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밟히자 ‘몸통’ 훌러덩
▲ 이주성 전 국세청장이 포스코 세무조사와 관련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사진)의 압력을 받았다고 진술해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 ||
검찰이 포스코그룹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말부터다. 프라임그룹으로부터 대우건설 인수 로비 청탁을 받고 19억 원짜리 아파트를 받았다 돌려준 혐의로 이주성 전 국세청장을 수사하던 검찰은 이 전 청장의 차명계좌로 몇몇 기업의 수상한 돈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벌여왔다. 그 과정에서 묻혀있던 지난 2005년 포스코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도 드러났었다.
검찰은 지난 2005년 국세청이 포스코에 대해 정기 세무조사를 벌여 1797억 원이라는 거액을 추징했음에도 이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이때만 해도 포스코가 거액의 추징금을 무마하기 위해 이주성 전 청장에게 금품로비를 벌였다는 첩보에 따라 이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해 왔었다. 하지만 이 전 청장과 국세청은 포스코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검찰은 결국 세무조사 과정을 직접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 한 달여 전인 지난해 12월 4일 2005년 포스코 세무조사를 담당했던 대구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했다.
이후 한 달여 동안 검찰은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고위층의 압력을 받았다”는 이주성 전 국세청장의 진술을 받아냈다고 한다. 결국 전 정권의 고위인사가 이번 로비 사건의 주역으로 떠오른 셈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부지검 관계자는 “이 전 청장이 지난 2005년 국세청이 포스코 세무조사를 벌일 당시 외부의 압력을 받았다고 실토했으며, 압력을 행사한 사람은 바로 김병준 전 대통령자문위원회 위원장이라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김병준 전 위원장은 참여정부시절 대표적인 ‘친노그룹’ 인사로 꼽혔던 인물.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 전 위원장은 2006년 7월 교육부총리 자리에 임명된 지 13일 만에 ‘논문표절 의혹’으로 퇴진했지만 불과 3개월 후인 그해 10월 대통령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복귀했다. 참여정부 시절 ‘코드인사’ 논란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자 실세로 통했던 인물이다. 포스코 세무조사가 진행됐던 2005년 당시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으로 있었다.
검찰 측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어떤 식으로 국세청에 압력을 넣었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정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검찰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김 전 위원장과 당시 대구지방국세청장이었던 김 아무개 씨의 관계.
중학교 및 대학교(영남대학교) 동창인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아주 친하게 지내온 사이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2005년 당시 김 전 위원장이 친분 있는 김 전 청장을 통해 포스코에 대한 검찰의 고발을 먼저 막고 이주성 전 국세청장에게도 압력을 넣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이 단순히 포스코와의 인연 때문에 이 전 청장에게 압력을 넣은 것은 아닐 것”이라며 “김 전 위원장이 포스코 측으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계좌추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김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의 계좌도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청장도 포스코 측으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또한 두 사람 사이에서도 ‘인사치레’가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들 사이의 자금 흐름에 대해서도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이 대구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한 이후 김 전 위원장과 김 전 청장은 최근 부쩍 자주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관계자는 “수사가 시작된 이후 두 사람이 통화하거나 만나는 횟수가 부쩍 늘어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무엇 때문에 자주 접촉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이번 수사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많다.
이와는 별개로 검찰은 김 전 위원장에 대해 또 다른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부지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비자금을 상납받았다고 이 전 청장이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김 전 위원장이 누구로부터 얼마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한 이 전 청장의 구체적인 진술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함구했다. 사안의 폭발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이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검찰은 이 전 청장의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을 두고 있는 듯하다. 만약 이 전 청장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번 수사의 끝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 경우 받은 비자금을 김 전 위원장이 혼자 썼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 주변이나 더 높은 곳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김병준 전 위원장에게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와 이메일 등을 통해 수차례에 걸친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김 전 위원장이 근무하고 있는 E 사 측 직원은 “회장님이 들어오시는 대로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을 뿐 그 뒤로도 김 전 위원장 측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편 검찰은 본건이라 할 수 있는 포스코 비자금 수사에서는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부지검의 또 다른 관계자는 “포스코는 본사 회계처리가 표준화돼 있고 허점이 없어 정황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주변 협력업체에 대한 조사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관계자는 “포스코가 협력업체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에 대해 집중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