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 설치고 주민 버티고 구청 불구경
▲ 신문로 2가 재개발 사업이 보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세입자들이 천막농성을 벌이며 시행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서울시 균형발전본부에 따르면 낡은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재개발 사업은 서울에만 총 473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235곳이 갈등의 소지가 있는 미시행구역으로 남아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235개나 서울 시내 곳곳에 매설돼 있는 셈이다.
이 중 ‘신문로 2가’ 일대의 재개발은 그야말로 도심 한복판의 화약고나 다름없다. 재개발이 확정되고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개월간은 용역업체 직원들과의 갈등이 심해져 자칫하면 제2의 용산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인근 주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현재 세종로 사거리 인근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교보생명 뒤편 청진동과 외교통상부 뒤편 도렴동, 그리고 세종문화회관 뒤편 신문로 2가 등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지역인 청진동 재개발은 현재 철거작업이 진행 중이다. 가장 금싸라기 땅으로 불렸던 이곳은 유진그룹 GS그룹 교보생명 등이 관여돼 있었다. 토지 보상 과정에서 세입자들과 적지 않은 마찰이 있었지만 최근 보상 문제가 마무리돼 철거가 시작됐다.
도렴동 재개발도 최근 세입자들과의 보상 문제가 해결돼 조만간 철거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두 곳과 달리 신문로 2가 재개발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총 1700평이 재개발되는 이곳은 지난 2005년에 이미 재개발이 확정됐으나 보상 문제로 인해 시행사와 세입자들간의 힘겨루기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이 지역 재개발 시행사는 ‘디비스 프로젝트 투자금융 주식회사’(이하 디비스)로 문희상 국회부의장의 사돈인 허 아무개 씨가 대표이사로 있다.
때문에 디비스가 시행사로 선정될 당시엔 여권 실세 정치인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에는 문 국회부의장의 동생인 문 아무개 씨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었다.
이곳에는 2011년 완공을 목표로 지상 23층·지하 6층의 오피스 건물이 들어설 계획이다. 이 지역은 2004년 서울시가 작성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에 따르면 90m가 넘는 건물은 지을 수 없는 곳이지만 101m 높이로 건축 허가를 받았다.
또한 시행실적이 전무한 디비스란 회사가 대형건설사의 보증으로 금융권에서 거액을 대출받은 점도 석연치 않았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압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치권에서 압력을 행사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문 부의장도 전혀 연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신문로 2가 세입자들은 벌써 3년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세입자들은 총 22세대다. 세입자들이 쉽사리 이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시행사의 보상대책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에 따르면 디비스 측은 보증금을 줄 수는 있지만 권리금 등은 줄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이런 시행사의 요구가 말도 안 된다고 말한다. 세입자 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그들이 이곳에 들어올 때는 권리금만 10평당 1억 원을 넘게 주고 들어왔다고 한다. 특히 이 지역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다 인근에 대기업, 관공서가 위치해 있어 상권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정평이 난 곳이다.
상당수의 세입자들은 가진 재산을 모두 쏟아 부어 가게 하나를 빌려 장사를 하고 있는 실정인데 고작 보증금과 이사 비용만 받고 나갈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 일대의 임대 운영 시스템은 다른 곳과는 차이가 있다. 다른 상권에서는 비싼 보증금을 내야 들어올 수 있지만 이곳은 보증금이 적은 대신 월세가 다른 곳의 2배 정도이며 권리금도 상당히 비싸다. 유동인구가 많은 탓에 일단 장사를 하면 어느 정도의 수입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권리금이 높고 월세가 비싸도 상인들이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행사가 주는 대로 보증금 정도만 받고 나간다면 거액의 권리금은 고스란히 날리는 꼴이 된다.
보상금이라는 것도 있지만 알려졌다시피 이는 어떤 시행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액수가 천차만별이다. 물론 여기엔 관할구청의 수수방관 때문에 빚어진 측면도 있다. 제도적인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구청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최소한 양측의 의견을 조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이래서 터져나온다. 게다가 인근에 있는 도렴동 재개발 입주자들은 최근 적정한 선에서 합의를 봤기 때문에 바로 옆의 이곳 세입자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상대적으로 더 커졌다. 이번 용산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도 관할구청이 재개발을 인가만 해주고 철거나 보상 문제에서는 뒷짐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이곳은 ‘제2의 용산참사’ 위험지역으로 꼽힌다.
세입자와 시행사와의 합의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곳에도 어김없이 용역직원들이 등장했다. 세입자들의 말에 따르면 재개발이 확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용역직원들의 횡포가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는 관할구청에서 인가가 난 것도 아니었는데 용역직원들이 들어와 횡포를 부렸다고 한다. 애초에 세입자와 대화할 의지가 없었다는 것.
한 세입자는 “대낮에도 (용역직원들이) 들어와 욕을 하고 횡포를 부리는 바람에 손님들이 그냥 나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밤에는 다음날 장사를 못하게 아예 가게 유리창을 깨거나 간판을 부숴 놓기도 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증거가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세입자들은 가게에 CCTV를 설치했고 여기에 용역업체 직원 1명이 찍혀 처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세입자들은 그동안 청와대, 서울시 등 관련 기관는 모두 탄원서를 보냈지만 어느 한 군데서도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용산에서 참사가 나기 전까지는 언론 등에서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이곳 세입자들은 하나같이 “이번 용산참사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입자 중 한 명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다른 데서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보상은 해줘야 되는 것 아니냐”며 “용산 철거민들과 우리들의 입장이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의 투쟁을 지켜보는 인근 지역 상인들은 “세입자들 중 대부분은 현재 보상금만으로 여기서 나가게 되면 먹고 살 방안이 없어지게 된다”며 “저들도 아마 용산 철거민 못지않게 마음을 단단히 먹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제3자가 나서서 접점을 찾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심장부에서 또 한 번의 비극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