싸기 식의 구태의연한 투표 행위가 펼쳐지자 새 정치를 기대하던 많은 열린우리당 당원들이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급기야 일부 핵심 당원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아이디 ‘박무’(박정욱·무역업)는 “투표 결과 공개”와 함께 “체포동의안 부결에 참여한 동료 의원에게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의서를 1백52명 열린우리당 의원 전원에게 보내자고 제안한 것. 그런데 문제는 예전 같으면 이런 ‘국민’들의 요구에 콧방귀도 뀌지 않을 국회의원들이 한 인터넷 당원의 ‘발칙한’ 요구에 무려 58명의 의원들이 회신을 보낸 데 있었다.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 공개 요구는 그렇지 않아도 삐걱거리던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더욱 흔들리게 하는 악재로 작용했다.
이런 정치적 영향력을 인터넷 핵심당원들도 인정하고 있다. ‘박무’는 ‘은하수’(하승운·IT컨설팅)와 함께 열린우리당의 인터넷 방송인 우리TV에 출연해 정봉주 의원과 열띤 토론을 벌인 ‘당게’(당 게시판)의 대표적 논객이다. 그는 박창달 의원 사건에 대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다
“사실 투표 찬반여부 공개 요구는 의원으로서의 권위를 무참하게 깎아 내리는 폭력적인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58명의 의원들이 어떤 식으로든지 답변을 주었다. 이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한 획기적인 사건이다. 수평적 관계의 당 구조가 비로소 이 사건으로 공식화 양성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열린우리당 홈페이지 게시판. 인터넷 당원들은 ‘당게’라 부른다. | ||
현재 열린우리당 당원게시판에는 약 50명의 인터넷 핵심당원들이 제3세력을 구축하며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열린우리당 사이버운영실 한 관계자는 “현재 약 3백명의 당원들이 꾸준히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있다. 그 중에서 50여 명은 하루에도 몇 건씩 글을 올리며 날마다 게시판을 체크하는 열성파 중의 열성파들이다. 하지만 그들을 따로 관리하거나 하진 않는다. 연락처와 얼굴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은하수’는 인터넷 핵심당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게(중앙당 게시판)에 열성적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40대 중·후반으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른바 ‘생활정치인’들이다. 잠깐 글을 올리고 사라지는 일과성의 젊은이들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열린우리당 당원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고 과거의 당원들과는 자질도 다르다. 생각하는 깊이도 어설픈 정치인들보다 낫다고 본다.”
인터넷 핵심 당원들의 직업은 의사에서부터 중소기업체 사장, 회사원, 건설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이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제각각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요즘 당 게시판에서 여론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시민 의원이 개혁당을 할 때 같이 활동했던 이른바 ‘유빠’라며 공격한 일도 있었다. 일부 당원들은 이들의 존재에 대해 “몇 백 명도 안 되는 젊은 네티즌이 사이트를 장악, 전체 당원의 총의를 대변하는 양 호도하고 여론을 조작한다”고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박무’는 “그런 것은 없다. 일반 평당원들은 개혁당 출신도 있고 민주당이었던 사람도 있고 어떻게 편중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우리들의 질의나 주장에 대해 개혁당 출신 의원들이나 중앙위원들이 잘 답변해주고 호응해주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점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옛날 생각에 묶인 현 지도부의 능력으로는 당헌 당규 개정 등 정당개혁 작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혁명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지금 열린우리당 온라인 정치세계는 세계 정당사에서 전례가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들이 열린우리당의 당론을 무시하고 온라인에서 여론을 이끌어 당의 또 다른 실세로 떠오르고 있다”며 “강력한 견제를 할 것”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인터넷 지도부’론에 대해 이들은 “평당원이 실세가 되는 정치가 새로운 정치다”라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박무’는 이에 대해 “온라인 시대는 전부 지도부가 되고 동참하고 서포터가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 누가 많은 의견을 내고 그것에 대해 타당성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힘이 집약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그런 점에서 인터넷의 여론을 이끄는 일종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또한 앞으로 정계 진출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활동을 통해 검증을 받은 인물이라면 충분히 현실정치판에 뛰어들 자질을 갖추었다고 밝히고 있어 ‘오프라인’에도 진출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한편 사이버운영실 한 관계자는 이들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당의 공식 의사결정 구조에서 비켜나 있기 때문에 그들의 힘은 한계가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들의 최근 활동과 관련해 “네티즌들의 당에 대한 애정은 이해하나 그들의 요구에 따라 당의 정책이 춤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 책임 있는 집권 여당으로서 국익을 고려해 현안에 대한 당의 노선을 정립할 것이다”라고 말해 양측간 ‘충돌’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왜냐하면 현재 이들은 당헌 당규 개정을 앞두고 현 지도부와 또 다른 힘겨루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에서 진정으로 평당원의 목소리를 들을 의사가 없다고 판단되면 중대한 결심을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전술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앞으로 당과 또 한번 마찰을 일으킬 태세다.
한편 이들의 활발한 활동이 단순한 일과성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박무’는 이에 대해 “우리는 나름대로 당내 역학 구도나 각 의원에 대한 많은 정보와 판단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어떤 액션을 취했을 때 당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것을 판단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밝혀 이들이 예상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정치개혁 운동을 전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핵심당원들의 활동 논란에 대해 “‘네티즌여론수렴기구’ 같은 것을 만들어 이들의 주장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이들 인터넷 리더들을 어떻게 대할지 관심을 모은다. 어쩌면 현 지도부의 아날로그 사고를 ‘재부팅’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