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리는 목격담 사이로 ‘별 봤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30일 관련자들을 벌금형 약식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지만 기소된 연예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결국 연예인이 연루됐다는 소문은 풍문에 불과했다는 얘기. 그렇지만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연예인의 연루 여부를 확인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톱스타 K의 경우 불법 도박에 참여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에서 기소된 연예인이 단 한 명도 없듯이 수사의 단초 역시 연예계가 아니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마조부)는 지난해 11월 무등록 사채업자 B 씨(남·36)를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B 씨가 불법 도박에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면서 수사가 불법 도박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B 씨가 주로 도박을 한 장소는 전직 유명 운동선수의 부인인 A 씨가 운영하는 강남 소재의 고급 룸살롱이었다. 유명 미용실 원장, 유명 호텔 사장, 사업가 등이 B 씨와 함께 불법 도박을 한 고정 멤버로 알려졌는데 검찰은 이들 외에도 비정기적으로 불법 도박에 참여한 이들이 더 있다는 정황을 포착해 수사력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유명 연예인의 이름들이 거론됐다. 게다가 A 씨가 운영하는 고급 룸살롱에는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들이 자주 드나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룸살롱 단골 고객 가운데 불법 도박에 참가한 이들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이 과정에서 A 씨와 친분이 두터운 단골 고객인 연예인 명단이 소위 ‘A 마담 리스트’라 불리며 연예계를 강타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지검 마조부는 인기 톱스타의 매니저로 연예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C 씨와 톱스타 K가 불법 도박에 연루됐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이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불법 도박에 참여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진술이 확보됐다는 것.
우선 매니저 C 씨의 경우 A 씨가 운영하는 룸살롱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할 정도의 단골 고객인데 종종 불법 도박이 열리는 룸에서 함께 도박을 즐겼다고 한다. 반면 톱스타 K는 그 룸살롱 단골은 아니었지만 ‘판이 섰다’(불법 도박이 열린다는 의미의 은어)는 연락을 받은 뒤 도박에 합류하기 위해 룸살롱을 찾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진술이 엇갈린다는 데 있었다. 소환 조사를 받은 이들 가운데 톱스타 K가 불법 도박을 자주 했다고 진술한 이들도 있었지만 B 씨 등은 톱스타 K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런 까닭에 검찰은 대실심문까지 벌여야 했다.
취재 과정에서 당시 검찰에 소환됐던 이들 가운데 한 명인 D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검찰에 소환됐을 당시 톱스타 K가 불법 도박하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한 사람이다. 그는 톱스타 K의 당시 모습을 상당히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D 씨는 “K가 매번 검정 모자에 겨울 점퍼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룸살롱에 왔는데 부인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집에서 전화가 오면 도중에 도박판을 떠나 귀가하곤 했다”면서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한 탓에 도박이 이뤄지는 룸 안에 잘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경계의 끈을 풀지 않았다”며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B 씨 등이 톱스타 K가 불법 도박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진술한 데 대해선 “사채업자 B 씨가 도박판의 중심이었는데 B 씨와 톱스타 K가 평소 호형호제하는 각별한 사이였던 터라 보호해주려 한 게 아닌가 싶다”고 얘기했다.
검찰이 관심을 둔 연예인은 톱스타 K 한 명이 아니었다. 이 외에도 유명 운동선수 C, 정상급 배우 H와 P, 그리고 인기가수 K 등이 연루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들 역시 문제의 불법 도박판에 깊이 연루됐다는 첩보가 입수됐던 것. 모두 해당 룸살롱 단골 고객이었으며 마담인 A 씨와 친분이 각별했다. 문제는 그들이 불법도박이 열린 룸에 들어갔는지, 또한 거기서 도박에 합류했는지의 여부다.
진술이 엇갈리더라도 증거만 있으면 수사가 가능하다. 이 부분에서 상황이 톱스타 K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그를 목격했다는 진술은 있지만 아니라는 진술이 더 많은데다 증거마저 없었던 것. 대부분의 연루자는 불법 도박이 있던 날 통화내역에서 수사의 빌미를 제공했다. 도박판이 서니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고 이에 응한 통화 내역이 확보됐으며 당일 해당 룸살롱에서 통화한 내역까지 드러난 경우에는 혐의를 피하기가 어려웠던 것. 반면 톱스타 K 명의의 휴대폰에는 전혀 당시의 불법 도박과 관련된 통화 내역이 없었다. 또한 불법 도박이 있던 날 해당 룸살롱이나 그 인근에서 누군가와 통화한 내역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앞서 언급한 첩보를 통해 연루 가능성이 제기된 다른 연예인들 역시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연예계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 올 것으로 예상됐던 이번 불법 도박 사건이 잠잠해질 수 있었다. 서울지검 마조부 이두식 부장 검사는 “전임 부장검사가 지휘한 사건이라 기록만 가지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 해당 사건으로 기소된 연예인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핵심은 전직 유명 운동선수의 부인인 A 씨가 불법도박 참가자들에게 소위 ‘꽁지돈’이라 불리는 도박 자금을 빌려줬다는 대목이었다. 10%의 선이자를 떼고 빌려줬는데 돈을 따면 그 자리에서 갚고 그 돈을 다시 잃은 이에게 빌려주는 방식으로 손쉽게 큰돈을 벌었다고 알려졌었다. 게다가 수백만 원의 술값까지 챙길 수 있었던 것. 그렇지만 이 부분 역시 증거가 부족해 수사를 통해 혐의가 입증되진 않았다. 결국 자신이 운영하는 고급 룸살롱에서 불법 도박을 하도록 편의를 봐준 부분에 대해서만 혐의가 인정돼 불법 도박 방조로 500만 원의 벌금형만 받았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처럼 평소 친분이 있는 이들끼리 모여 도박판을 벌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몇몇 연예인들이 지인들과 상습적으로 불법 도박을 즐긴다는 첩보도 있다고 한다. 다만 이번 사건처럼 룸살롱이나 개인 사무실, 집 등에 모여서 불법 도박판을 벌이는 경우가 많아 수사가 어렵다고 한다.
또한 도박이 벌어지는 현장을 덮치지 않을 경우 이번처럼 증거 확보도 쉽지 않다. 이런 틈새를 활용해 해외 호텔 카지노, 무허가 카지노 바 등을 전전하며 불법 도박을 즐겨온 연예인들이 이젠 더 어둡고 은밀한 구석으로 숨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신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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